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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메리 Oct 10. 2019

착한 사람 콤플렉스

<나와 작은 아씨들> 출간 전 연재


“난 작은 배려의 기회를 무시하고 큰 호의를 베풀 때만 기다려. 하지만 결국엔 작은 것들이 빛을 발하더라고.”


“I wait for a chance to confer a great favor, and let the small ones slip, but they tell best in the end.


-『작은 아씨들』 중에서




“어리석은 결정이라도 어쩔 수 없어. 나를 위해 물건을 사느라 고생하셨을 엄마를 속상하게 할 순 없으니까.”     

이 간략하면서도 단호한 대사와 함께, 메그는 내 안에서 ‘영원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의 반열에 올랐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심이 갸륵해서? 흠,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렸다. 사랑하는 이의 감정을 배려하는 그녀의 상냥한 마음 씀씀이는 언제 봐도 흐뭇하고 대견하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내 안의 공감 세포를 저격하며 경계심을 무장 해제시킨 이 두 마디 대사에서, 나는 효심과 배려심을 뛰어넘는 마치 가 장녀의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발견했다.


메그는 부유한 친구 애니의 초대로 장장 2주에 걸쳐 열리는 화려한 파티에 참석할 기회를 얻는다. 늘 사교계의 일원이 되길 꿈꿨던 그녀는 어려운 형편을 무릅쓰고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2주 동안 돌려 입을 드레스와 장신구를 겨우 마련한다. 자세히 뜯어보면 디자인도 색도 유행이 살짝 지난 것들뿐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장만하고 손질한 덕분에 완벽하진 않아도 나쁘지 않은 정도로는 구색을 갖출 수 있었다. 딱 하나, 문제의 그 우산만 빼고.


그토록 염원하던 사교계 파티에 낡은 드레스와 물려받은 부채를 들고 참석하는 딸의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마치 부인은 없는 살림에 무리를 해서라도 딸에게 우아한 숙녀의 필수품인 새 우산을 사주기로 결정한다. 메그는 이 믿기지 않는 소식에 날아갈 듯 기뻐하며 엄마에게 최신 유행의 디자인을 조잘조잘 설명한다. 그러나 부푼 기대가 무색하게도,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온 엄마의 손에는 메그가 바라던 우아한 진줏빛 우산이 아니라 노란색과 초록색이 보기 싫게 섞인 촌스러운 물건이 들려 있다.


메그는 눈처럼 하얀 실크 우산을 들고 나올 친구들을 떠올리며 울상이 된다. 언니의 안색을 눈치 챈 동생 조는 우산을 갖고 상점에 가서 원하는 디자인으로 바꿔 오길 추천한다. 하지만 메그는 속이 상해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를 위해 물건을 고르고 사왔을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는 없어. 어리석은 결정일지라도, 이 우산을 들고 파티에 가야만 해.”     


메그가 물건을 바꿔 왔다면, 과연 마치 부인이 딸에게 실망한 모습을 보였을까? 이성적이고 관대한 부인의 평소 성격을 봐도 그렇고, 큰언니 못지않게 엄마를 사랑하는 동생의 조언을 봐도 그렇고, 기왕 큰맘 먹고 구입한 우산을 마음에 드는 디자인으로 교환한다고 해서 가족 중 누군가가 그녀를 비난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같은 일이 동생들에게 일어났다면, 이 사소한 에피소드의 결말은 메그의 경우와 사뭇 달랐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조라면 당당하게, 에이미라면 센스 있게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손에 넣고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론에 도달했을 테니까.


사실 메그는 종종 남을 배려해야 한다는 압박에 못 이겨 답답한 결정을 내리곤 한다. 역설적이게도, 그 결과는 대개 모두의 행복과 거리가 멀다. 당장 애니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위축되어 풀이 죽는 바람에 오히려 가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훗날 결혼을 한 뒤에는 남편에게 힘든 모습을 보일 수 없다는 책임감에 혼자서 무리하다가 결국 오해가 쌓여 큰 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그녀의 모습이 마냥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대학 시절 혼자서 미국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이민을 떠나 시애틀 부근에 정착한 엄마 친구분이 숙소를 제공해주신 덕에 가능했던 기회였다. 그곳에 몇 주간 머물고 떠나던 날, 나는 어느새 ‘이모’라고 부를 정도로 가까워진 친구 분께 작별 인사와 함께 장난스러운 영업 멘트(?)를 날렸다. “이모, 제가 여기서 얼마나 착하게 굴었는지 우리 엄마한테 꼭 얘기해주셔야 해요!”


“그럼. 당연하지.” 이모는 시원스럽게 대답하더니, 신기하다는 투로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네 또래에 그렇게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아이는 거의 없지 않니?”


당시에는 “그런가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겼던 그 말을, 나는 그로부터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에 진지하게 곱씹게 된다. 그 사이 스무 살 대학생이었던 나는 졸업과 취업을 거쳐 5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그 동안 쌓은 경력을 모두 포기한 채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조직 생활에 심각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태로 수십 년을 더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 않았고, 현실적인 가능성을 따져 봐도 다른 길을 찾으려면 더 늦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편이 옳았다. 하지만 휴학 한 번 없이 취업에 성공한 딸을 자랑스러워하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도저히 퇴사 얘기를 꺼낼 수가 없었다.


그때 느꼈던 그 커다란 두려움의 정체를, 지금은 정확히 정의할 수 있다. 나는 직장을 잃는 순간 가족의 신뢰마저 잃어버릴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엄마 친구 댁에서 머물던 때와 마찬가지로, 나는 ‘착하게 구는’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하면 가족으로서의 내 가치가 없어진다고 여겼다.


 하지만 모든 상황이 정리된 현재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퇴사 결심을 목전에 두고 있던 당시의 나는 이미 힘든 기색을 감추지 못하며 가족들에게 충분한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그 때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는 ‘가족 때문에 버틴다’는 자기 합리화를 하며 정작 가족들이 내 눈치를 보게 만드는 우스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착한 아이 콤플렉스의 서글픈 결말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직장을 나왔고, 약 1년간의 백수 시절을 거쳐 어찌 어찌 프리랜서로 먹고 살 길을 찾았다.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아무리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을 때도 가족은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켜주었다. 눈물 콧물 한 바가지를 쏟으며 그 시간을 지나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행복이 바로 그들의 행복이라는 사실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눈치에 짓눌려 지내는 착한 아이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진심으로 웃는 나였던 것이다.


아직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늦게나마 내 행복과 타인의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조금씩 치유되는 동안 메그 또한 우리의 공통적인 고질병을 극복했을까? 나는 그랬으리라는 꽤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불만을 감추고 남의 눈치를 보는 데서만 자신의 가치를 찾기엔 그녀는 너무 사랑스러운 사람이니까. 무엇보다도, 메그의 괴로움을 빤히 지켜만 보기엔 그녀의 가족이 너무 따뜻한 사람들이니까.



2019년 10월 16일부터 전국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서 <나와 작은 아씨들> 단행본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작가 인스타그램: @seo_merry

작가 유튜브: 서메리MerryS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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