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랄 말고 공부나 해라
나는 한번 실패를 경험하고 더 지독해졌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이 끝나고 기숙사에 와서도 책을 폈다. 가끔 사감 선생님이 주의를 줬지만, 취업에 목매는 학생들을 몇 년째 봐온 선생님은 크게 나무라지 않았다. 첫 번째 시험이 끝났다. 어려워하는 과목의 수업일이 늘어나 불리한 여건이지만 나름 선방했다. 그러나 내 노력에 비하면 좋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나는 더욱 잠을 줄였다.
아침엔 운동장을 뛰고, 밥을 먹고, 씻고, 학교에 와서 공부를 한다. 중간중간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실습도 하면서 밤이 되면 기숙사로 돌아온다. 그리고 점호가 끝나면 간이 스탠드를 켜고 책을 편다. 간혹 잠을 도저히 못 참겠으면 믹스커피 5개를 타서 마시고 다시 공부했다. 오늘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의 다음날도 그랬다. 주말에 집에 돌아가면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하루 8시간을 카페에 앉아 공부했다. 3학년 3월, 취업되기 전까지 이 지독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일 년쯤 반복했다.
그냥 밤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아주 늦은 밤. 그러니까 새벽쯤. 친구와 함께 공부를 할 때면 서로가 서로의 불안을 감싸 안는다. 우린 취업에 대한 불안감, 미래의 불확실성에 가끔 우울함과 막연한 불안감을 느꼈다. 나는 그럴 때면 여행기를 읽었다. 누군가의 여행기를 읽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면서도 가슴이 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불안감은 사라지고 어떤 일이든 도전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그래서 공부하다가 뜬금없이 친구한테 말하곤 했다.
"야, 나 호주 갈 거다."
그러면 친구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x랄 말고 공부나 해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어 아무 소리 않고 다시 책으로 눈을 돌렸다. 글자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머릿속엔 호주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그곳을 여행하는 내가 서있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나의 불안감은 한결 줄어들었다. 대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었다. 여행기 속 그들은 자유롭고, 도전적이었으며, 겁 없이 지구를 누비는 사람이었다. 기숙사 한켠에서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보는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너무 대비됐다. 나는 언젠가 호주에 꼭 갈 거라고 다짐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그냥 가고 싶었다. 호주는 그런 곳이었다. 비록 지금은 어두운 기숙사에서 불투명한 미래를 보며 공부를 하지만 언젠가 밝은 곳으로 나갈 때, 꼭 가야 할 곳. 이뤄야 하는 것. 가끔 지독한 어둠 속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때 나에게 빛이 되어주는, 그런 곳이었다.
이 말을 하고부터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1년 뒤쯤. 나는 호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