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칩니다
이력은 평범하다. 영어학과를 졸업했고 교육출판사에서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를 만들다가 제2 언어로써의 영어교육을 석사전공하여 교사 자격증이 곧 나올 참이니 어디 가서 “저는 영어를 가르칩니다” 하기에 튀는 이력이 전혀 아니다. 아주 무난하고, 누구나 납득할 법하다. 내 이력을 들은 그 누구도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영어를 가르치세요? 아니, 어떻게 영어를 잘하시는 거예요?” 하고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미국에 산다는 이유로 사람들은 자꾸 나에게 자격과 배경을 묻는다.
이를테면 오다가다 만난 이 사람이 그렇다. 초면인 사람끼리 할 법한 대화를 나누던 참이었다. 역시나 이민자인 그와 어느 나라 사람이냐, 미국에 온지는 얼마나 되었냐 하는 얘기를 하다가 그가 내 직업을 물었다. 나는 석사과정의 마지막 학기이기 때문에 초등학교에서 풀타임 인턴십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졸업 후 계획이 있냐기에 지금 있는 대학원의 국제학생 센터에서 영어 튜터로 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당신이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는 이 질문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이 이상한 질문을 꽤 자주 듣는다. 너무 자주 들어서 당황도 안 했다. 그저 담담하게 다시 물었다.
“어떤 뜻으로 하시는 말씀일까요?”
“당신은 미국인이 아니니까... 당신이 영어를 가르치는 걸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요...?”
이상한 질문 대처하기에 짬바가 쌓일 대로 쌓인 나는 그저 온화하게 웃으며 답했다. 별 걸 다 묻는다는 듯이.
“제가 영어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겠죠..”
미국인이 아니어도 미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훌륭한 선생님들을 나는 아주 많이 알지만 그는 본 적이 없었나 보다.
내가 따려는 교사 자격증은 초중고등학교용이지만 여기저기서 어른들을 가르칠 기회가 많았는데, 가끔 학생으로 한국인을 만나는 순간을 좋아한다. 영어로 수업을 진행할 때까지도 긴가민가 하다가 뭔가를 설명하기 위해 한국어로 전환하면 다들 엇, 하고 약간 당혹스러운 웃음이 번진다. 그러면 보통 수업의 끝물에 질문이 돌아온다. 가장 웃기고 솔직한 반응은 아래와 같았다.
“완전 그냥 한국인이셨어요?”
“우하하, 완전 그냥 한국인이 뭐죠?”
“코리안 아메리칸 뭐 그런 거 아니고요?”
“코리안 코리안입니다~”
“헉, 혹시 해외파?”
나는 이 질문이 가장 어렵다. 해외파란 무엇인가. 해외에서 살았던 사람인가? 해외에서 살긴 살았다. 그게 중국이라서 그렇지. 고등학교를 중국에서 다니면서 보통과 좀 다른 학창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대신 시안을 가고 길거리에서 떡꼬치 대신 양꼬치를 사먹는 정도지 내가 중국어로 수업하는 중국 학교를 다니기를 했나,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하기를 하나. 국제학교를 나왔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보통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다양한 국적의 선생님들에게 다양한 언어로 공부를 배우는 환경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중국 소재의 “한국” 국제학교를 나왔다. 한국의 일반 교과목과 동일한 내용을 배웠고 11시까지 눈물의 야자를 했으며 ‘원어민 교사’가 몇 있었지만 그 밖의 교직원과 전교생이 한국인인 학교였다. 거기서 한국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한국 입시를 준비했다. 물론 그마저 일반적인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얼마나 흔한 환경인지 모르겠으니 영어학습에 좀 더 유리했겠으리라 생각은 하지만 영어권도 아니고 중국에 있는 한국 학교에서 영어 과목을 들은 걸 가지고 ‘해외파라서 영어를 자연스럽게 한다’고 하면 좀 웃기지 않은가.
게다가 나는 영어를 ‘모국어처럼’ 하지도 않는다. 모국어처럼 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냥 영어 전공자 내지는 영어를 오래 사용해온 사람만큼의 영어를 한다. 그리고 교육출판사에서 영어 교과서를 만들다가 ESL 석사를 한 사람만큼의 전문성이 있다. 그러니 나 또한 영원한 영어 학습자이다. 자주 필사를 하고 내 메모장엔 받아 적은 단어가 빼곡하다. 나의 영어는 나날이 늘고 있다. 하지만 배경을 설명하려면 말이 길어지니까 가끔은 그냥 해외에서 국제학교를 나온 걸로 하고 작은 오해를 남겨둔다.
그래도 그런 궁금증은 덜 곤혹스럽다. 국제학생 및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언어장벽으로 인해 느끼는 고충을 잘 안다. 너무 잘 안다. 어떻게 모르겠는가. 너무나 잘하고 싶은 것을 남이 잘할 때의 부러움 또한 자주 느끼면서 산다. 유난히 피로한 날이면 “하... 미국인들은 하루 종일 영어 해도 나만큼 안피곤하겠지...” 생각하며 잠든다. 그렇다고 한들 방금 만난 사람이 자신은 아직도 영어가 버거운데 나는 어째서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선생님은 회계사가 아니신가요...?”
“맞아요.”
“저는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가요...?”
“그렇죠.”
“회계사가 되기까지 해당 분야를 얼마나 공부하셨나요...?”
“꽤 했죠.”
“저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대뜸 그에게 “저는 왜 선생님만큼 회계를 못할까요?”하고 속상해하면 무슨 반응이 돌아올까 궁금해지지만 마냥 불쾌해 할 수도 없다. 나의 전문분야라는 것이 하필이면 만인의 도구가 되는 언어가 아닌가. 그는 회계를 하면서도 영어를 했을 테지만 나는 영어를 하면서 회계를 배우지 않았으니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영어로 인해 받는 과한 스트레스를 모르지 않는다. 초중고 내내 나도 비슷한 압박에 시달렸고 영어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고3 때는 토플에 매달렸는데 막상 입학하고 보니 내가 아는 신입생 중에 토플 점수로는 내가 꼴등인 것 같아 ‘문 닫고 들어왔다’며 자조했다. 취직을 준비하면서는 남들처럼 토익을 여러 번 쳤다. 처음 친 토익은 비전공생들한테 얘기하면 부러움을 사고 같은 과 친구들에게 얘기하면 안타까움을 사는 이도 저도 아닌 점수였는데, 그 점수를 들고 처음 갔던 면접에서는 “영어학과치곤 영어 점수가 그렇게 높진 않네요?” 소리를 들었다. 아직도 가끔 뭘 잘못 알아들어서 관공서 직원이 한숨을 쉴 때의 무안함을 내가 알고, 하루 종일 영어로 일할 때 자연히 배가 되는 긴장감을 내가 안다. 이만큼 영어를 하고도 아직도 부족한 게 많아 매일 읽고 쓰고 말하고 듣는 연습을 하며 모르는 단어를 받아 적는 내가 남들의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그걸 알기에 영어를 가르치고 싶었다. 미국에서 영어로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을 마음 깊이 응원한다. 그러니 모르는 이가 몰라서 하는 말에 내 전문성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이해심을 십분 발휘하려던 중 그가 첨언한다.
“살면서 영어로 스트레스받아본 적 없죠? 인생이 쉬워서 좋으시겠네요. 부럽다.”
그냥 마음 편히 기분 나쁘기로 한다.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