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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블레이더 Jul 31. 2024

머리 없이 보낸 9일

바퀴벌레가 된 나, 현실인가 꿈인가

김철수는 늘 그랬듯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기지개를 폈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그의 손이 머리카락 대신 단단한 갑각에 닿았다. 놀란 그가 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몸이 이상하게 납작했다. 거울을 향해 기어가는 동안 그는 자신의 몸이 여섯 개의 다리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갈색 바퀴벌레의 모습만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철수는 소리치려 했지만, 온몸을 통해 나온 것은 '지지직' 하는 소리뿐이었다.

패닉에 빠진 철수는 방 안을 빙빙 돌며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6개의 다리로 벽을 오르내리는 감각은 너무나 생생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바퀴벌레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내 의식은 그대로인 것 같아." 철수는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때 철수의 룸메이트인 박민호가 방에 들어왔다. 


"으악! 바퀴벌레다!" 


민호의 비명과 함께 커다란 슬리퍼가 철수를 향해 날아왔다. 철수는 본능적으로 재빨리 피했다.

"야! 나야, 철수라고!" 

하지만 민호의 귀에는 그저 징그러운 바퀴벌레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이놈의 바퀴벌레, 오늘은 꼭 잡고 말겠어!"


민호는 신문을 들고 철수를 쫓기 시작했다. 철수는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그의 새로운 몸은 놀랍도록 빠르고 민첩했다. 벽을 타고 천장을 달리는 감각은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했다.


"와, 이거 생각보다 재밌잖아?" 

잠시 도망치는 것을 즐기던 철수였지만, 곧 현실을 직시했다. 그는 어떻게든 민호에게 자신의 정체를 알려야 했다.


며칠 동안 철수는 민호에게 신호를 보내려 노력했다. 그는 민호의 책상 위에 규칙적인 패턴으로 움직이며 주의를 끌려 했지만, 민호는 그저 귀찮은 벌레로만 여겼다.


일주일이 지나고, 철수는 점점 지쳐갔다. 그는 이제 바퀴벌레의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더 이상 역겹지 않았고,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것이 편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민호가 마침내 철수를 덮쳤다.


"잡았다, 이 녀석!"


민호의 손에 철수의 몸이 꽉 잡혔다. 철수는 공포에 질렸다. 

"안돼, 제발! 나를 죽이지 마!"

그때였다. 


민호의 손에서 미끄러진 철수의 머리가 '뽑'하고 떨어져 나갔다. 


"으악!" 

민호는 기겁을 하며 철수의 몸을 던져버렸다. 


철수의 의식은 순간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 그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더 이상 보거나 듣거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의 세계는 오직 촉각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어... 이게 무슨...?"

철수는 혼란스러웠다. 그의 의식은 여전히 깨어있었지만, 머리 없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문득 바퀴벌레에 대해 들었던 과학지식을 떠올렸다.


"바퀴벌레는 머리가 잘려도 9일 동안 살 수 있다고 하던데... 설마 이게 진짜라고?"


이제 철수에겐 9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했다. 


첫째 날, 철수는 자신의 새로운 상태에 적응하려 노력했다. 시각, 청각, 후각은 모두 사라졌지만, 그의 몸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촉각 기관이 된 것 같았다.


둘째 날, 그는 자신의 머리를 찾아 나섰다. 미세한 진동과 공기의 흐름을 감지하며 방 안을 돌아다녔고, 마침내 쓰레기통 근처에서 자신의 머리를 발견했다.


셋째 날부터 철수는 자신의 머리를 이용해 민호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민호가 항상 앉아있는 책상 위로 올라가 규칙적인 패턴으로 앞 다리로 머리를 잡고 책상 위에 찧어 소리를 냈다. 모스 부호로 짧게 세 번, 길게 세 번, 다시 짧게 세 번... 이 동작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룸메이트가 갑자기 사라져 무료했던 민호는 바퀴벌레가 하는 이 이상한 쇼를 멍하게 바라봤다. 


나흘째 되는 날, 민호가 마침내 이 이상한 행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반복된 소리로 뭔가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따따... 어, 이거 SOS 아니야?


다섯째 날, 민호는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그는 종이에 "너는 누구니?"라고 적어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철수는 흥분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철수"라는 이름을 재차 모스 부호로 표현했다.


여섯째 날, 반복되는 소리를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민호는 충격에 빠졌다. 그는 이 바퀴벌레가 정말로 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혼란스러워했다.


일곱째 날, 철수의 몸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민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철수를 지켜봤다.


"정말 네가 철수니? 어떻게 이런 일이..."


여덟째 날, 철수의 의식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후회와 감사의 마음을 느꼈다. 


아홉째 날, 철수는 마지막 힘을 모아 민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의 다리가 마지막으로 움직이고, 모든 것이 완전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


철수는 눈을 떴다. 그는 자신의 침대에 누워있었다. 


"꿈이었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하지만 방 한구석에서 들려오는 민호의 목소리에 그는 흠칫 놀랐다.


"어, 철수야. 네가 마침내 깨어났구나. 9일 동안이나 꼼짝도 않고 자더니."


철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민호를 바라봤다. 그의 머리맡에는 바퀴벌레 퇴치제가 놓여있었다.


"아, 이거? 며칠 전부터 방에 이상한 바퀴벌레가 나타나서. 근데 왜 그러지? 뭔가 이상한 꿈이라도 꿨어?"

철수는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는 문득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손가락이 여섯 개로 보이는 듯했다가, 이내 다섯 개로 돌아왔다.


"에이, 설마."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그의 등 뒤로 미세하게 무언가가 움찔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일상의 평범함 속에 숨어있는 기괴함과 초현실적 요소를 조합했습니다. 현대인의 고립된 삶과 소통의 부재를 바퀴벌레라는 혐오스러운 존재에 빗대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도 담았습니다. 삶과 죽음, 정체성의 문제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며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자 했습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의 중요성,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자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글의 처음 의도는 그랬으니까요.

참, 바퀴벌레가 머리 없이 9일 산다는 건 진짜입니다. 과학적인 사실입니다. 
https://www.threads.net/@bookblader/post/C-FlmpFPg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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