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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포 Feb 29. 2020

동자승과 나

어릴 적 나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자주 가곤 했다. 절에는 온통 할머니, 할아버지에 과묵한 사람만 가득해서 천방지축으로 나돌던 어린 내게 그곳은 영 맞지 않았다. 내가 절에 가기 싫어할 때면 어머니는 나를 달래기 위해 과자 한 봉지를 사주곤 했다. 가끔씩은 과자를 먹기 위해 일부러 절에 가기 싫은 척 나는 연기를 하기도 했다.


여덟 살 무렵이었다. 그날도 절에 가기 전 어머니와 함께 동네 슈퍼에 들렀다. 물론 내가 먹을 과자를 사기 위해서였다. 나는 진열대의 과자들 앞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체스터쿵’을 집었다. 체스터쿵 포장지에는 ‘치토스’의 치타 캐릭터가 나를 향해 엄지를 추켜올리고 있었다. 치타는 딸기 두 송이를 들고 있었다. 과자 봉지를 뜯으면, 치타의 딸기 두 송이에서 파생한 자극적인 향이 봉지 안에서부터 확 풍겼다. 과자는 딸기우유에 설탕을 퍼부은 듯 매우 달아서 예닐곱 개 꺼내먹으면 질려버렸다. 그러나 과자를 뜯고 처음 맛볼 때의 그 단맛은 좀처럼 잊기 힘든 자취를 혀에 남겼던지라 나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서 체스터쿵을 떠올렸다. 그날도 과자 진열대 앞에서 나는 체스터쿵이 남긴 자취를 떠올리고 있었다.




절을 향해 걸어가며 체스터쿵을 여섯 개째, 일곱 개째 입 안에 넣다 보면 역시나 또 질려버리고 만다. 그리고 도착했을 때는 '이 따위 맛없는 것에 홀려 지루한 절에 따라온' 데 대한 후회, 다 먹기 전엔 버리지 못하게 하는 어머니의 눈치, 경제관념이 나를 짓누를 뿐이었다. 어린이가 감당하기엔 벅찬 스트레스였다. 그런 내게 사찰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었다. 절 간판에 적은 글자도, 내부 모습도, 심지어 엄마가 거기서 무얼 했는지도 나는 보지 못했다. 어쩌면 보긴 했는데 금방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그날 그곳에서 기억하는 일은 딱 하나, 동자승과 만난 일이었다.


우리가 사찰 에 들어섰을 때 동자승은 자기 키보다 더 큰 빗자루로 마당을 쓸고 있었다. 팔다리가 짧고 머리는 몸에 비해 큰 게 딱 봐도 내 또래 같았건만, 그가 입은 승복이 위화감을 불러왔다. 우리를 본 동자승은 재빨리 고개 숙여 인사를 했는데, 다시 고개를 들던 그의 시선이 내 품에 있던 체스터쿵에 고정됐다. 동자승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그게 뭐예요?"

체스터쿵을 뚫어져라 보며 동자승이 말했다.

"이거 과자. 요번에 새로 나온 건데 달고 맛있다."

내가 말했다. 동자승의 얼굴을 바라보며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순간 그 아이 역시도 어떤 스트레스를 받게 됐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의 스트레스는 내 것과는 다른 차원에 있었다.


동자승은 체스터쿵의 과한 달콤함과 그에 따른 싫증을 알 리가 없었다. 체스터 쿵을 바라보던 그의 머릿속에서 이 과자는 한계효용()이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의 사탕 집을 뜯어먹는 장면을 보며 어린아이가 떠올릴 만한 일차원적이고 순수한 달콤함만이 있었을 것이다. 동화 속 마녀의 집은 체스터쿵 봉투 전면에서 선글라스 쓴 치타와 윤기 흐르는 분홍 과자로 현현해 동자승을 유혹하고 있었다.


"먹을래?"

나는 봉투 안으로 손을 찔러 넣어 과자를 잔뜩 움켜쥐었다. 불끈 쥔 주먹을 동자승 앞에 내밀었다. 일종의 제안이었다. 다른 세계(世界)로 오라는 제안. 발바닥 모양의 과자가 동자승의 입 안에서 잘게 부스러져 침과 섞일 때, 과자의 진한 딸기향은 아이의 마음 한 구석에 심을 신세계의 씨앗이 되리라. 늘상 먹는 사찰 음식으로는 결코 이루어낼 수 없는 각종 화학조미료의 유기 조합이 지난날 그가 먹은 식사의 초라함을 깨닫게 하리라 나는 생각했다. 그 초라함이 크면 클수록 체스터쿵에 대한 동자승의 애착은 점점 강해지고, 자석처럼 과자는 ‘씨앗’를 심은 지점으로 그를 끌어당긴다. 씨앗은 점점 자라 동자승의 가랑이 밑에서 싹을 틔우고, 널찍한 꽃줄기 위에 그를 싣는다. 그리고 마치 민들레 씨앗처럼, 동자승은 대세의 바람을 타고 속세로 넘어오는 것이다.


과자 한 입으로 동자승은 세계를 옮긴다. 행위가 세계를 바꾼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나는 한 손에 과자를 움켜쥔 채로 얼마나 들뜬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물론 선택은 동자승의 몫이었지만.

“괜찮아.”

그러나 그는 황급히 고개를 돌리더니 가버렸다.




동자승을 다시 만난 건 절에서 막 나가려 대문을 지나칠 때였다. 그는 미소를 머금고서 대문 앞의 돌계단 층계를 두 개씩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군밤이 든 흰 봉투를 껴안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절반도 먹지 못한 체스터쿵을 어머니의 눈치 때문에 들고 있었다. 이미 체스터쿵은 내게 과자가 아니라 짐이었다. 그러나 동자승에게는 다르지 않은가. 마침 잘 만났다. 나는 남은 과자를 그에게 몽땅 줘버릴 생각이었다.


대문 앞에서 동자승과 인사를 나눈 뒤 나는 그에게 과자 봉투를 내밀었다. 분명 그가 기뻐하리라 생각했는데,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체스터쿵을 바라보던 그의 애절한 눈빛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안에 든 내용물이 잘 보이도록 군밤 봉투를 앞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내게 웃어 보였다. 자신감과 묘한 비웃음이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절간 생활을 하는 그 순박한 아이가 지기 싫어 연기하는 것은 아니었을 테다. 남의 것에서 열등함을 찾아내어 그것을 짓밟는데서 오는 자연스런 우월감, 그리고 승자의 여유가 표정에 서려 있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동자승의 비웃음은 내게 열등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다만 묘한 것에 머무를 뿐이었다. 추측건대 그의 군밤이 체스터쿵보다 더 맛있다는, 동자승의 서열 정리에 나는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군밤이라면 나는 얼마든지 먹어봤다. 영양가는 차치하고 맛만 따진다면, 미각에 쉽게 탐닉하는 어린이의 관점에서 가장 쟁점인 달콤함을 따진다면 체스터쿵이 훨씬 매혹적이었다. 체스터 쿵을 맛본 적 없는 동자승은 그 맛을 실감할 수 없을 것이니 객관적인 비교를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낯선 먹거리의 품질을 끌어내리는 그의 이론은 하나밖에 없지 않았을까. '저 과자는 근본이 저질이다.'


그 맛이 아무리 뛰어나다한들 천한 것, 도에 어긋나는 것으로 간주당한다면 품평할 필요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안 본 사이 이러한 인식이 동자승에게 깃들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동자승을 다시 바라보는데 그의 승복이 눈에 띄었다. 처음 그를 봤을 때는 '아이가 승복을 입었다'는 느낌이었는데, 이제는 '승복을 입은 아이'로 느껴졌다. 미묘하지만, 끌려다니던 사람이 끌고 다니는 사람이 된 듯 달라졌다. 끌고 다니는 사람은 앞을 볼 수 있고, 갈 길을 알고 걷는다. 그는 불법 세계에서 앞을 인식하는 눈이 생겼다. 그 눈이 체스터쿵을 저질로 둔갑시켰다.


동자승에게 체스터쿵은 하나의 시험에 지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동자승이 과자를 먹었을지라도 그의 세계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시 과자 향에 맘을 뺏겼어도, 곧 불량한 것을 먹었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했을 것이다. 오히려 과자는 반성의 여지를 남겨서 본래 인식을 더욱 공고히 하는 담금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인식이 살아 있는 한, 행위로는 파계승이 될 수 없다. 인식에서 다른 인식으로 분명하게 옮기는 순간에야 파계승이 된다. 행위는 그저 한참 뒤에야 인식의 변화를 증명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행위는 세계를 바꿀 수 없다. 행위는 인식의 종속변수일뿐이다. 세계를 바꾸는 건 인식이다.


동자승은 비웃고 있었다. 나는 체스터쿵을 다시 내 품으로 당겼다. 나는 그가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벽으로 비켜섰다. 동자승은 꾸벅 인사한 뒤 군밤을 껴안은 채 깡충깡충 뛰며 가버렸다. 다시 그를 만나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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