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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zog May 25. 2020

I ♥︎ NY, 티모시 샬라메, 로맨틱, 성공적

레이니 데이 인 뉴욕, 2020


우디 앨런의 작품 세계를 돌이켜보면, 빗방울은 분명 낭만적인 장치였다. 그것은 마치 사랑의 촉진제처럼 작용했다. 영화 속 교착 상태에 놓인 연인 관계는 비를 맞은 뒤 급속도로 발전했다. 중년 여성의 정신적 위기를 다룬 영화 “또 다른 여인”(1988)에서 갑작스레 소낙비가 쏟아졌을 때, 지나 롤렌스와 진 해크만은 인적 드문 굴다리 밑으로 대피해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매치 포인트”에서 폭우가 내리치던 날 스칼렛 요한슨과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는 갈대밭 위로 넘어졌으며, “매직 인 더 문라이트”의 콜린 퍼스와 엠마 스톤은 천둥 번개를 피해 니스의 코르다쥐르 천문대로 입장했다.


한편, 우디 앨런의 신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비는 온종일 내린다. 습도 높은 그 날의 뉴욕은 다채로운 해프닝으로 주인공 개츠비와 애슐리를 기다리고 있다. 대학교 CC인 그들은 각자 잊을 수 없는 하루를 보낸다. 학보사 기자인 애슐리는 평소 팬이었던 영화감독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진다. 개츠비는 친구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전 여자 친구의 동생 챈과 마주치고 주변 상황은 그들이 만난 지 1분 만에 입맞춤을 하게 만든다. 뒤이어 만남과 만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비구름 아래의 뉴욕은 점차 로맨스의 꽃밭이 되어간다.



커피로 말할 수 있을까.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방금 나온 카라멜 마끼야또의 달콤한 향기를 풍긴다. 오프닝부터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은 적재적소에서 활약하며, 촬영감독 비토리오 스토라로는 맨하탄을 꿈에서 등장할 법한 낙원으로 변모시킨다. 화면의 전경에 놓인 스타 배우는 마치 화가 존 싱어 사전트의 초상화처럼 화사하다. 섬세하게 조율된 조명은 애슐리 역의 앨르 패닝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설렘으로 가득한 배우의 얼굴은 마치 겹겹이 쌓인 보석상자처럼 아련하게 빛을 낸다.


우디 앨런은 1979년 영화 “맨하탄”의 오프닝을 통해 고백했다. “그는 뉴욕을 숭배했다. 그는 그곳을 정도 이상으로 심하게 낭만화했다. 그에게 뉴욕은 계절에 상관없이 흑백으로 존재하며 조지 거쉰의 위대한 음정에 맞춰 고동치는 도시였다…”. “애니홀” 같은 70년대 초기 작품부터 변함없이 뉴욕에 대한 애증을 표현해왔던 그는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그의 고백을 시각적으로 실천한다. 배우 티모시 살라메는 우디 앨런의 계획에 부합하는 에이스 카드이다. 그는 존재만으로 주변 공기를 일렁이게 한다. 해링본 자켓, 샴브레이 셔츠, 빨간 티셔츠와 치노 팬츠, 흰색 스니커즈의 감각적인 매치, 피아노 앞에서 “Everything happens to Me”를 부를 때 감미로운 목소리, 담배 필터를 손가락 사이에 쥔 그의 풍모는 여성 관객뿐만 아니라, 남성 관객의 마음에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의 코미디는 깨알 같다. 우디 앨런의 유머 감각은 80대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이다. 능글맞은 대사는 여전히 재치 있고, 타이밍은 정확하다. 연출은 코미디를 위해 우연적인 상황을 중첩시킨다. 거짓말 같은 우연 속에서, 아내의 불륜을 목격한 작가는 분노한다. 파티장에서 남자는 경박하게 웃는 약혼녀에게 한숨 쉬고, 사랑을 나누다 허겁지겁 도망쳐야 하는 애슐리는 당황한다. 뜻밖의 사건들이 가볍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가운데, 우디 앨런은 멀찍이서 우연이 어떻게 두 남녀를 삶의 갈림길에 서게 하는지 지켜본다.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우디 앨런이 뉴욕을 향해 속삭이는 또 한 번의 사랑 고백이며, 뉴욕이 품고 있는 문화적인 풍요로움에 대한 보고서일 것이다. 카메라는 때로 특정 공간에서 도시의 아름다움에 취해 넋을 잃은 것 같다. 호화로운 호텔의 스위트룸과 고급 아파트의 인테리어, 평소 그가 클라리넷을 즐겨 연주하는 카페 칼라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인상주의 전시실을 방문할 때, 영화의 어조는 열정에 사로잡힌 여행 가이드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래서 영화의 목표는 관객이 뉴욕과 사랑에 빠지게 하고, 뉴욕을 한 번쯤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비 내리는 도시에 대한 우디 앨런의 페티시는 과거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바 있다. 1920년대와 현재를 교차하며 도시 파리의 매혹을 담은 “미드나잇 인 파리”의 마지막 장면, 배우 레아 세두는 수줍게 웃으면서 말했다. “파리는 비가 내릴 때 가장 아름다워요”. 맞은편에 선 오웬 윌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도 늘 그렇게 말해왔어요. ㅎㅎ”.  마찬가지로 날씨 궂은날 뉴욕의 매력을 담은 “레이니 데이 인 뉴욕”은 관객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 뉴욕은 촉촉하게 젖은 모습이 가장 관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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