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밍글 Mar 07. 2023

끝 앞에서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

영원하지 않음이 주는 선물

최근 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여러 계기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존재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한정적이라는 것을 매 순간 인식하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을 자각함으로써 실존을 회복할 수 있다고 했다. 죽음을 자각한다는 것은 자신이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죽음의 가능성을 직시해야만 개인은 자신의 삶을 정말로 살 수 있게 된다.


어떤 당연한 명제와 같은 말도 어떠한 경험으로 인해 그 말의 가치가 재조명되곤 한다. 맞는 말이고 좋은 말이지만 나에게 스쳐 지나갔던 말은 경험을 통해 비로소 나에게 다시 새로운 모양으로 찾아온다. 내게 이번 1, 2월은 여러 국면에서 끝을 경험하게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경험들을 통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얻게 된 저 문장을 다시 한번 한 글자 한 글자 톺아본다. 결론은, 끝 앞에서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끝이 있기에 주어진 시간에 더욱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끝 앞에서 나는 겸손할 수 있다. 갑자기 닥친 관계나 어떤 상태의 죽음 앞에서 나는 그 사람을, 그 관계를, 또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빠져나가는 한 조각이라도 잡으려고 발버둥 치고 싶어 지게 된다. 그렇게 나는 조금 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성실히 사랑하고, 더 많이 살 수 있게 된다.



1. 짧은 미국 생활이 가져다준 교훈


미국은 아주 큰 나라다. 내가 살고 있는 샌프란시스코부터 동부에 있는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편도 6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나라이다 보니, 주에서 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대학원을 가러,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서, 또는 여자친구/남자친구가 이사 가서 함께 살기 위해서. 또는 더 이상 미국에 살지 않겠다고 한국으로, 또는 다른 고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다.


한국은 서울에 많은 인구가 집중되어 있고, 주변에 공대 친구들이 많지 않은 나로서는 지방으로 이사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다. 오늘의 친구와 내일도 볼 수 있었고, 꽤 오랫동안 자주 보면서 생각을 나누고 시간을 보내면서 삶의 조각들을 함께 칠해나갈 수 있었다.


아직 미국으로 본격적으로 넘어온 지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꽤나 많은 이별들을 경험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던 친구들이 최근 뉴욕으로, 다시 한국으로, 텍사스로, 뉴저지로 떠났다. 이 이별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소중함을 되새겨 주었다. 내일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이 친구와의 만남이 오늘이 끝일 수도 있고, 바빠서, 피곤해서, 귀찮아서, 힘들어서 미뤄온 만남에서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소소하더라도 현재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미래에 함께 하기로 약속한 거창한 계획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 이런 이별들은 나를 게으른 완벽주의보다는 성실한 다정함이 관계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 또한 떠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최근 알게 되었다.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샌프란시스코보다는 다른 주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래서 몇 년이고 있을 것 같았던 샌프란시스코 생활이 언제까지가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곳에 더 오래 있고 싶고 그러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 그런 불확정성에 힘들어하기보다는 그것을 거꾸로 이용해서 천년만년 있을 것 같았기에 비교적 게을렀던 서부 여행이나 샌프란시스코 도시 곳곳을 돌아보는 것을 올해는 좀 더 부지런하게 해 나가려고 한다.



2. 갑작스러운 부서 변경이 가져다준 깨달음


그저 침잠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꽤나 흐릿하다. 특정한 사건 하나 때문이 아니니 발단이라고 말하기 어렵겠다. 작은 실패와 좌절이 차츰 누적되어 어느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쌓여 있었을 때. 무너진 나를 달래줄 다른 자아들이 모두 닳아버려서 내가 나를 구원할 수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고 긍정적인 내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잃은 것 같아 퍽 슬펐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고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혼란스러웠다. 정말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되었던 것 같았다. 내가 무엇에 설레는지, 나를 움직이게 하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 어떤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고 생각해 보려 애써도 생각이 잘 이어지지 않았다.


미움이라는 감정이 스스로를 얼마나 갉아먹는지에 대해서도 배워야 했다. 나를 명백히 싫어하는 사람을 대하는 매뉴얼은 내겐 없었다. 사실 이전에도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있었겠지만, 애초에 나는 모두의 마음에 들 수도 없다고 생각하고,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기 때문에 '그런가 보다'하며 넘길 수 있었고 그다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나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품고 있던 사람은 내 인사권자였고, 나는 그의 폭력적인 말들을 그냥 흘려 넘길 수 없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상황이 조금 달랐겠지 싶다. 회사 생활이라는 게 어떤 지 알 만큼은 그래도 회사 생활을 해 봤고, 그때그때 나를 시험에 들게 했던 나름의 어려움들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었을 때는 회사 생활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였다고 치면, 지금은 75%였다. 회사 밖의 삶이랄 게 사실상 거의 없었다. 퇴근 후에 소소하게 운동을 하거나 주말에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지만, 가족도 친구도 애인도 취미도 있던 한국과는 확연히 다른 삶이었다. 회사 일에 감정이입하지 않고 내가 할 만큼을 충분히 해 내고, 집 가면 잊어버리는 게 됐던 과거와는 달리 어느샌가 내가 회사 일에 너무 감정 이입을 하고 있었다. 상사의 부정적인 발언들을 집 가서 혼자 곱씹고 또 곱씹었고, 이러한 스트레스 상황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던 몸과 마음은 그대로 얼마 안 가 다 닳아버렸다. 미국 와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것의 중요성을 간과한 벌을 받은 셈이다.


차라리 업무에 대한 명확한 피드백이었다면, 그 내용이 얼마나 부정적이든 간에 털어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피드백을 달라고 해도 '알잘딱깔센'을 요구하며 동료 앞에서 면박을 주는 그 태도에 처음엔 당혹감이 들었고, 그 감정은 수치심이었다가, 분노였다가, 무력감으로 변모했다. 이 모든 감정이 점철되어 얼룩덜룩 너덜너덜해진 나는 퍽 애잔했다.


인사이동을 요청하거나 이직을 할 생각도 없었다. 왜냐하면 상사의 부정적인 발언들에 이미 담가져 있어서, 실제로 그런 말을 듣는데 내가 어느 정도 기여를 한 게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망가는 모양새가 스스로 자존감을 더 깎아먹을 것 같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가스라이팅을 당한 거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를 이겨 먹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다. 더 열심히 해서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도 해 봤지만, 자아가 강한 사람이라 이미 박혀버린 그의 인식을 꺾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다.  


또한 더욱 나를 극한으로 내몰았던 건 고립감인데, 이 고립감은 내가 자초한 것이다. 이 상황 속에서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라 생각했다. 오롯이 내 몫의 문제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는 이 생각이 참 오만이었다 생각이 드는 게, 결국 나는 사람으로서 치유받을 수 있었고 관계 안에서 나를 조금씩 다시 찾아 나갈 수 있었다. 이렇게 스스로 자신 없고 내가 봐도 못난 시점에서 나를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도 내보이는 게 쉽지 않았고 창피했다. 이 글을 빌어 그런 나를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주거나 어깨를 내어준 Y, R, J, T에 무한한 감사함을 담아 보낸다. 또 내가 상황에 매몰되지 않도록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고 느낀다. 힘들었던 이 시간(작년 12월부터 약 3개월 간)을 계기로 많은 것에 겸손해지게 된 것 같다.  


힘들어했던 시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 고난의 시간들은 말 그대로 '뚝' 끊겨 버렸다. 갑자기 2월 어느 목요일에 인사이동이 되게 되었다는 소식을 그 상사와 인사팀으로부터 듣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바로 새로운 팀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언제 그런 괴로운 시간이 있었냐는 듯 그렇게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와 나를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가져다 놓았다.


그렇게 나를 괴롭혔고, 나를 싫어했고, 나도 좋아하기 어려웠던 상사이지만 끝 앞에서 모든 미움과 원한이 정말로 사라져 버렸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었겠지, 또는 나를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고 싶었지만 관리자로서 서툴러서 그 방법을 잘 몰랐던 거겠지 등의 생각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이전 팀에서 잘 못 해준 것만 생각이 나고,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은 모두 포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 받았던 많은 도움과 고마움만 남은 상태로 나는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경험이 꽤나 강렬했어서, 그리고 당시에는 기록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던 내용을 짧게나마 적어본다. 이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교훈은 이 정도가 아닐까.


1. 회사 일이든 무엇이든 나를 해쳐가면서 할 만큼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2. 어떤 일이든 너무 감정이입하지 말고 거리감을 유지할 것. (나 스스로와도, 필요하다면)

3. 무조건 부정적인 경험은 없다. 지금 힘들더라도 돌이켜보면 분명히 얻는 것이 있을 것.

4. 영원한 건 없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을 성실히 해 나가면 된다. 그게 쌓이면 엄청난 변화/성장이 되어 있을 것.

5. 그럼에도 너무 힘들다면 도망가도, 돌아가도 된다. 다시 1번의 결론으로.



사진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회사 앞 블루보틀 카페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 순간을 언젠가 그리워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퍽 아련해서 이 순간을 더 살겠노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샌프란시스코 젤라또 맛집 추천: Lush Gelat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