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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글 Jun 17. 2022

하데스 타운을 보고 들어가는 길, 트윈픽스에서의 야경

삶에서 예술이 필요한 이유

뮤지컬 공연을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콘서트나 연극도 좋지만, 특히 뮤지컬을 더 좋아한다.


처음 뮤지컬을 본 것은 2010년도. '모차르트'였다. 처음 뮤지컬을 본 날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기억한다.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현장감과 흡입력, 배우들의 어마 무시한 성량, 화려한 무대와 의상, 생전 처음 접하는 방식의 스토리텔링 등. 당시 나는 세포 하나하나까지 감동을 받았음이 분명한데도, 그 감동의 내용을 분해하여 뜯어보지는 않았기에 어떤 부분이 가장 좋았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의 벅참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아직도 기억이 나고, 뮤지컬을 계속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 이후로 나는 거의 2-3년 간을 유행하는 노래 대신 '위키드', '레미제라블', '엘리자벳', '오페라의 유령'을 비롯한 다양한 뮤지컬 넘버들을 즐겨 들었다. 이렇게 말하면 제일 재미있게 본 작품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종종 듣곤 하는데, 정말 많지만 지금은 3개가 생각난다. 홍광호가 연기한 '스위니 토드', 프렌치 오리지널 캐스트 '노트르담 드 파리', 런던에서 봤던 '위키드'. 아직 레미제라블은 실제 공연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 8월에 볼 수 있게 되어 매우 기대 중이다. 아마 단숨에 1위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다.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동안에도 나의 뮤지컬 사랑은 여전해서, 호시탐탐 좋은 극이 없나 살펴보곤 한다. 브로드웨이에서 처음 극을 올린 '하데스 타운'이라는 극이 지금 미국 투어 중이고, 요즘 샌프란에서 공연 중이라 이때를 놓치지 않고 다녀왔다.


극장은 Orpheum Theatre였는데, 꽤나 고풍스럽게 실내를 장식해 두었더라. 미국에서 뮤지컬은 처음 보는데, 여기서도 층마다 조그맣게 bar를 운영해서 간단한 간식이나, 와인과 맥주 등 술을 판다. 극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뮤지컬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 R로부터 재즈풍의 노래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미리 들었어서, 칵테일 한 잔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즈와 페어링 할 술을 고심해서 고르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 시작 전, 잔뜩 기대 중인 나와 다른 관객들. 사람들의 기대에 찬 눈빛이 느껴져서 더 설레었다.


'하데스 타운'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작품으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을 보여준다. 현대적인 재해석을 하면서 정치적인 메타포들이 녹아 있다고 하는데, 극을 보면서 바로바로 캐치하기는 어려웠고 끝나고 찾아보고 '이게 이거였구나'라고 톺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장 좋았던 부분은, 1막 중간 하데스가 에우리디케를 초청하며 부르는 'Hey, Little Songbird'와 2막 초반 페르세포네의 솔로 넘버인 'Our Lady of the Underground'. 어제 공연에서는 하데스와 페르세포네가 둘 다 흑인 배우들이었는데, 유튜브로 예습했을 때는 한국 캐스트로 밖에 못 봤어서 또 아주 새로운 버전이었다. 한국 배우분들도 너무 잘하셔서 입을 벌리고 봤는데, 재즈풍의 음악이 많다 보니 사실 이 버전이 나는 훨씬 좋았다. 하데스의 넘버 같은 경우는 중후한 섹시함이 압권이었는데, 끝없이 내려가는 음역대에 정말 입을 틀어막고 숨도 못 쉬고 봤다. 짧게 주위를 둘러봐도 관객들도 하데스에게 무척이나 매혹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 이런 게 좋다. 극장 사람들도 나처럼 긴장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이 순간. 좋은 공연이 만들어 내는 폭발적인 집중력. 관객이 하나가 되어 공기로, 눈빛으로, 표정으로 배우들과 소통하고 또 다른 관객들과 소통하는 이 순간들. 이게 정말 뮤지컬의 큰 매력이다.


페르세포네 같은 경우에는, 아주 아티스틱한 느낌의 배우였다. 이름은 Kimberly Marable. 몸을 너무나 잘 쓰고, 표현력도 아주 좋은. 넘버 소화력도 말이 안 되는 정도였다. 성량, 목소리 등 모든 게 완벽했다. 노래를 아주 분석적으로 이야기할 줄 모르지만, 너무 좋아서 고개가 절레절레 저어질 정도였다.


원하시는 분은 두 번째 영상을 참고하셔도 좋다.

1. https://youtu.be/VL2Xia4Bbzo : 뮤지컬 'Hadestown' 전국 투어 소개 영상

2. https://youtu.be/KOGJUJWAL_g : Kimberly Marable의 'Our Lady of the Underground' 맛보기. 그런데 이 영상에서는 그 숨도 못 쉬겠는 카리스마, 매혹미, 성량과 소름이 끼치는 표현력이 그만큼 잘 전달이 안되어 아쉬울 따름이다. 그래서 사실 그 실제 공연의 반의 반의 반도 안 되는 느낌밖에 주지 못하는 영상이기에 여기에 링크로 달고 싶지 않았을 정도다. 그래도 미국까지 오시기 어려울 수 있으니 영상 참고.



극이 끝난 후 커튼콜에서 인사하는 배우들. 정말 멋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정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주체하지 못하고 집에 가서 이 순간을 남겨야겠다 하고 돌아가는 중에, 이런 날의 하이라이트로는 야경이 제격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항상 정말 가보고 싶던 야경 맛집으로 아주 유명한 Twin Peaks로 출발했는데... 정말 깜짝 놀랐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극작가가 뮤지컬 공연을 구상하고, 영화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이렇게 완벽한 순간을 포착하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순간의 느낌, 그 찰나의 완벽성을 꼬집어서 붙잡아 두고 혼자 여러 번 꺼내 보거나 더 많은 사람들과 그 순간을 나누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손에 들고 다양한 방법으로 이리저리 표현해 내게 된 바로 그 결과물로서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좋은 예술가는 그 형용되지 않는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해 내고, 전달에 있어서 필요한 부분과 불필요한 부분을 나누어서, 정말 공유하고 싶은 본질적인 아이디어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한 살씩 먹고 여러 번의 아주 좋은 순간들을 경험하면서, 자극 점의 역치가 높아진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조금 더 경험이 없었을 때는 아주 쉽게 감동하고, 감격했는데, 팍팍한 삶에 무뎌진 것인지, 아니면 여러 경험을 통해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서 어떠한 경험이 이전처럼 새롭게 다가오기 어려운 것인지 요즘의 나는 퍽 드라이하다고 느껴진다. 그리고 이런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자면 알 수 없는 씁쓸함이 몰려온다.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언제까지고 새로운 자극만을, 더 강한 자극만을 찾을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마주친 오랜만의 감동이 너무 낯설정도로 그 크기가 커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분에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겸손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에 사랑하는 것이 많다. 나는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을 사랑하고 있고, 세상으로 부터  사랑에 꽤나 보답받고 있다고 느낀다. 사랑하는 것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의 세상이 더욱 다채롭고 두터워 지길 바란다. 그리고 가까운 이들과 서로의 세상을 공유하면서 상호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는 선한 관계들을 많이 쌓아가고 싶다. 그리고  세상을 더욱  공유할  있는,  생각을 적확히 표현해내고 정확하게 이야기할  있는, 그로써 사람들에게 모종의 위안, 위로, 영감, 에너지, 웃음을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다.



Twin Peaks에서 바라본 샌프란시스코 시내 전경
Remember (Sam Ock)와 함께하는 야경. 이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올라온다.



이 야경을 보며 떠오른 시 한 구절을 마지막으로 오늘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사랑합시다, 여러분.





농담

                                            이문재



문득 아름다운 것과 마주쳤을 때

지금 곁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면 그대는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그윽한 풍경이나

제대로 맛을 낸 음식 앞에서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은 정말 강하거나

아니면 진짜 외로운 사람이다.


종소리를 더 멀리 내보내기 위하여

종은 더 아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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