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기억을 유난히 잘 기억하고 있는 나는, 부모님 밑에서 성장하면서 가끔은 부모님을 이해 못 하던 때가 많았다. 부모님과의 갈등이 내 상식선으로 받아들이기 힘들거나, 억울한 일이 있을 때 분하지만 그냥 참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성장을 하고 대학생이 되고, 또 취업을 하게 되면서 가끔 부모님의 부모님 같지 않았던 모습들이 이해가 되곤 한다.
직장을 다닌 지 몇 개월이 지날 때까지, 나는 사회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신고식을 치르고 있었다. 직장 내에서 긴장하고 있던 몸과 정신이 퇴근을 하면 방전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그냥 집에 가서 아침에 정리도 못한 이불에 누워서 폰을 한참 보다가 씻고 자고 출근의 반복이었다. 만사가 귀찮았고, 집에서는 아무 일도 하기가 싫었다. 심지어 저녁도 준비하고 치우는 게 싫어서 먹지를 않았다.
그날도 근무를 끝내고 6시쯤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전화를 걸었다.
"아직 퇴근을 안 했으면,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부모님과 같은 지역에 살지만, 독립적인 공간을 좋아하는 나는 따로 살고 있다.)
"아, 귀찮아 저녁 안 먹어. 그냥 바로 집 갈래"
"저녁도 안 먹고, 그냥 간다고? 집 가서 해먹기도 힘들 텐데 맛있는 거 뭐 먹고 가지?"
"아, 안 먹는다고. 집 가서도 안 먹고 그냥 바로 누울래, 끊을게요"
하고 전화를 끊고 보니, 내가 왜 이렇게 엄마한테 까칠하게 대했는가 싶다. 엄마는 그저 맛있는 저녁을 사주고 싶었던 건데, 직장에서는 사뭇 친절하게 '네 안녕하세요. xxx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웃으며 통화하면서, 엄마한테는 왜 그렇게 짜증을 내었을까?
조금 후회를 하며 집에 가는 길에, 예전 어렸을 적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가 퇴근하고 오셔서 잠깐 쉬는 사이, 나는 부모님께 칭찬을 받으려고 설거지를 했는데 물 정리를 제대로 안 해서 거실에 물이 조금 튀었었다. 평소라면 그냥 웃으면서 '물 좀 안 튀게 설거지하지~'라고 하실 아빠가, 그날은 유독 무섭게 쏘아붙이셨다. 몇 분간 혼쭐이 난 뒤, 이게 그렇게 심하게 혼날 일인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아빠도 그날 많이 힘든 일이 있었구나. 직장에서 이런저런 일로 치이고 방전이 되어 집에 들어오니 아무것도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겠구나.
이런 생각의 끝이, 뻔한 교과서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는 더욱 조심하고 잘 대해야 한다. '라고 귀결되지는 않았다. 그저 사회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가끔 내 이성을 벗어나게끔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랬던 부모님의 모습과 또 내 모습을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내 내면의 스트레스를 엄한 타인에게 표출시키지는 않게끔 나를 더 단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힘겹게 집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