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s from getting laid off
지난 6월의 둘째 주 화요일 아침, 오랫동안 편찮으셨던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급하게 매니저에게 알리고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5일짜리 경조휴가와 이틀정도의 연차를 붙이니, 열흘 정도는 서울에 다녀올 수 있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갑자기 한국에 잠깐 가게 되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도 지켜보고, 오랜만에 부모님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열흘을 무사히 보내고 6월이 끝나기 직전 월요일, 집으로 돌아와 일터로 복귀했다.
그리고는 바로 그다음 날. 나는 직장에서 레이오프(Layoff) 통보를 받았다.
하! 참 어이가 없기도 하지. 최근 몇 년 사이 주변에서 레이오프 소식을 가끔 들었었기에 이미 머리로는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나 자신에게 일어나니 황당함과 억울함이 한순간에 몰려왔다.
그렇게 3주 정도 갑작스럽게 마주한 상황을 정리하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처음의 분노, 걱정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그 간의 생각을 글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해고 자체는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중요한 삶의 레슨을 많이 배운 귀한 경험이라 꼭 나누고 싶었다. 아래는 내가 해고를 겪으며 배운 몇 가지:
1. 의미 부여하지 않기
무엇보다 내가 화가 났던 점은, 가족의 장례식에 다녀온 사람을 바로 다음 날 해고했다는 것이었다. 미국 조직이 사람 사이의 정 같은 것 과는 거리가 멀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어쩜 그렇게 비인간적일 수 있을까?? 매정한 것들.
하지만 사실 회사는 그저 2분기 말에 비용 분석을 진행했으며, 그 결과 인건비 절감을 위해 직원 X 명을 내보내기로 결정한 것일 뿐이었다. 내가 개인적으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애초에 아무런 관련이 없다. 누군가 나를 의도적으로 더 어렵게 하려고 그렇게 타이밍을 잡은 것도 아니다.
사건들 사이에서 의미를 계속 찾으려 하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더 상처를 받게 된다. 그렇게 상처를 스스로 만들면 더더욱 나만 손해다. 무엇보다 분노에 휩싸여 과거의 일에만 머물면, 더 멋지게 펼쳐질 미래를 떠올릴 수 없다.
쓸데없는 의미부여를 멈추며, 나도 비로소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2. 불안이 원래 기본 값임을 받아들이기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어제는 이 전략을 추진하겠다고 하다가, 오늘은 방향을 틀어 전략을 통째로 버리기도 하고, 우리 팀은 사람을 늘리려 하는데 옆 팀은 사람을 내보내기도 한다. 레이오프가 되었던 회사에 다시 들어가 일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애초에 안전함, 안정적이라는 개념은 우리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에서 무언가를 '안전한 선택'이라고 표현한다면, 안정성을 얻는 대가로 반드시 희생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무원처럼 "철밥통"으로 불리는 직장을 생각해 본다. 고용은 보장되지만 수입이 낮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수준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나도 안 짤리지만 저 놈도 안 짤림ㅋ). 나는 이 부분을 생각할 때 채권과 주식을 떠올린다. 채권은 살 때부터 정확히 '수익률 몇 퍼센트'를 확정해서 주지만, 그 수익이 터무니없이 낮다. 반대로 주식은 수익률 보장은 전혀 없지만, 그 리스크가 있기에 크게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할 때, 혹시 스스로 '안일하게 채권 같은 선택만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인생에서의 불안함은 당연한 것임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더 큰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3.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기
사람과 사람 사이는 절대 앞을 알 수 없어 오묘하고, 그래서 재미있다. 특히 좋은 일 보다 좋지 않은 일이 있을 때,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고, 관계가 변한다. 언제나 나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동료보다, 평소에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나의 해고 소식을 듣고 더 많은 격려와 도움을 주었다.
사람과의 관계는 오늘 좋았다가 내일 틀어지기도 한다. 내가 모르거나 의도하지 않은 이유로 끊기기도 하고, 또는 안 맞는 것 같다가 통하기도 한다.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거나 편을 가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지금 내 앞의 인연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즐거움을 주는 사람과의 시간에 집중하고,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감사하기로 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