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우물 벽을 깨는 개구리 밍구리
조금 유난스러운 면이 있다. 조금 극단적이기도 하다. 이러한 특성이 장점이 될 때도 단점이 될 때도 있다.
원하는 게 있으면 가져야 하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 즉시 해야 한다. 추진력이 좋고 산만하지 않다. 집중을 매우 잘한다. 무언가 하나에 꽂혀 있으면 그것만 판다. 세상의 다른 잡음들을 거의 스위치 on/off로 통제하듯 끌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잠시 동안은.
이게 문제다. 사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좋은 습관은 아닌 것 같아 교정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성향 자체가 쉽게 바뀌지가 않아 무언가에 집착하는 스스로를 제어하는 데 꽤나 진땀을 뺀다. 때때로 이 중간이 없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조언을 듣기도 한다.
한 때 그림이나 자격증 A를 준비했을 때처럼 미쳐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요즘은 영어 공부에 약간 진심이다. 학창 시절에는 영국에 대한 모종의 환상이 있어서 영어를 되게 배우고 싶어 하고 좋아했던 것 같은데, 아예 내려놓은 지 6년이 넘었더니 요즘에 매일같이 마주하게 되는 내 실력이 참담하다. 여행을 위한 생존 영어 정도야 할 수 있지만, 딱 그 정도다. 비즈니스 영어를 하거나, 영어로 형이상학적인 이야기를 나누거나, 영어 소설과 철학책을 읽는 것은 너무 불편하고 괴롭다. 영어로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것도 부담스럽고, 영어로 사고하고 말할 수 있는 내 세계가 꽤나 얄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좋아하는데, 영어 원서는 정말 문외한이다. 대학 시절 전공 책을 영어로 보긴 했었지만, 본인은 경영학과를 나온 관계로 대단한 영어 실력은 필요 없었다. 학문의 성격에 맞게 단어는 아주 실용적이었고 간결했으며, 미사여구 없이 경제적인 어휘 선택을 했다. 몇몇 회계, 재무 용어로 명사들(ex. Amortization)만 새로 익히면 됐었다. 간단했고 부담도 낮았다.
그래서 안주했던 것 같다. 입사하고 나서도 중국인들과 일을 할 일이 있어 영어를 필요에 의해 사용할 일이 있었지만(본인은 중국어를 아예 못 한다) 주로 숫자로 이야기하는 일이었기에 유창한 영어실력이 요구되지는 않았었고 그대로 정체되었던 것 같다. 외부 상황과 무관하게 내가 내 안에서 더 많은 과제를 부여하고 도전을 했으면 계속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성장에 대한 동력을 나는 외부 자극으로 찾았고 그런 안일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미국에 와서 느끼는 내 영어 실력은 정말이지 형편이 없어서 하루하루가 괴롭다. 아니 뭐 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냐,라고 하면 지금 이 순간의 기분이 조금의 MSG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 혼란스럽기도 한데, 분명 회사 리서치를 영어로 하고, 영어로 회의를 하고, 서점에도 영어 책뿐인 이 상황이 매우 낯설고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 영어 앞에서 작아진 경험이 살면서 꽤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제일 욕심이 있을 때 제일 작아졌던 것 같다. 이건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에게나, 또 그 어떤 분야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잘하고 싶고 나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데, 한참 못 미치는 나를 바라보며 그 간극에 아파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래도 미국에 체류하는 동안, 뭐라도 해보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좀 더 나를 내몰아 보려고 한다. 더 부딪히고, 더 괴로워하고, 더 날 것의 상태에서 기본기를 키우고 싶다. 나를 죽이지 못한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며.... 읍읍.
영어와 관련된 몇 가지 도전들이 있는데, 재밌는 것 두 가지를 공유해볼까 한다.
1. Local Book Club 합류
샌프라니언들이 퇴근하고 한 시간~한 시간 반 정도 카페에서 만나서 각자 책을 한 권씩 소개하고 생각을 나누는 모임에 합류했다. 이 모임은 아주 캐주얼하다. 책을 가져와서 원하는 사람끼리 책을 교환해도 되고, 책을 아예 안 가지고 와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씩 열리는 모임이지만 원하는 빈도로 참가하면 되고, 참가비도 없다. 책을 안 읽고 와도 되고, 와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만을 들어봐도 된다.
며칠 전 이 모임에 처음으로 나가 보았는데,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책 선정을 보는 것이 재미있었고 그 안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왜 그 책을 선택했으며 어떤 부분에서 작가에 동의/반대하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질문도 매우 자유롭고 정말 좋은 질문들이 많았다. 한국에서도 북클럽활동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 북클럽 경험에서의 질문들은 조금 진지했고 무거웠다. 독자가 가지고 있는 거창한 철학에 관한 것이나, 이 사회에 대한 어려운 질문들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모든 한국 모임이 그렇다고 일반화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이날 모임에 나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평균적으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많이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가능했던 기발하고 우스꽝스러운 질문이나, 가볍고 익살스러운 답변들이 아주 재미있었다.
모든 사람이 최근 읽고 있는/ 좋았던 책을 한 권씩 들고 나와 소개를 했고, 나 같은 경우는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들고나갔다. 한국어로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인데, 영어로 읽느라 이번 주에 아주 고통을 받았다. 모르는 단어가 한 장에 열개가 될 때도 있어서 페이지가 도대체 넘어가지를 않더라니까. 아직 영어를 배우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을 읽느라 아주 진땀을 뺐다는 것을 고백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고 시작해서 나는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 시지프스라는 소재를 작가 고전 그리스 신화에서 어떻게 가져와서 어떻게 책 전반에 활용하고 있는지, 이 책이 왜 니힐리즘에 빠지지 않고 사람 존재를 긍정적으로 조명하는지, 작가가 역설하는 바가 무엇이라고 짐작하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물론 아주 서툴고 어려워하면서 말이다.
사실 이 모임에 참가하기 전 날에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을 미리 정리해서 script를 짜야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부담이 되었고 자신이 없었는데, 일단 부딪혀 보니 그래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다들 내가 왜 이 타지에 와서 그렇게 진지하고 어려운 책을 골랐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국에 와서 이러이러한 struggle이 있어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 졌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떤 60대로 추정되는 한 여성 분은 농담으로 순서가 바뀐 것일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그 책을 마음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텐데, 여기 와서 영어 버전의 시지프 신화를 읽겠다는 나의 선택이 매우 흥미롭고 또 동시에 나의 struggle의 유발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시면서 다음 내 책이 너무 기대가 된다 하셨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하.
아마 다음 모임에도 전 날에는 마음의 문제가 생기고, 가기 싫을 수도 있고, 괴롭고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나를 가두고 있는 우물 벽을 깨 나가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2. 우리 이제 영어로 말해볼까?
고등학교 때 J라는 친한 친구가(이 친구는 영어를 아주 잘하는데도 열심히 하던 친구였다) 영어로 대화할 것을 제안한 적이 있다. 영어 세상에서만 주고받을 수 있는 어떠한 감성을 전달하기 위함이었을지, 영어를 잊지 않고 계속 사용하기 위함이었을지, 그게 더 편해서였을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때에도 나는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 않았었고, 내가 원하는 것의 반의 반도 전달이 안 되니 종종 하다 말았던 것 같다. 그 친구와의 대화는 그래서 주로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가 아닌 한국인 친구들과 J는 지금까지도 (영어가 편하고 영어로 말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친구들과는)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여기서 친해진 친구들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한국인 친구들도 있다. 세 명이랑 친해졌는데, 그중 두 명은 20년 이상 미국에 살았고, 다른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2주 여행을 2번 와본 게 다다. 이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재밌고, 사실상 정서가 거의 미국인과 다름없기에 이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내가 localize를 빨리 하고 싶은 욕심에 반하지는 않는다 느꼈다. 그런데 여기 와서 만나는 친구들과는 되도록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고, 더 많이 & 빨리 괴로워서 그 괴로운 시간을 단축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래서 어제 그 셋 중 한 명인 Y에게 영어로 이제 대화할 것을 제안했다.
너무 민망하고, 부끄럽고, 괴롭고, 불편하고, 또 스스로가 너무 유난스럽다 느껴져서 말을 꺼내기 힘들었다. 그런데 "아... 그건 좀..."이라고 말할 줄 알았던 내 예상과는 달리 상대는 너무 흔쾌히 그 즉시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고, 오히려 나는 한동안 실어증에 걸렸다. 한국말로 재밌게 말할 수 있었는데, 계속 한국말로 말하던 친구한테 갑자기 서툴게 버벅거리며 말하는 게 매우 민망했다. 그 어렵고 불편한 마음은 그 친구가 내 영어에 대해 판단하는 태도로 들을 것 같아서나, 내가 무언가 문법/표현 관점에서 실수할 것 같아서가 아니었다. 단지 내 생각의 반의 반밖에 전달이 안 되는 상태에서 더듬거리며 나머지 75%를 채워나가는 과정이 퍽 애잔했다.
그 친구랑 이번 주에 또 볼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무조건 영어로 말하겠다고 약속했다. 생각만 해도 사실 도망가고 싶다(내가 먼저 해 달라 했으면서).
나를 이렇게 괴롭혀 가며 노력하는 것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라 믿고 있고, 그래서 어떻게든 아등바등 도전해 보려고 한다. 돌이켜 보면 고통받을 때 가장 성장해 있더라고. 괴롭지만... 씩씩하게 해 봐야지. 그리고 나의 고질병인 단거리 질주 병도 고쳐서, 언어 학습에 있어서도 조금은 더 느슨하더라도 더 오래 가져갈 수 있는 좋은 습관들을 만들어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