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메리 Oct 13. 2022

1. 이상한 나라의 N잡러

[출간 전 연재] 이상하고 아름다운 나의 N잡 일지




<내 동생>이라는 동요가 있다.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이 ‘국민 노래’의 가사는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으로 시작하여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라는 유명한 구절로 이어진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직업을 소개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아마도 부모님이나 유치원 선생님에게 배웠을 이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된다. 무의식적인 기억으로 30년 남짓 저장되어 있던 흥겨운 멜로디가 귓가에 울리는 가운데, 나는 심호흡을 한뒤 내 인생의 가사를 또박또박 전한다. “프리랜서인데, 다양한 일을 해요.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유튜브도 하고, 온라인으로 강의도 하고 있습니다.”     




내 몸은 하나인데 직업은 여러 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사람들에게 ‘N잡러’라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다. 작년쯤 모 영자신문과 인터뷰를 했는데, 내 직업이 ‘N-Jobber’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소개된 것을 보고 한참 웃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사전에도 없는 그 단어는 아마도 기자가 N-Job에 직업을 뜻하는 영어 접미사 ‘-er’을 붙여 만들어낸 표현이리라. Sing(노래)에 –er을 붙이면 Singer(가수)가 되고 dance(춤)에 –er을 붙이면 dancer(댄서)가 되는 식이니, 아주 근본 없는 작명은 아닌 셈이다. 기자 분의 재치 있는 표현처럼, 나는 사전적으로 정의되지 않는 다양한 일을 하며 그럭저럭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평온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지금의 일상이 나는 꽤 만족스럽다.     


하지만 과거의 나는, 특히 20대를 보내던 무렵의 나는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떠도는 취업 시장에서 대학 시절 내내 불안에 떨었고, 겨우 취직한 직장에서도 ‘조직 문화’니 ‘사내 정치’니 하는 것들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와 이직을 반복해야 했다. 결국 5년을 꽉 채워 일한 법률회사 사무직을 끝으로 조직과 완전한 이별을 택하고 ‘프리 선언’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저축을 까먹으며 사는 백수 생활이었다.     


절망적이었다. 그 시절, 거울을 보면 웬 이상한 사람이 서 있었다. 표정 없는 눈썹 위쪽의 평평한 이마에 ‘사회 부적응자’라는 낙인이 선명하게 찍힌 그것은 실패자의 모습이었다.     




변화가 찾아온 것은 분명 다양한 일을 찔러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자칭 번역가 지망생, 타칭 백수인 시기가 1년을 훌쩍 넘어갈 즈음, 나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 우물을 파라’는 세상의 가르침 혹은 명령에 반항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요청하지 않은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고, 아무도 의뢰하지 않은 번역을 해서 직접 팔았다. 자신감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봐준다면, 인터넷 서점에 올려둔 전자책이 단 한 권이라도 팔린다면, 최소한 방구석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조금은 낫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그 삽질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글을 씀으로써 나는 작가가 되었다. 그림을 그림으로써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고, 외국어를 옮김으로써 번역가가 되었다. 궁지에 몰린 쥐가 고양이를 무는 심정으로 시작한 N잡이었지만, 내가 벌인 일의 진짜 의미를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게 필요한 것은 일을 주는 사람이나 회사가 아니라 일 그 자체였다. 나는 원하는 직업을 스스로 가질 수 있고, 일의 내용이나 방식 또한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태어나서 ‘시대를 잘 타고났다’고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전까지의 나는 취업난에 시달리는 ‘3포 세대’이자 ‘88만원 세대’였고, ‘부모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였으며, 심지어 그 중에도 유달리 적응력이 부족한 도태 직전의 구성원이었다. 하지만 한 우물의 속박에서 벗어난 순간 내 주변을 가득 메운 기회의 조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조각들은 마치 레고와 같아서, 여러 개의 블록을 조립하여 나만의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나는 크고 작은 블록들을 고르고, 각각의 블록을 필요한 자리에 배치하며 내게 맞는 일상을 조금씩 만들어갔다.    



 

내게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었고, 자신을 세상에 맞출 재주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더 이상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 직업적 기쁨과 보람은 사실 분명 존재했다. 다만 이 우물, 저 우물에 조금씩 흩어져 있었을 뿐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은 여전히 이상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 이상함을 ‘실패’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조금 간지럽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나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이것은 내가 나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 길목에서 마주친 실패와 성공, 고민과 해결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어떻게 봐도 전혀 나답지 못한,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행복해질 수 없다고 믿었던 공간에서 출발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