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난 2019년 10월 20일에 결혼했다.
그날은 무척 화창하고 따뜻한 날이었고, 내가 결혼을 했던 삼원가든도 아름다웠던 기억이 난다. 결혼 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어찌되었든 나는 놀랍게도 이혼이란걸 하지 않고 남편과 여전히 살고 있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추구하고 있다.
시어머니와 나는 인연을 정리한 기분이며, 그걸 마무리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시어머니였다. 어느날 내가 걸었던 전화 한통 이후 그분은 나와 더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으셨는지 번호를 차단했고, 그런김에 나도 연락하지 않는다. 현 상황은 매우 안타까우나 시어머니께서 어른이라고 관용적인 태도를 보여주실 것 같지도, 내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무릎꿇고 싹싹 빌 것 같지도 않다. 그러니까 남한과 북한과 같은 냉전상황인데, 남편만 이산가족같은 심정으로 양측의 화해를 바라고 있다. 동서쪽은 나와 시어머니의 냉전상태를 은근 즐기는 러시아나 중국, 미국같은 쪽인듯 하다. 뭐, 러시아나 미국같은 강대국도 아닌 주제에 그러라고 해라.
결혼이란건 생각보다 나에게 수많은 철학적인 질문을 던졌고, 해답을 찾고자 지난 2년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해야 하는 수 많은 상황을 맞닥뜨렸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다 싸웠고, 다쳤다. 그러는 와중에 내 주변 모두에게 날선 공격을 퍼부어 내가 받았던 상처가 전염병처럼 퍼지기도 했다.
오늘은 그동안 적고 싶었던 주제에 대해 용기내어 말해볼까 한다. 누군가 '아니다'라며 공격을 할까, 혹은 누군가 상처받을까 조심스러웠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이 글 아래에 어떠한 공격이나 반박도 겸허히 수용하겠다. 덧붙일 내용은 단지 내가 2년간의 지리한 감정소모 끝에 깨달은 두 가지를 적어놓고 그것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을 뿐이니 내 말이 옳다는건 전혀 아니다.
내가 결혼이란걸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했다. 그 조언들은 서로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똑같은 말들이었는다. 안타깝지만 나는 그 조언을 듣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확히 반대방향에 서 있었으며, 아래 글은 그리하여 내가 다다른 결론들이다.
"NO"라고 하는 상황을 마주하기 힘들어 저런 말이 나왔는지, 어르신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No"라고 말하기 힘든 당신이 되었든, 거절 당하는 어르신이 되었든 양쪽 모두 어른이다. 누구도 미성숙한 아이가 아니다. 따라서 현 상황을 마주보고 직시해야 한다. 직시해야 하는 것은 큰 싸움일수도, 마음의 상처일수도, 어색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
행여 당신의 시댁식구(혹은 친정식구) 중 누군가 "No"라는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 화를내고 떼를 쓰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 사람의 몫이다. 어찌되었든 누구나 아픔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성숙해질 계기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네"라고 대답하고 무시하는 것은 당신이 가진 믿음과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동이다. 시댁 사람들이 금붕어가 아닌 이상 "하겠다"라고 한 말을 잊어버릴리도없고, 무시당하는 것을 모를리도 없다. 당신이 거짓말쟁이가 될 필요, 전혀 없다.
못할 것 같으면 "안하겠습니다."라고 해도 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소속된 존재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들이다. 결혼이란 인간관계로 생겨난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완전한 나만의 것이며, 나는 그 사람들과 독립된 개체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남편이 맺어놓은 권력구조 속 하나의 부속품으로 따라 들어갈 필요 없다. 결혼으로 생겨난 새로운 인간관계인 남편의 부모와 대등하게 관계 맺어야 하며, 남편이 어떠한 존재든 당신은 그들과 동등해질 권리가 있다.
부당하고 억울한 대우에 꾹 참을 필요도, 집으로 돌아와 남편을 잡을 필요도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거나 잘못된 점을 시정해달라고 요구할 필요도 없다. 남편은 해결사가 될 수 없으며 억울한 피해자일 뿐이다. 당신은 당신을 화나게 했던 당사자에게 무엇이 화가 났고, 어떤 점을 시정해 달라고 직접 말해야 한다. 그럴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야말로 당신을 남편의 부속품쯤으로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네'라고 대답하고 안하면 된다.
시댁에서 있었던 것을 바로 풀지 말고 남편한테 말하면 된다.
이러한 것이 현명한 아내의 척도라고 했다.그러지 않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거나 행동이 과격하여 무식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왜 거짓말쟁이가 되어야 하고, 왜 남편의 부모님과 대등한 관계를 맺지 않는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
못하겠다면 안한다고 해도 되며,
시댁 식구가 잘못했다면 그 사람에게 바로 말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