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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Jun 15. 2020

출발, 노르웨이

30시간의 대이동

  설레는 마음보단 비장한 마음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서로의 눈빛에는 '우리 꼭 살아서 돌아오자'라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멀고도 먼 노르웨이까지 2번의 경유를 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티켓팅이다. 물어볼 것도 많고, 안내 받을 것도 많다.  대기 없이 바로 승무원을 만났다. 그런데, 승무원 안색이 너무 안 좋다. 살짝만 톡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았다. 

승무원 :   " ...웅얼 웅얼 웅얼...." 

나 :  "네?? 다시 한번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승무원은 한손으로 머리를 잡고, 한손으로 우리 여권을 받으며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목이 부었는지, 다 쉬어 알아듣기 힘들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빛으로 말했다. '큰일 났다'


  옆 데스크에 있던 승무원이 보다 못해, 체인지 해줬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먼저 캐리어를 올렸다. 아슬아슬하게 딱 규정 무게를 지켰다. 그 후, 우리의 티켓 6장이 나오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폐쇄공포증이 심한 나는 비상구 자리를 부탁했다. 광저우행은 비상구 자리를 줄 수 있지만, 암스테르담행은 광저우에서 문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짐을 중간에 찾지 않고 한번에 오슬로까지 갈수 있도록, 분실되지 않도록 반복해서 부탁을 드렸다. 드디어 티켓이 나왔다. 우리 목적지는 한 곳인데, 티켓이 6장이라니, 너털웃음이 나왔다.

출발 전, 비행기 창 밖 풍경. 구름과 하늘색 비행기가 잘 어울린다.

  떨리는 순간, 첫 경유지 광저우로 향하는 중국남방항공을 탔다. 나의 걱정과 다르게 비행기는 최신식 기종이었고, 깔끔하고 자리도 넓었다. 3시간 반 비행 동안 특히 마음이 편했던 것은, 얼굴에서 경련이 날까봐 걱정될 정도로 웃으시는 친절한 한국인 승무원 덕분이었다. 난기류도 없었고, 안전하게 광저우 공항에 착륙했다. 도착 후 출입국 심사 및 짐검사를 했는데, 보안이 강화되었다는 소문대로 분위기는 긴장감이 넘치고 한 명씩 꼼꼼하게 짐을 확인했다. 


  빠르게 통과한 나와 달리, 남편이 출입국 심사원에게 꽤 오래 붙잡혀 있다. 여행 시작부터 끝을 보게 되는 것인가 초조했다. 그렇게 한참 후, 남편이 통과되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심사원이 왜 돌아오는 비행기 표가 없는지 자꾸 따졌다고 한다. 너무 당연한 질문이기에 남편은 당황했고, 영어도 잘 통하지 않아서 오래 걸렸다고 한다.


  길었던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뽑을 수 있는 기계가 보였다. 한국어가 어설프게 번역되어 있어, 쉽게 뽑을 수 있었다. 이제 이곳에서 5시간 대기를 해야한다. 장시간 비행을 앞두고 잘 쉬어야 하기 때문에, 라운지를 이용하기로 했다. 라운지에 가기전, 암스테르담행 비행기 비상구 좌석 변경을 위해 카운터를 찾아 떠났다. 그런데 아무리 걸어도, 카운터가 보이지 않는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걷고 또 걸었다. 되돌아 가기에 너무 멀리왔다 싶을 때, 작은 카운터와 승무원을 발견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비상구 자리는 매진이란다. 배낭을 버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다시 되돌아 라운지를 향해 걸었다. 

깨끗하고, 끝없이 넓었던 광저우 공항

  공항 라운지. 우리 둘 다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계였다. 이곳은 왠지 상류층만 휴식하러 갈 수 있는 비싸고 멋스러운 곳일 것만 같았다. 이런 촌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여행 출발전 라운지를 무료 이용할 수 있는 pp카드를 알아봤다. 하지만, 이번 여행 한 번을 위해 카드를 발급받기엔 연회비가 너무 비쌌다. 어떤 블로그에서 보니, 광저우 라운지는 1인 3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고 했고, 우리는  pp카드 없이 이용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고급스러운 라운지 입구

  드디어 우리의 첫 라운지에 입장하는 순간이다. 기대했던 것보다, 훤씬 넓고 고급스러웠고, 시설이 좋았다. 남편이 결제를 하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았다.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 : “얼마야?”

남편 : “600위안이야”

나 : “오~ 예상대로 6만원인가 보다. 근데 1위안이 얼마지?”

(나 인터넷 검색중..)


  그렇다. 1위안은 173원이었고, 우린 10만원이 넘는 돈을 낸 것이다. 예산을 크게 벗어난 비용에 나는 급격히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 : "괜찮아. 저녁도 못 먹고 배고프다. 메뉴가 다양하네. 밥먹자"


  우리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뷔페 음식을 담았다. 그리고 한입 먹는 순간, 내 얼굴은 더 깊이 어두워졌다. 삼킬 수가 없을 정도로, 향이 강하고, 기름지고 맛이 없었다. 다른 음식은 괜찮겠지 하고, 가져온 여러 종류 음식을 맛보았지만, 모두 똑같았다. 나는 배가 고팠고, 지쳤고, 울고 싶었다.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면서 어디선가 한자가 써있는 컵라면을 가져왔다. '그래, 컵라면은 괜찮겠지'


  차라리 컵라면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헛된 희망이라도 품지 않았을 텐데. 독한 향신료가 뿌려진 기름물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무엇이든 잘 먹는 남편도 살기 위해 먹는 듯 힘겹게 음식을 삼켰다. 잠이라도 자야겠다 싶어, 누울수 있는 리클라이너 의자로 향했다. 그런데 사람이 꽉 차 있었고, 우린 누울 수 없는 일반 의자에 앉았다. 차라리 돈이라도 저렴하게 내고 라운지에 들어왔으면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일텐데, 비용은 비싸게 내고, 아무것도 누릴 수 없고, 배를 채우지도 쉴 수도 없어 나는 폭발하고 말았다. 아무 잘못이 없는 남편에게 짜증을 내며, 투정이란 투정을 다 부렸다. 여동생은 내 남편을 사대 성인 중 한명이라고 부른다. 이 날 만큼은, 내 짜증을 받아주는 남편이 정말 성인으로 보였다. 


  시간이 흘러, 암스테르담행 비행기를 탈 시간이 되었다. 광저우 시간 밤 12시, 한국시간 새벽 1시다. 줄은 길게 서있고, 한국인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이번 비행기도 최신형이었고, 깔끔하고 넓었다. 이 날만을 위해 준비한, 비행기 공포증을 해결해 줄 엄청난 아이템. 나의 살 없는 엉덩이를 보호할 방석을 깔고, 추운 기내 환경을 대비해 담요와 잠바와 목베개를 꺼냈다. 다음으로 이어폰을 끼고, 그 위에 공사장에서 쓰는 소음방지 헤드셋을 쓰고, 온열안대, 물에 적신 거즈가 들어있는 마스크를 썼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은 배를 잡고 웃다가 급격히 부끄러워했다.

나의 비장의 무기, 공사용 소음방지 헤드셋

  비싼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을 대신해 특별히 준비한 공사장 소음방지 헤드셋. 철저하게 준비한 비장의 무기였는데, 헤드셋은 너무 쪼여, 머리통이 다 아팠고, 마스크는 답답했다. 결국 무장에서 비무장으로 바꾸고, 잠을 청했다. 밤비행이기도 하고, 광저우 공항에서 난리를 친 덕분에, 꿀 잠을 잘 수 있었다. 중간에 나온 기내식은 라운지 음식과 다를 바가 없어서 먹지 못했다. 허리와 목이 아파 깊이 잘 수는 없었지만, 자고 또 자다보니 12시간의 비행이 끝나고 마지막 경유지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 도착했다.


  우와, 정말 유럽 느낌이 물씬 났다. 시골에서 서울 처음 왔을 때 처럼, 우리는 눈이 번쩍 거렸다. 씻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푹 자지도 못한 우리는 소금에 절인 배추같았지만, 설레는 마음이 가득 올라왔다. 유럽 냄새, 유럽 스타일의 인테리어, 낯선 사람들. 진짜 유럽이다. 여기에 오기 전까지 너무 고생해서, 스키폴 공항은 이미 우리의 첫 여행지라는 마음을 줬다. 2m는 넘어보이는 무표정의 금발의 사람들 속에 우리가 걸리버 여행기 속 주인공 같았다. 작고 마르고, 까만 우리 자신이 튀는 느낌이 들고, 이질감이 들었다.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안에 빵먹었던 카페

  배가 너무 고팠던 나는 ‘유럽 빵, 유럽 커피!’를 외치며, 멋스러운 카페에 들어갔다. 왠지 아무 빵, 아무 커피를 주문해도 다 맛있을 것 같았다. 왜냐면 여긴, 유럽이니깐. 잠시 후 주문한 빵과 커피가 나왔고, 꿀 처럼 맛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범한 맛이었지만, 종일 굶었던 나는 이 세상 음식이 아니었다. 3시간의 대기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마지막 네덜란드항공 오슬로행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비행은 1시간 반으로 짧았고, 비행기가 땅에 가까워질수록, 노르웨이의 숲과 피오르드가 끝없이 보였다.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공항에 들어선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해냈어!! 우리가 해냈어!” 이제 겨우 오슬로 가르데르모엔 공항에 도착한 것 뿐인데, 우린 이미 군대 동계훈련을 마친 심정이었다. 꼬질 꼬질한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짐을 기다렸고, 무사히 캐리어를 받았다. 

드디어,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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