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낭비하고 계십니까?
선택은 인생에서 끝나지 않는 시험이다.
인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생을 낭비하랬다. 앤 모로 린드버그가. 사실 누군지 모르는데 야마구치 슈의 <어떻게 나의 일을 찾을 것인가>에 적힌 인용구가 마음에 든다.
작정하고 인생을 낭비한 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은 것 같다. 사실 첫 달은 상한 몸을 챙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그걸 낭비로 치면 너무 억울하지.
휴식은 늘 불안하다. 대학 휴학 기간에도 쉬지 않고 빡세게 일했고, 졸업하기 전부터 들어간 회사에서는 건강을 갈아 넣어 일했다. 쉬면 뒤쳐진다고 생각했다. 누구도 그렇게 말한 적 없지만 빡센 서울 안에서, 비교대상이 넘쳐나는 대한민국 안에서(세계 까지는 쳐다볼 겨를도, 능력도 없다), 너도 너도 잘 사는 인스타그램을 보며 사는 내게 휴식이란 그랬다.
작정하고 인생을 낭비한 지 두 달. 이제야 생산적으로 인생을 낭비할 준비가 된 것 같다. 생산적이다와 낭비라는 이 모순의 굴레를 벗어날 순 없지만. 적당히 눕고 적당히 채찍질하며 적당히 딴짓을 탐닉할 준비가 됐다. 두 달은 불안 속에 있는 나를 구해내느라 정신이 없었으니까. 어떤 새로운 일을 하고, 어떤 딴짓을 탐닉할지 찾기 시작했다. 피그마 툴 배우기, 프로 크리에이트 배우기, 유화 배우기. 서른이 넘어도 뭘 그렇게 배우고 싶을까.
생산적인 인생 낭비도 계획해야 한다. 먼 미래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먼 미래란 내일모레 정도. 오늘. 내일 정도만 생각하기로 했다. 웬만하면 오늘. 갑자기 딴소리인데 왜 오늘에 집착하게 되었냐면. <나는 솔로>라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 옥순이가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하며 그때부터 오늘을 사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말이 왜 그렇게 가슴에 쾅 와닿는지.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게 언제인지 모르는 게 사람인데. 내일보다 오늘을 사는 게 더 나은 삶인 것 같다고. 엄마 아빠와 부쩍 죽음에 관해 많이 이야기한다. 예전부터 그랬다. 걱정을 사서 하는 딸을 둔 엄마 아빠는 참 피곤할 거다. 엄마 아빠의 건강은 늘 걱정이고 무섭다. 그래도 계속 떠올리고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을 가슴이 느낀다. 그 느낌이 매 초마다 희미해지긴 하지만. 그리고 우리 가족의 대화는 전혀 무겁지 않다. ‘야 너도 죽어’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오늘 아침 공복에 3km를 걸었고, 적당히 일도 했다.
그리도 오늘은 책을 읽었다. 독서 목표를 어떻게 세울지 아직 며칠 더 읽어봐야 답이 나오겠다.
그리고 오늘 나의 마무리는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