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세계인의 생활 패턴을 변화시켰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 중인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주말에도 마음 편히 외출할 수 없고 지인들과 모임 자리를 갖기도 꺼려진다. 어느덧 강제 집돌이, 집순이가 된 시민들은 답답함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
한편 ‘원래’ 집돌이, 집순이는 어떤 측면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내심 반가울 수도 있다. 허울 좋은 구실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말할 수 있다. 바이러스 감염이 두려워서 외출하지 못한다고. 사실 귀차니즘으로 인해 외출하지 않았을 뿐인데도.
평소 취미로 클래식 음악을 듣는 방콕 매니아의 시선에서 볼 때, 코로나 시대는 한 가지를 보너스로 제공하는 것 같다. 바로 클래식 음악을 다채롭게 즐길 기회이다. 조금은 아이러니하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 음악을 들을 기회도 줄어들 것 같은데, 오히려 꼭 보고 싶은 영상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방구석에서 음악을 이토록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시기가 언제 있었던가. 게다가 금전은 한 푼도 소비하지 않아도 된다니.
오늘날 남녀노소 접속하는 유튜브는 그야말로 멜로디의 낙원이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다. 현재 클래식 음악이 가장 풍성하게 열매를 맺고 있는 곳도 단연 유튜브일 것이다. 물론 5초 스킵 광고를 제외한다면.
불과 이틀 전이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고, 습관적으로 유튜브에 접속했다. 때마침 미국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채널은 실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무렵 뉴욕은 저녁 8시쯤 되었을까. 클래식 음악 애호가이자 뉴욕 필하모닉의 라디오 진행자인 영화배우 알렉 볼드윈과 피아니스트 엠마뉴엘 엑스는 화상 통화로 만담을 나누고 있었다. 짧은 대담 후에, 과거 공연 영상이 이어졌다. 2015년 별세한 마에스트로 쿠르트 마주어의 1994년 무대였다. 지휘자의 강단 있는 리드와 함께, 오케스트라는 균형 잡힌 앙상블로 첫 곡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을 소화했다. 다음 곡인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에서, 협연자 엠마뉴엘 엑스는 마치 비둘기의 깃털이 내려앉는 것 같은 가벼운 터치로 건반을 보듬었다.
그날 밤에 유튜브에 다시 접속했다. 생방송을 알리는 빨간불이 또 켜졌다. 이번에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위치한 로열 콘서트헤보우 오케스트라의 과거 영상이었다. 프로그램은 브루크너 5번 교향곡. 지휘는 니콜라스 아르농쿠르. 본 공연에서 지휘는 빠른 템포로 질주했고, 오케스트라는 비단결 같은 음색으로 음표들을 벽돌처럼 차근차근 쌓아갔다.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는 살아생전 이 곡이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광경을 보지 못했는데, 무덤에서 이 연주를 들었다면 분명 환하게 미소 지었을 것이다.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들은 어떠한가. 연일 혜자스러운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홈페이지에서 방대한 레퍼토리의 오페라 영상을 하루에 한 편씩 풀고 있다. 독일 뮌헨의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역시 음악감독 키릴 페트렌코가 참여한 바그너 오페라와 그간 화제가 된 프로덕션을 일부 게시했다.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유튜브에서 #OurHouseToYourHouse 태그와 함께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영상을 공개했다. 이제 공연장의 감동은 우리 집에서 재현된다.
전 세계 오페라 팬들의 성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빈 슈타츠오퍼는 불과 일주일 전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그림자 없는 여인”의 2019년 프로덕션을 스트리밍했다. 지휘는 무려 크리스티안 틸레만. 독일어권 음악의 권위자인 지휘자의 카리스마 아래서 오케스트라의 찬란한 사운드는 분수처럼 솟구쳤다. 테너 슈테판 굴드와 소프라노 카밀라 닐룬드를 비롯한 가수들의 활약은? 명불허전이다.
21세기에 넷플릭스가 던진 질문은 몹시 도발적이다. 영화 “사냥의 시간”의 경우처럼, 개봉작을 집에서 먼저 만날 수 있다면 앞으로 영화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 서비스가 관객들의 소비 패턴에 영향을 미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연계의 사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풀 HD 화질과 최상급 음질로 공연장의 열기를 방구석에서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연주자와 관객이 교감하는 기존의 패러다임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약 한 달 전 일이다. 지난 3월 12일 미국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는 페이스북 라이브를 진행했다. 연주자들은 검은색 턱시도를 차려입었고 남성들은 흰색 나비넥타이도 매었다.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는 여느 무대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객석에는 단 한 명의 관객도 자리하지 않았다. 코로나의 공습으로 공연이 취소됐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단을 내렸다. 현재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전 세계 관객을 위해 무관중 공연을 감행한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은 공연 시작 전에 “우리의 진심이 당신에게 가닿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진심 어린 그의 역동적인 모션 아래서, 베토벤 5번과 6번 ‘전원’ 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의 기세는 파이팅이 넘쳐흘렀다.
같은 시기 독일 베를린에서, 지휘자 사이먼 래틀도 무관중 공연을 이끌었다. 프로그램은 20세기 중반 레퍼토리였다. 1부 프로그램 루치아노 베리오의 “신포니아”는 생소하고 난해한 곡이었다. 8명의 가수들은 마이크를 들고 쉴 새 없이 읊조리는 가운데 곡의 짜임새는 구스타프 말러와 모리스 라벨의 관현악 작품이 콜라주되어 있었다. 현기증을 유발할 정도로 복잡했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은 한 순간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2부 바르톡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서 악단의 현 파트와 목관 악기, 금관과 타악기는 서로 번갈아가며 천의무봉의 실력을 뽐냈다.
단지 무관중 공연만 진행한 것이 아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음악을 사랑하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디지털 콘서트 홀’을 한 달간 무료로 개방했다. ‘디지털 콘서트 홀’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클래식 음악계의 넷플릭스이다. 그곳에선 현재 약 610 편에 달하는 공연 영상을 접할 수 있다. 그중 상당수는 인류 역사에 길이남을 명연이다. 따라서 ‘디지털 콘서트 홀’은 문화유산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기존 구독자에게 한 달 구독료를 면제해 주었는데, 덕분에 오랜 기간 구독을 해왔던 개인의 입장에서 양념 치킨 한 마리 값을 절약할 수 있었다.
과거 시인 안도현은 경고했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그리고 질문했다.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비록 전세계는 코로나 시대 이전의 활기를 잃었지만, 음악의 감동은 팍팍해진 세상에서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속 깊은 음악가들의 나눔은 마치 연탄처럼 세상에 온기를 더해준다. 21세기 정보화 시대, 지구 반대편에서 랜선으로 전해지는 예술적 감흥은 방구석 관객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쉰다. 그 감동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으면, 세상에 아름다운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아가 더 많은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누군가의 삶에 희망을 전하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이 갖는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