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만난 노르웨이
도착했다는 감격은 1분만 누렸다. 현지시간으로 12시가 되어간다. 캐리어를 끌고, 빠른 걸음으로 렌터카 회사를 찾아갔다. 우리 둘의 정신은 반쯤 집 나가 있었고, 초인적인 힘으로 렌터카 사무실을 찾아갔다. 좁은 통로에는 긴 줄이 있었다. 긴 줄을 본 순간, 다리가 풀렸고, 우린 과연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숙소에 밤 12시 전에 도착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생각이 지나갔다. 10분 정도 기다리고 있는데, 뭔가 느낌이 싸 하다. 남편은 앞에 서있는 외국인에게 허츠 줄이 맞는지 물어봤고, 다른 렌터카 회사 줄이라는 희소식을 들었다. 허츠 줄은 짧았고, 바로 렌터카를 픽업할 수 있었다.
‘폭스 바겐 골프. 네가 우리랑 일주일 동안 운명을 함께 할 친구구나’
차 안에 짐을 싣고, 남편은 차의 조작방법을 살펴보았다. 의자가 앞으로 당겨져 있어, 뒤로 밀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주차장에만 15분 넘게 있었다. 자동차 세팅을 다 하고 드디어, 구글 네비에 첫 번째 목적지 Heddal Stave Church(Heddal stavkyrkje)를 입력했다. 기절할 만큼 피곤했지만, 심장이 터질 듯 설렜다. 공항 밖 처음 만나는 노르웨이는 어떤 모습일까. 얼마나 이국적이고, 아름다울까.
비가 온다. 구름이 가득하고 비가 쏟아진다. 한국의 흔한 4차선 도로 같은 도로를 달린다.
나 : 오빠 우리 신혼여행 때도 계속 비 왔잖아. 나 좀 화날 것 같아. 하하하하
나는 웃다가, 소리 질렀다가 왔다 갔다 하며 잠시 이성을 재정비했다.
남편 : 여보야 비가 오던, 바람이 불던 우린 노르웨이에 왔어.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감사하자. 그런데, 저기 앞에 봐봐. 날씨 좋았으면 진짜 예뻤겠다
‘날씨 좋았으면 진짜 예뻤겠다’ 이 말은, 여행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되었다. 그렇다. 여행 중 날씨는 계속 안 좋았다.
내가 한창 이성을 붙잡기 위한 싸움을 싸우고 있을 때, 정말 신기하게 하늘 위에 가득했던 검은 구름이 빠르게 밀려나며 파란 하늘이 보였다. 강렬한 햇빛으로 덮인 노르웨이 풍경은 꿈속으로 달려온 듯 너무 아름다웠다. 차 안에서 바라보는 지나가는 마을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앞으로 일정 속에 이 보다 더 한 멋진 풍경이 있을까 싶었다.
노르웨이는 주유소에 편의점이 같이 있다. 물을 사기 위해 편의점에 잠깐 들렸다. 모든 것이 신기한 첫날이다. 작은 편의점도 우리는 유명 가수 콘서트에 들어가는 것처럼 설레며 들어갔다. 과자, 초콜릿, 음료 하나하나 다 신기했다. 엄마 몰래 첫 쇼핑을 온 어린아이처럼 이것저것 다 사고 싶었다. 그런데 물 500ml 한 병에 5천 원이라니. 설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물 한병, 초콜릿 하나를 사서 차 안에 돌아왔다.
2시간 반을 달려 해달 목조 교회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림 같은 풍경에 넋을 놓았다. 우리는 흔히 ‘그림 같은 풍경’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하나의 비유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이 곳은 그림 자체였다. 마음이 따뜻한 화가가 오랫날 걸쳐 하나하나 섬세하게 그린듯한 풍경이었다. 구름, 연두 빛 언덕과 그 너머 작은 빨간 집, 갈색 들판. 모든 것이 완벽했다.
우린 분명 목조 교회를 보러 왔는데, 그 뒤에 있는 마을 풍경에 마음이 뺏겼다. 고개를 돌려가며 풍경을 구경하는데 주인공처럼 우뚝 서있는 목조 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목조 교회는 가볍게 들리자는 마음으로 온 곳인데, 기대 이상으로 멋졌다. 이 곳은 가볍게 들를 곳이 아니라, 기대하는 마음으로 꼭 들려야 하는 곳인 것 같다. 목조 교회는 700년 동안의 세월을 입고 있었고, 기품 있게 느껴졌다. 나무로만 만든 교회라니. 나는 나무로 만든 설악산 산장은 봤지만, 나무로 만든 교회는 처음이었다.
특이하다고 생각이든 부분은, 교회 바로 옆이 공동묘지였다. 이후 여행하는 동안 교회를 지나가게 되면, 항상 공동묘지도 같이 있었다. 각각의 묘 위에는 예쁜 생화가 있었다. 마을 한가운데, 교회가 있고, 눈에 띄게 공동묘지가 있다니. 처음에는 어색하고, 약간 무서운 마음도 들었지만, 이 곳에 문화를 이해하게 되고, 교회의 중요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마음도 느껴졌다.
갈 길은 멀지만, 차 안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짐을 풀지도 못했고, 가스를 살 수가 없어, 주차장 차 안에서 먹기로 했다. 한국에서 사 온 전투 식량을 먹기로 했다. 우리 둘 다 처음 먹어보는 음식이었고, 봉투를 뜯고, 안에 물을 부으면 될 것이라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이 많이 들어가, 아까 산 생명수 한통을 다 썼다. 남편은 멀리 편의점에 가 물 2병을 더 사 왔다. 아직 밥은 먹지도 못했는데, 물값으로 15000원이 나갔다. 간신히 전투 식량 안에 물을 부었는데, 갑자기 바글바글 끓으며 뜨거운 연기가 사정없이 올라왔다. 남편과 나는 너무 뜨겁고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빠르게 차문을 열고 화염 통 같은 전투식량을 시멘트 바닥 위에 두었다.
시멘트 바닥 위, 곧 터질 듯이 정신없이 연기를 뿜어내며 끓고 있는 전투 식량을 보면서, 이 곳이 전쟁터구나 싶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조심스럽게 식량을 들고, 근처 벤치로 이동했다. 연기가 진정된 것 같아, 밥을 먹기로 했다. 기내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 정말 오랜만에 먹는 밥이었고, 너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전투 식량의 밥알은 쌀알 과자를 녹인 것처럼 푸석하고, 맛이 없었다. 배고프니 일단 열심히 삼켰다.
점심을 힘겹게 먹고, 이제 다시 출발이다. 갈 길이 멀고, 다음 목적지는 숙소다. 햇빛은 더 강해졌고, 우리 피부는 익어갔다. 북유럽은 태양이 더 가까워서 그런가, 태양은 한국에서 경험해 본 적 없는 눈부심과 뜨거움을 줬다. 계속 꼬불 꼬불 산길을 운전했다. 노르웨이는 자연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 도로가 one way고, 가드레일이 거의 없다. 경치는 매 순간 바뀌고, 매 순간 새롭게 아름다웠다. 주로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경사가 가파른 산 하나를 넘었다. 힘겹게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순간, 나무에 가려 보지 못했던, 피오르드가 보였다. 우리의 첫 피오르드였다. “우와~ 너무 아름다워!!” 하지만 아쉽게도 내리막 길이 위험해 집중해서 볼 수는 없었다.
그 산을 넘고 나니, 마을이 싹 사라지면서, 새로운 행성에 온 것 같은, 사람의 손길이 하나도 닿지 않은 듯한 광활하고 신비로운 자연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런 풍경은 차를 계속 세울 수밖에 없게 했다.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이곳에서,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우린 소리 지르고 달렸다. 아직도 내 머릿속에 사진을 찍은 듯 남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곳엔 통통하고 행복해 보이는 양들이 몇 마리 있었다. 몽골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곳에 양들은 마르고, 먼지가 가득 묻어있고, 슬퍼 보였는데, 이곳의 양들을 보니 빈부격차가 느껴졌다. 남편은 호수를 배경으로 독 사진을 찍고 싶은데, 양들이 자꾸 다가온다.
갈 길이 아직 멀다. 우린 다시 달렸다.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지루한지 몰랐지만, 피곤한 줄은 알았다. 남편은 점점 눈에 초점이 없어지고, 머리는 짜면 기름이 나올 것 같다. 남편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 나도, 남편도 많이 힘들었고, 배가 고팠다. 저녁시간도 지났지만, 편의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발견한 편의점, 마트는 문이 닫혀있다.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처음에 들렸던, 주유소 편의점이 우리의 마지막 편의점이 될 줄 몰랐다. 그때는 너무 비싸니, 마트에서 구입하자고 하고 물만 샀는데, 무척 후회가 됐다.
먹을 것도 없이 달리고 달려, Nesvik-Hjelmeland/Rv13 페리를 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선착장에 왔다는 것은 거의 도착을 했다는 뜻이다. 노르웨이는 피오르드 지형으로 페리는 우리나라의 버스처럼 흔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는 페리가 처음이었고, 시스템을 모르는 상태였다. 자동차들은 두 줄로 서있었는데, 어디에 서있어야 할지 모르겠고, 직원도 배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 줄에서 기다리던 중 남편은 갑자기 차에서 내려 뒤에 있는 외국인 차로 향했다.
남편 : “안녕하세요. 이 줄이 저기로 가는 페리 타는 줄이 맞나요?”
외국인 : “죄송해요. 저도 노르웨이가 처음이어서 잘 모르겠어요. 저는 스웨덴 사람이거든요. 저희도 일단은 여기서 기다려보고 있어요.”
차 안에 돌아온 남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한국에서는 낯을 가리고, 잘 나서지 않는 얌전한 스타일인데, 낯선 이곳에서 외국인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하고 있다니. 남편은 스웨덴 남자가 젠틀하고 잘생기고 유머러스하다고 극찬을 했다. 여행이 좋은 것은 나의 너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아니, 새로운 모습이 아닌 원래 진짜 모습일 것이다. 현실 속에서 누르고 숨겨뒀던 진짜 모습. 남편은 노르웨이 여행 내내 초등학생 어린아이 같이 해맑았고, 두려움이 없어 보였다.
얼마 기다리지 않아, 페리가 도착했고 차에 탄 상태로 직원은 표를 계산했다. 한국에서는 배를 기다리고, 타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곳에서는 순식간에 배를 타고, 타자마자 출발을 해서 당황스러웠다. 5분 정도 짧게 페리를 타고 내려서,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 해 운전을 하며 숙소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밤 10시였지만, 북유럽의 백야 덕분에 날은 밝았다.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거실, 방 3개가 있는 일반 가정집이었다. 원래는 각방에 손님을 받는다는데, 오늘은 우리만 있었다. 넓고 쾌적한 2층 집을 통으로 빌린 느낌이 들었다. 낯선 노르웨이 집에서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적응하는 것도 일이었다. 너무 고된 우리는 저녁밥을 먹는 것을 포기하고 바로 잠에 들었다. 잠들기 전 남편은 말했다. “우리 내일 프레이캐스톨렌 가는 거 포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