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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글 Jun 17. 202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홈구장 오라클 파크에 다녀오다

다양한 경험이 주는 의의에 대하여

본인은 야구를 잘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 다니던 시절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 줄곧 축구 파였다. 한국에서도 야구장에 거의 가본 적 없다. 딱 한 번 가봤다. 그것도 경기보다는 치킨과 맥주를 먹으러.


여전히 야구에는 큰 관심이 없고, 잘 모른다. 그런데 구장이 아주 예쁘기로 유명해서 한번 꼭 가보고 싶던 오라클 파크에서 금요일 저녁 야구 경기가 열린다기에 재빨리 티켓을 구해서 다녀왔다. 경기는 LA 다저스와의 경기였다. 서부 리그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LA 다저스의 경기가 가장 재미있는 빅매치라고들 하더라. 마침 회사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야구장이 있어서, 금요일 저녁을 이렇게 보내 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날씨가 꽤나 변덕스러워서, 6월의 초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많이 불고 꽤나 쌀쌀하다. 따뜻한 날도 많지만, 날씨를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고 밤늦게까지 경기가 이어지기 때문에 춥지는 않을까 하며 노심초사하고 따뜻한 옷을 입고 갔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날은 하늘이 아주 맑고, 바람도 많이 불지 않아서 밤에는 딱 기분 좋게 선선한 정도였다.


야구장에 도착하니, 많은 인파들로 북적북적했다. 아주 많은 LA 다저스 팬들이 샌프란까지 와 있어서, 샌프란시스코의 홈구장임에도 거의 50:50 비율로 관중이 차 있어서 매우 신기했던 것 같다. (참고로 LA-SF는 비행기로 한 시간 반 거리다)



야구장 외관은 이렇게 생겼다. 가방을 수색하고 경기장 안에 들어갈 수 있다.


경기장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서, 홈런을 치게 되면 공이 경기장 밖 바다로 날아간다고 한다. 카약을 타면서 날아오는 공을 잡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 보였다. 재밌겠다.


짐 수색을 통과하고 야구장 안으로 들어왔다.


MD샵인데 뭔가 사진의 분위기가 귀여웠다.


정말 미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났던 야구장 경험.


경기는 무려 7대 2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승리! 이 날 NBA 경기도 있었는데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가 보스턴 셀틱스를 이겨서 샌프란 시내가 떠나갈 듯 기분 좋게 시끄러운 밤이었다.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나로서는 홈런을 해 냈을 때나 상대팀이 실수를 했을 때, 또는 응원하는 팀에서 실수를 했을 때 각자 자아내는 반응들을 보는 것도 재밌었다. 아직 영어가 충분히 익숙지 않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한국 스포츠 경기장에서 말함직한 것보단 조금 더 다양한 대사들이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면, "Are you kidding? Just get out of here!".


세 시간 정도 지속된 경기는 그렇게 끝이 났고, 경기 중간에 한 잔 사 와서 마신 생맥주의 알딸딸함과 팬들이 주는 폭발적인 에너지에 취해서 연신 웃음이 났다. 일주일간 새로 생긴 주름과 여러 복잡성들을 그렇게 날려버리고 다시 긍정적인 것들로 채울 수 있도록 마음을 리셋할 수 있었다. 비워야 채울 수 있는 법.


시간이 늦어지면서 하늘 색이 바뀌는 걸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묘미다.



물욕도, 수면욕도 없는 요즘이지만 경험에 대해서는 과하리만치 욕심이 많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 해 보고 싶고, 나에게 주어진 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누어서 누리고 싶다. 더 많은 걸 하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은 생각을 하면서 하고 싶다. 따로 정한 건 아니지만, 나의 요즘 마인드 셋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Do more, Be more'인 것 같다.


대학교 3학년 때였나, 대학교에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신청해 프랑스에 있는 한 학교에 합격했었다. 그런데 가지로 않기로 선택했다. 왜 안 갔을까를 되짚어보면, 뭐 당시에는 참 여러 이유가 있었다. 가고 싶다면 나를 설득해야만 했다.

(1) 여행을 아주 좋아해서 방학마다 여행을 다니던 나인데, 여행으로 채워지지 않는, 즉 교환학생 생활만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야 했다. 지금 와서 말해보라 하면 논문을 써올  있을  같은데, 당시 나는 입증할  없었다.

(2) 교환학생을 다녀오는 것이 나에게 어떠한 눈에 보이는 효익이 있어야 했다. 예를 들면, 지원하고 싶은 대학원의 교수님에게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거나, 아주 가고 싶은 회사의 인턴십에 합격을 해서 그 인턴십을 목적으로 한 교환학생을 다녀오거나.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사실 프랑스 대학원에 갈 생각은 아예 없었고, 인턴십도 딱히 구하지 못했다.

(3) 빨리 일을 하고, 실무 경험을 쌓는 것보다 교환학생 기간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커리어적 장점을 나열해야 했다. 그리고 이 또한 당시 나는 실패했다.


입사하고 나서 3년 정도가 지났지만, 이 선택을 아주 크게 후회한 적은 없다. 모든 것은 타이밍이 중요하고 그때의 가지 않기로 한 나의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비록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경험을 하나 놓쳤지만, 다른 방식으로 나는 열심히 일하고 즐겁게 놀았다. 그런데 막상 미국에 체류해 보니 그때의 선택이 아쉽다는 생각이 꽤 자주 든다.


개구리가 우물 밖에 스스로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요즘에도 외부 자극에만 기대지 않고 내적인 동기로 성장하는 것은 나의 관심사 중 하나지만, '정말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에는 회의적이다. 우물 안에서 이전보다 더 높은 점프를 하며 기록을 경신해 갈 수는 있겠지만, 아예 다른 차원의 사고, 'outside of the box thinking'이 외부 자극 없이 가능할까? 그런 기발함, 창의성, 탁월함이 내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맞을까? 과거의 나를 되짚어보면 나를 가장 크게 성장시킨 것은 다양한 경험이었다. 크고 작은 성공 경험, 영감을 주는 책과 사람들, 시도해 보지 않았던 영역들에 대한 도전. 물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내가 더 다채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꼭 미국까지, 프랑스까지 갈 필요는 없다. 결코 필요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느끼는 나를 아예 낯설고 다양한 경험에 내던지는 것이 주는 엄청난 해방감과 새로운 환경에서 받게 되는 크고 작은 자극/영감 등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교환학생을 가지 않기로 한 나의 선택이 조금 많이 아쉽기는 하다. 그때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더욱 말랑말랑한 사고방식이 가능했을 거고, 그 세상을 좀 더 여과 없이 흡수할 수 있었을 텐데. 또 그리고 학생이었기 때문에 조금 경제적 여유는 없었을지 모르나 시간과 에너지의 측면에서 훨씬 더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미국에 온 뒤로 그 선택을 속으로 내심 후회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미국에서 요즘 더 많은 경험을 하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룰도 잘 모르는 야구를 보러 갔고, 그 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분명히 알고 있다. 새로운 경험을 단순히 많이 한다고 해서 내가 더욱 풍부한 사람이 된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경험 자체에 기대서는 안 된다. 내가 한 경험 그 자체가 나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어 주기를 바라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깊이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경험 그 자체(예를 들면 타지 생활)는 사실 아주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단지 내가 조금 더 사고의 폭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도움을 주는 디딤돌 같은 존재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래서 프랑스에 가지 않기로 한 나의 결정을 또 어떤 의미에서는 후회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여러 경험을 하면서, 스스로 이랬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단순히 '경험을 했다'라는 차원에서 끝내지 않고 무언가 내 것으로 paraphrase 하여 이 경험을 나의 색에 입히고 싶다. 글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도 그와 같다. 둘째, 완급 조절을 잘해서 많은 경험을 하는 것에 매몰되지 않고, 조금 조급한 마음 대신 여유를 가지고 양 옆과 앞 뒤를 돌아보며 순간을 더 깊게 즐기고, 나의 일상을 더욱 현명하게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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