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두 세상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것 같았다. 언제나 조금씩은 평행우주를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기분으로 지냈다.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뒤로 그런 기분은 더 심해졌다. 가끔 교직원 회의에 앉아 이 조직의 흥과 망을 논하고 있자면 꼭 여기 속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그게 맞다. 나는 여기 속한다. 나는 이 직장에 상당한 소속감과 책임감과 불평불만과 안정감을 느낀다. 동시에 나의 다른 세상에서는 할머니가 영면에 들고 동생이 승진을 하고 사촌이 아기를 낳았다. 친구가 연애를 하고 또 이사를 하고 또 작품을 내기도 했다. 그중 어느 것도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그리고 두 세계의 사람들은 서로를 모른다. 두고 온 소중한 것만큼 새로 생기는 소중한 것들이 많아서 어느 것 하나를 포기하기도 애매한 지경에 이르렀다. 엄마와의 전화를 끊으면 한 세상은 곧장 단절되었다.
단절감에 익숙해진 나머지 나는 이 둘을 붙여놓으려는 시도는 한 적이 없다. 비싼 비행기삯과 그보다 더 비싼 나의 시간을 주고 둘 사이를 오가야 하는 것은 내 몫이었다. 그러다 무더운 7월의 애틀랜타에서, 눈앞에는 내가 출발한 세계의 유명가수를, 양 옆에는 내가 정착한 세계의 친구들을 두고서 마음이 이상해졌다. 이 여행은 모두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평소 콘서트를 찾아다니는 편은 아닌데, 어느 날 누가 나더러 조만간 있을 아이유의 콘서트에 가느냐고 물었다. 아이유가 여기까지 온다는데 왠지 가야 할 것 같았다. 한국인 친구에게 같이 가자고 했는데 친구는 시간이 안 된 댔다. 아무리 아이유라도 혼자서 밤늦게 왕복 8시간을 운전할 용기도, 그렇다고 혼자서 숙소를 잡아 하루 자고 올 여유도 없어 그냥 연이 아닌가 보다 했다. 며칠 후 J를 태우고 달리다가 음악을 틀었는데 아이유 노래가 나왔다. 그는 노래가 좋다고 했고 나는 조만간 있을 그의 콘서트에 가볼까 했으나 친구의 일정상 무산되었다고 했다. J가 대뜸 자기랑 가자고 했다. 그는 한국인도 K팝 팬도 아니므로 나는 그가 모르는 가수의 콘서트에 얼마까지 쓸 수 있을지 몰랐다.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 아마 티켓이 꽤 비쌀 것이라고 귀띔을 하였는데 J는 상관이 없댔다. 그다음 날 우리는 또 다른 친구 E를 섭외했다. 우리는 셋이 한 세트이므로. 대여섯 번쯤 “가수 이름이 뭐라고?”하는 질문에 답해주고, 너무 모르고 가면 재미가 없을까 하여 콘서트 셋 리스트를 공유해 주고, 그러고도 나 혼자만 재미있을까 봐 몰래 떨다가 우리는 함께 공연장에 앉아있었다.
이런 기분을 전에도 느껴본 적이 있었다. 학교에 엄마가 찾아왔을 때 기분이 이랬다. 결혼할 사람을 엄마한테 소개해주던 때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엉뚱한 곳에서 친구를 마주쳤을 때가 그랬다. 이 동네 한국인은 다 여기 있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은 나밖에 없는 곳에서 일을 하니 이렇게 많은 한국인은 근 몇 년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통역사가 말하기 전에 먼저 웃었고, 로마자로 표기된 자막이 전혀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앉아서도 노래를 불렀다. 중간중간 통역에 덧붙여 옆자리의 친구들에게 맥락을 설명해주기도 했다. (친구는 도대체 cheek heart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그다지 멀리 가지 않았는데 내 세계가 알아서 나에게 왔다. 심지어 나의 또 다른 세계가 여기까지 나를 따라와 이 모든 걸 함께 목도하고 있었다. 한국어를 모르는 친구들은 최선을 다해 밤편지를 따라 불렀다. 걔네가 다음번엔 꼭 플로어에 앉자고 했다. 공연 시간보다 한 시간쯤 일찍 오자고도 했다. 나름 여유 있게 온다고 왔는데 초짜들이라 여기저기 시간을 뺏겨 결국 오프닝을 놓쳤기 때문에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어야 하겠다고 했다. 걔네는 꼭 다음이 있을 것처럼 말했다. 그렇게 말하다 보니 꼭 다음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여기에 함께 와줘서 고맙다고 했고 걔네는 자기를 데려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영원히 만나지 않을 것 같던 평행우주가 잠깐 맞닿았다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는 공연이 얼마나 좋았는지, 아이유가 얼마나 예쁘고 다정한지, 사람이 어떻게 세 시간씩 노래를 하는 일이 가능한지 얘기했다. 마지막 앙코르에 그가 이제 목이 조금 쉰 것 같다고 했을 때 우리 모두 “아무래도 그렇겠죠...? 우리야 너무 아쉽지만 이제 그만 집에 가셔요...” 같은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함께 한국에 놀러 가자는 얘기도 했다. 모두의 신분에 여행이 허락된 것은 아니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우리는 미래를 도모했다. 이런 게 가능하다면 앞으로는 더 적극적으로 교차점을 만드는 일에 임해야 할지도 몰랐다. 단절감에 울며불며 불안해하기 대신 조금 더 정성껏 징검다리를 놓을 일이다. 내가 나의 세계고 나의 세계가 곧 나이므로 언젠가는 내 안에 둘이 모두 녹아 단일한 우주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