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말만큼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그냥 알아서 주세요'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커피의 종류가 뭔지, 아이스인지 핫인지 정확하게 주문을 한다.
커피 한 잔 시킬 때도 내가 원하는 커피가 뭔지 정확하게 말하는데,
일을 할 땐 왜 그걸 못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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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를 받을 때 제일 황당한 주문이 '알아서 해주세요.'이다.
굉장히 생각 없는 업무 지시다.
어떤 부분에 포커스를 맞춰서 해달라는 건지,
어떤 용도로 쓰이는 건지,
어떤 양식으로 보고받고 싶은지 (공용 양식이 없을 경우) 등
보고 목적도, 보고받는 대상도, 보고 내용에 대한 주제도 불명확한 채
그냥 '알아서', '잘'이라는 상식 없는 말을 던진다.
그러고 나서 기본 중의 기본으로 주면
'아 이게 아닌데 말이지?' 딴소리를 한다.
이건 아까 말한 카페에서 '그냥 아무 커피나 주세요'라고 주문하고
'이 커피가 아니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거 뭐 내 마음을 맞춰봐도 아니고, 업무까지 궁예질을 해야겠나.
보통 이런 황당한 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이 뭔지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을 때 나타난다.
고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시켰고,
내가 어떤 결과물을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지
네가 고민해봐'라는 말이다.
자신이 고민하고 지시를 내려야 할 것이 뭔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거나, 생각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아랫사람에게 자신의 몫까지 떠넘기는 것이다.
무책임이 달리 무책임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기의 몫을 하지 않는 것이 무책임한 것이다.
대체로 일을 잘하는 상사들은
자신이 필요한 부분을 명확하게 말한다.
두 번 말할 필요도, 두 번 일할 필요도 없게 만든다.
보고 대상자,
보고 내용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야 할 부분,
보고 양식 등
일을 한 번에 마무리할 수 있게 한다.
작은 수정 정도는 있을 수 있지만,
큰 틀이 바뀌는 일은 없다.
월요일부터 또 '알아서'를 시전 하는 상사가 있는가...
약간의 위로와 건투를 빈다.
다음에 그 상사와 카페에 갈 일이 있다면
알아서 시켜드리겠다고 친절하게 말하고
에스프레소를 더블더블더블로 추가해버리자.
당신이 그 보고서 때문에 잠들지 못한 밤을
간접적으로 선물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