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 젬스, 2020
“잘난 사람 잘난 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산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언컷 젬스”는 가수 신신애의 불후의 히트곡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주인공 하워드 래트너는 말 그대로 요지경에 빠져있다. 가짜 명품 시계를 판매하는 유태인 보석상인 하워드는 재정적인 위기에 봉착했다. 24시간 따라붙는 빚쟁이는 공갈과 협박을 일삼으며, 급전 때문에 담보를 잡히는 귀중품은 점점 늘어간다. 별거 중인 아내는 “함께 있기 싫고, 쳐다보기도 싫은” 인간으로 취급하며, 가족과 주변 사람들은 답답해한다. 자존감이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상황에서, 지인을 통해 NBA 스타 케빈 가넷과 연을 맺게 된 그는 상황을 뒤집을 마지막 카드를 준비한다.
“언컷 젬스”는 오프닝부터 계속해서 시끌벅적하다. 그래서 영화의 세계는 다소 낯설게 다가온다. 카메라는 주인공의 주위에서 멀미난 것처럼 흔들리며, 여기저기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는 두 겹 세 겹으로 중첩된다. 감독인 조쉬/베니 사프디 형제의 스타일은 이 정신없는 분위기에서 엿보인다. 정교한 사운드 믹싱과 전자 음악, 핸드 핼드 촬영은 감독의 전작 “굿타임”보다 심화된 형태의 어수선함을 구축하며 다큐멘터리 같은 리얼리티를 창조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세 요소는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에티오피아에서 방금 도착한 신비의 보석 ‘오팔’과 NBA 플레이오프 시즌의 스포츠 ‘도박’, 그리고 공간적 배경인 뉴욕의 ‘다이아몬드 거리’는 삼위일체를 이루며 한탕주의의 늪에 빠져드는 인간의 속물성을 구현한다.
상식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속물근성은 흔히 악덕으로 간주되며, 헐리웃 영화에서도 과도한 물질적 욕망에 대한 비판은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배금주의를 소재로 한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감독의 “탐욕”(1924)과 존 휴스턴의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1948)에서, 개인의 마지막 희망인 일확천금의 꿈은 결국 패가망신으로 귀결되었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데어 윌 비 블러드” 속 무일푼 광부는 석유재벌이라는 야망을 실현하는 와중에 사랑과 우정, 믿음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상실했다. 그와 유사하게 “언컷 젬스”에서 못난 인간의 한탕주의는 타인에게 큰 민폐를 끼치지만, 연출은 그의 행동을 심판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대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속물근성이 분출하는 에너지로 눈을 돌린다.
사람들은 왜 불법 스포츠 토토에 중독되는가. 왜 도박은 인류의 역사에서 근절될 수 없는 걸까. 영화는 도박에 빠진 채 TV와 아이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주인공을 통해 그 물음에 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의식은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은 것처럼 흥분으로 들떠있다. 촬영 감독 다리우스 콘지는 게임에 전 재산을 배팅하는 하워드의 강박적인 집착을 이미지로 옮기는데, 그 이미지는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노름꾼”에서 도박꾼의 심리에 대한 서술만큼 생생하다. 배우 아담 샌들러는 인물의 감정 속으로 깊이 들어간다. 절망과 환희를 극단적으로 오가는 그의 코믹 연기는 마치 더블 에스프레소 10잔을 연속으로 마신 듯한 각성상태에서 펼쳐진다. 특히 운명을 건 한판 승부에서, 선수의 플레이 하나하나에 보내는 혼신의 리액션은 헤비메탈 콘서트의 현장처럼 좁은 공간을 열기로 가득 채운다.
그의 파트너인 신인 여배우 줄리아 폭스는 진공청소기처럼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흡수한다. 다크 초콜릿 같은 그윽한 눈빛과 두툼한 입술, 높은 콧대는 언뜻 스칼렛 요한슨의 10년 전 모습을 연상시킨다. 진한 매력의 줄리아 폭스와 아담 샌들러의 앙상블은 때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감미롭다. 늦은 밤 아파트에서 메세지를 주고받으면서 벌이는 애정 행각과 클럽 옆 블록 도로 한복판에서 택시를 둘러싸고 벌이는 다툼은 물론 상대의 기분을 달래기 위해 신체 문신을 보여주는 애교까지, 줄리아의 자유분방함은 애인을 들었다 놨다 하며 둘의 관계를 천생연분으로 만든다.
“언컷 젬스”의 매장면은 유머로 가득하다. 코미디 전문 배우 아담 샌들러의 활약과 별개로, 연출은 고장 난 '유리문'과 '전화기' 같은 소품을 활용하면서 전개를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이끈다. 이야기는 궁지에 몰린 인간의 고군분투를 주로 그리지만, 사프디 형제의 관찰력은 하워드의 욕망을 보다 세분화한다. 제아무리 분주한 상황에도 대장 내시경 결과를 놓치지 않는 생존욕, 보석의 행방을 쫓는 도중에 애인의 외도를 목격하고 발휘하는 질투심, 홀로 남겨진 순간 아내와 재결합을 꿈꾸는 부부애처럼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복합적인 성격은 캐릭터를 보다 인간답게 만든다.
하워드는 비참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획을 세우지만, 행운은 쉽게 그의 손을 잡아주지 않는다. 성공한 줄 알았던 베팅은 취소되고, 보석 경매에서 미리 짜 놓은 전략은 무위로 돌아간다. 점입가경의 상태에서 그는 애인에게 토로한다. “대체 내가 손대는 일마다 왜 이렇게 되는 거야”. 그의 낙담은 때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현대인의 기분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반복해서 교차되는 인간의 기대와 좌절을 통해 사프디 형제는 세상일이 얼마나 개인의 의지대로 풀리기 힘든지, 하나의 사건에 얼마나 많은 변수가 개입하는지를 새삼 역설한다. 그래서 “언컷 젬스”의 요지경 속 세상은 셰익스피어의 격언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최고의 기분으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을 때 운명의 여신은 슬금슬금 뒤로 다가와 뒤통수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