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트 May 18. 2018

MBTI에 대한 고찰 1

 고등학생 때, 대학생 때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난 후 나는 항상 찜찜한 의문에 차있었다. 각각의 친구들을 대하는 내 모습이 전부 달라서 어떤 모습이 진짜 나의 모습인지 혼동되었다. 이 친구를 대할 때 나는 어제의 모습으로 다가가고 싶은데 내가 원하는 기억 속의 모습이 나오지 않았고, 피곤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때보다 능동적인 모습으로 상대를 대하기도 했다.  왜 내가 마음에 드는 내 모습대로 일관되게 행동할 수 없을까? 이 모습도, 저 모습도, 수많은 내 모습들 중에 어떤 게 진짜 내 모습일까? 나는 고정되지 않은 불안정한 사람인 걸까? 고민하고 답을 찾고 싶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고민을 거듭할수록 내가 어떤 활동을 좋아하고,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어떤 향을 싫어하는지 등 사물에 관한 기호 혹은 호 불호의 경향성만 조금 알게 되었다.

 어느 날, 친한 친구로부터 우연히 MBTI를 권유받았다. 사실 심리테스트나 별자리 운세, 혈액형 유형 등과 같은 테스트를 전혀 믿지 않았기에 MBTI 역시 내키지는 않았지만, 공강 시간을 보내기 위해 차분히 설문지를 풀어나갔다. ENFP 유형이 나왔다. 별 감흥이 없었고, 유형에 대한 주요 특징들을 읽어보았다.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벼락을 맞은 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누가 내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하나하나 적어놓은 것처럼 하나하나의 설명이 나와 너무 맞아떨어졌다. 심지어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속마음까지 전부.
 내가 좋아하는 취미들이 전부 나열되어 있었다. 나 스스로도 이해를 못했던, 나의 경제적 관념이 노골적으로 적혀있었다. 타인의 기분을 숨 쉬듯이 쉽게 이해하고 사물에 관한 문제보다 사람에 관한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무리에 속하는 것을 싫어하는 것 등. 마치 내 세포단위까지 나를 해부하며 관찰한 것 같은 특징들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보이나 싶어 다른 유형을 읽어보니 하나도 공감이 안되었다. 
 내가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나의 고민이 순식간에 해소가 되었다. 나는 타인의 기분을 내 기분처럼 쉽게 파악하고 받아들이기에, 그때그때마다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변한 것이다. 내가 왜 학생회를 들어가지 않고, 편한 사람들 위주로 별도의 커뮤니티를 형성했었는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새로운 아이디어들, 신경과민으로 아팠던 경험 등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16개의 유형 중에 한 유형대로 살고 있는 사람

 이 사실을 발견하고서는 안심이 되었다. 나만 특이한 게 아니니깐, 고민할 필요가 없는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니깐. 한 노래의 제목이 떠올랐다. 
born this way, 태어난 대로 나는 잘 살고 있었구나.
 하지만 한편으론 아쉬웠다. 나는 그냥 16개의 유형 중 한 유형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뿐이구나. 내가 힘들게 발견한 나만의 즐거운 취미가, 성향상 그렇게 설정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람의 모든 성향을 MBTI가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종교관, 신념, 도덕적 가치 등 생각과 행동의 선을 제한하고 허용하는 변수는 다양하다. 하지만 MBTI는 그런 선들을 모두 포괄하는 좋은 바탕이며, 자신을 이해하기 위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하는 습관적인 행동의 원인 심리를 발견했을 때, 놀라는 경험은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이상의 쾌감과 동시에 발가벗겨진 듯한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