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 부캐를 기르고 싶은 당신에게
저는 지난 7월 14일부터 8월 11일까지 5주간 밑미홈 <위로하는부엌>에서 팝업다이닝을 기획해 운영했습니다. 평소에 함께 콘텐츠 작업을 한 적이 있던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Meet me)가 운영하는 공간 밑미홈에는 '위로하는 부엌'에서 매주 수요일 5주간 팝업 다이닝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받았거든요.
아, 제 소개를 좀 해야 왜 이런 제안을 받았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네요. 저는 현재 푸드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조리고등학교를 나와 고등학교때부터 요리를 해왔고, 이후 푸드 전문 매거진 <라망(La main)>의 에디터, 요리책 전문 편집자로 일하고, 현재 1인 콘텐츠 제작사 <단단한바다>를 운영하는 푸드 콘텐츠 기획자입니다. 잡지 등 지면에 들어가는 음식 관련 기사부터, 영화/드라마 속의 푸드 스타일링, 음식과 관련한 전시/행사를 기획하기도 하고, 국내외의 레스토랑의 PR 업무도 맡아 진행하고 있습니다.
디테일한 소개는 최근에 진행한 우먼 웰니스 브랜드 브랜드 라엘<Rael>과의 인터뷰로 대신할게요!
>> https://www.getrael.co.kr/blogPost/raelwomen7
워낙 요리를 좋아하고, 어찌보면 한길만 파고 있는 셈이라 주변 사람들은 저를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이고요. 게다가 고등학생때지만,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있고, 외식 업계에서 7년째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비전문가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죠. 외식업계의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면서 국내외의 수많은 미식 이벤트에 참여하고, 팝업 다이닝/콜라보레이션 다이닝 등을 직접 기획해본 경험도 많고요. 그래서 저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식당을 운영한다는 것에 대해서요.
"재밌을 것 같다! 가볍게 해보면 되지 않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업계에서 다양한 일과 경험을 해왔다고 한들 가게를 운영하는 일은 차원이 다른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5주간의 기나긴 여정이요. 꼭 요리사 부캐로 팝업 다이닝을 기획해보고 싶은 분이 아니라, 언젠가 나만의 가게를 가지고 싶은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제가 팝업 다이닝을 기획하고 운영했던 기록을 담은 <요리사 부캐를 기르고 싶은 당신에게>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하루든 일주일이든 정식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장소가 필요합니다. 저같은 경우는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팀으로부터 제안을 받은 것이라 장소에 대한 고민은 없었어요. 이미 존재하는 레스토랑을 대관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에요. 아무래도 집기나 도구, 커트러리 등이 어느정도 세팅이 되어있으니까요. 친분이 있는 가게의 휴무일에 팝업 이벤트를 하는 방법 또는 해당 가게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형태로 이벤트를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대관료를 내는 방법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수익쉐어로 진행하기도 해요. 꼭 미리 이야기를 나누어두기를 추천합니다.
드물지만 팝업 이벤트 전용으로 만들어진 공간도 있어요. 북스테이지 처럼요. 팝업다이닝이라고 하면 꽤 거창해보이지만 요즘은 집에서 자신의 이름/닉네임을 딴 '0마카세' 라는 것들이 유행을 하고 있죠. 그런 홈-다이닝 이벤트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대관료가 없고, 장소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편하지만, 집을 불특정 다수에게 열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더불어 인원수에 맞는 그릇/커트러리 세트를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것도 큰 단점 중 하나입니다.
무엇이 좋다 나쁘다 보다는, 내가 어느 정도 인원과 규모로 행사를 진행하고 싶은지에 따라 투자해야 할 분야가 달라진다고 할까요. 내가 어떤 형태의 행사를 만들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죠. 제 경우에는 그럴 때 눈을 감고 내가 보고싶은 풍경을 그려보는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 "사람이 북적북적했으면 좋겠어"라거나 "오붓하고 로맨틱한 분위기라면 좋겠네" 정도의 아이디어만으로도 어느정도 가닥이 잡힐거에요.
장소가 정해졌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봅시다. 행사의 콘셉트를 정해야 해요. 제가 여태까지 다양한 팝업다이닝을 기획하면서 찾은 몇 가지 방법을 공유해보자면,
1. 계절이나 나라, 지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움직인다.
2. 테마가 될 장소를 정한다. ex) 시장, 포장마차, 분식점 등
3. 메인 식재료를 정하고 거기서부터 확장해나가본다.
4. 자신이 있는 요리를 정하고, 그 요리와 관련있는 테마를 찾는다.
다른 방법들도 있지만 그건 전문 셰프들에게만 쉬운 방법이라 스킵하겠습니다. 각각의 방법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볼게요. 제가 기획했던 행사 중 참고가 될만한 행사를 첨부해두었어요!
1번, 계절을 정하는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그 계절의 제철 음식,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면 되고요, 좋아하는 나라/지역을 정하면 특산물이나 대표 음식을 선보이면 됩니다. 겨울이라면 마른 식재료나 구황작물을 위주로, 가을에는 해산물과 곡식류가 있겠죠? 단발성 팝업이라면 그 즈음의 절기음식을 선보이는 것도 좋습니다. 나라를 정하는 것도 좋아요.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그 여행지의 음식을 선보이는거죠. 기본적으로 스토리텔링을 하기가 쉽기 때문에 메뉴나 음료를 정하는데도 훨씬 수월한 편입니다.
ex) 한희순 발효 갤러리와 연천의 식재료를 이용한 소셜 다이닝 [발효-하다] (2019)
티에리스와 김범주 셰프의 [가을걷이 다회] (2020)
2번의 경우 상상력이 조금 더 필요해요. 개인적으로는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마음 속에서 테마파크 속 음식점을 만든다고 생각해보면 되는데요. 예를 들어 시장을 주제로 한 테마파크를 만든다고 하면, 시장에서는 어떤 음식을 만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겠죠? 제 기억 속 시장은 강원도(=집이 강원도거든요)라 메밀전과 전병이 있고, 떡볶이, 순대, 손으로 빚은 만두 같은 것도 있었고요. 그런 식으로 확장해나가면서 어떤 메뉴가 있어야 할지, 어떤 식으로 꾸며야 할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ex) 코다차야를 콘셉트로 다양한 메뉴를 선보였던 [바이트클럽 vol.3] (2021)
3번의 경우 식재료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셈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한 식재료를 주제로 다양한 메뉴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라 메뉴를 지루하지 않게 구성하기가 까다로울 수 있어요. 메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따로 설명할게요.
4번이 가장 쉬울 수 있는데, 그냥 일단 내가 자신있는 요리를 몇 개 정해놓고, 그 요리 중 2개 이상을 묶을 수 있는 공통 개념을 찾는 거에요. 파스타라거나, 샌드위치라거나, 타코, 술안주가 될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어울리는 다른 메뉴를 추가 구성하면 되니까 이 방법도 괜찮습니다. 저는 고기를 넣은 토마토 소스인 라구 볼로네제(Ragu Bolognese)를 잘 만들어서 몇 년 전 '라구 팝업' 이라는 이름으로 파스타와 라자냐를 판매하는 팝업을 하기도 했어요.
ex) 제가 좋아하는 라구를 소개한 [라구 팝업] (2018)
이번에는 저도 1번 루트를 따랐어요. 여름의 제철 채소를 활용하는 음식을 만들기로 하고, '리틀 포레스트; 여름편'이라는 메인 컨셉을 잡았습니다. 여름은 워낙에 채소나 과일이 맛이 잘 드는 계절이기도 했고, 채소를 이용한 음식들이 밑미홈의 '위로하는 부엌'이라는 콘셉트와도 잘 맞물렸고요.
콘셉트가 어느정도 정해졌으니, 이제 메뉴를 짜야할 시간이죠?
다음 글에서는 메뉴를 어떻게 짜는지! 특별히 제 노하우를 탈탈 털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