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거창한 주말보다도 진정으로 '누릴 수 있던' 하루였어
여행을 할 때, 즉흥적이고 나른한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알차게 계획을 해서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는 하루도 좋다. 그런데 카페에 노트나 책 한권 들고 나와서 느즈막히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여유를 부리거나, 혼자 공원 벤치에 앉아 노래를 들으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처음 만난 사람과 가벼운 한 두 마디 인사를 나누는 것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지금 본인은 샌프란시스코에 1개월 째 살고 있다. 아주 뉴비라, 아직은 관광객과도 같은 마음 가짐으로 생활하고 있다. 여유 시간과 주말이 있다면,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한다. 도서관에 가보고, 관광지에 가보고, 맛집과 미술관에 가고, 영화와 공연을 보고! 시간을 쪼개고 쪼개고 잠을 줄여서 매 순간 매 초를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언제 또 올지 모르는 시간이고, 누리고 싶은 것들이 정말이지 너무 많아서 큰일이다. 그런데 지난 주말은 왜인지 조금 더 현지에 스며든 로컬같은 하루를 보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곳에서 보낼 수 있는 완벽한 주말의 여러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하나를 지난 주말에 해냈다. 날 좋은 날 맛있는 브런치를 먹고 풀밭에서 피크닉하는 것! 딱 마침 지난 주말 샌프란은 날씨가 정말 좋았다. 정말 이 날씨에 밖을 나서지 않으면 거의 불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일찌감치 준비해서 친구들과 MAMA's 라는 유명한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따로 예약을 받지 않아 한 시간의 웨이팅 끝에 들어갈 수 있었고(미국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웨이팅을 하는군),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사람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네 가지 종류의 메뉴를 시켰는데, 그 중 단연 1위는 '몬테크리스토'. 프렌치토스트와 비슷한 맛이 나는데, 햄과 달걀 등이 있어 조금 더 든든하고, 블루베리 콩포트에 발라 먹으면 달달하니 맛있었다.
이 메뉴 말고는 클래식 에그베네딕트, Dungeness Crab 에그베네딕트, 클래식 오믈렛을 시켰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나는 에그베네딕트에 게가 들어간 것은 처음 봐서 Dungeness Crab 에그베네딕트는 꽤나 신선했다. 커피는 그냥 그냥~. 정말 더워서 아이스 커피를 시켰는데 얼음이 몇 알 없던게 아쉬웠다.
다 먹고 자리를 이동해서 20분 정도 거리의 미션 돌로레스 파크에 도착했다. 피크닉에서 시원한 음료가 빠질 수가 있겠는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씩 픽업해왔고, 따가운 햇볕에 금새 녹았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은 괜찮았다.
도착하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날씨를 누리기 위해 공원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재밌었던 점은, 사람들이 그렇게들 벗고(?) 있었다는 것. 오전 출근길에도 종종 웃통을 벗고 뛰는 사람들을 마주치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나는 나에게만 보이지 않는 바다가 공원 어딘가에 있나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수영복만, 또는 아주 최소한의 천만 입고 있더라고. 정말, 정말, 정말 최소한만. 웃옷 정도야 정말 대다수가 벗고 있었다. 덕분에 누드비치에 아직 가본 적 없지만 심정적으로 이미 다녀올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자유로이 이 여름을 만끽하는 모습이 퍽 좋았다.
재밌었던 게, 주말이 끝난 후 회사에 출근해서, 사무실 동료 B님이 "주말에 뭐 하셨어요?" 물어보시길래, 미션 돌로레스 파크에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이어지는 말은,
"드디어 샌프란시스코에 오셨군요. 환영합니다. 벗고 있는 사람들을 500명 정도 보셨겠군요."
500명은 재미있게 과장된 숫자이지만, 정말 100명은 넘는 사람들의 자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다양성이 좋고 영감을 받는 요즘이다.
돗자리를 친구들이 가져와 준 덕에, 풀밭에 앉아서, 누워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눴다. 혼자 여행을 다닌 적이 많다 보니, 나는 보통 공원을 산책하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서 공원에 랜덤하게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는 쪽이었는데, 당사자가 되어 본 경험이 처음이라 설레고 행복했다. 새로운 자극이 많이 쏟아지는 요즘이지만, 그럼에도 이 날은 아주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것 같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태양이 그 정도로 뜨거울 거라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은 두피와 팔 부분이 벌겋게 부어 올라 있다. 아주 약간의 화상을 입은 걸까...? 알로에 젤이 진정에 도움이 된다고 하던데 잘 알아봐야겠다. 영광의 상처야..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라 활기차고 밝은 버전이었는데, 다음번에는 책과 커피, 과일을 들고 나와서 혼자 좀 더 본격적인 여유로움을 만끽해 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만 해도 아주 Filling한 시간이 될 것만 같다.
이번 토요일에 혼자 갈 만한 곳을 찾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