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는 남자, 떠나가지 못하는 여자 上
드디어 내 대망(大亡)의 연애담 3부작을 펼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지만 사정상 옛날 얘기는 가장 나중에 하기로 한다. 그 이유라면, 내 인생은 과거로 갈수록 태산이라 첫 번째 얘기를 꺼내기까지 품이 아주 많이 들 예정이기 때문이다. 아아. 생각만으로도 대량의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그러니 일단 마지막 챕터의 주인공이었던 놈부터 패면서 시작하겠다.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는 나의 세 번째 구남친에 관한 것이다. 나보다 2살 연상이었던 그의 직업은 바텐더였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이태원의 한 라운지 바였다. 자세한 내막을 이어가기에 앞서 내 평생의 취미 중 하나가 음주임을 미리 밝혀두는 바다. 나는 상당한 애주가로서 이미 그 당시 서울에 위치한 대부분의 바는 섭렵해둔 상태였다. 여기서 바(Bar)라고 함은, 대개 각국의 위스키와 장인의 칵테일을 취급하는 클래식 바를 뜻한다. 하찮은 체구와 달리 나는 국대급 주량을 겸비한 탓에 목구멍에 맥주 3리터 정도는 부어줘야 성에 차고 어지간한 독주 앞에서도 웬만해선 끄덕 없다. (심지어 하루는 아침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었는데 마실 거라곤 이슬X톡밖에 없길래 그냥 마신 적도 있다... 아니 많다.) 유치하게 갑자기 웬 술 자랑이람, 싶겠으나 주량 배틀을 하자는 게 아니다. 말 나온 김에 짚고 넘어가야할 게 생겨서다.
이쯤에서 <술 마시는 여자>에 관한 짧은 고찰을 해보고자 한다.
이 나라는 좀처럼 젊은 여자가 혼자 술 마시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덕분에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 혼자 술을 마시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몸소 겪어보았다. 무슨 일 있냐며 말 거는 남자부터, 왜 혼자 왔냐며 질문 하는 남자, 같이 한 잔 하자며 옆에 앉는 남자, 제가 한 잔 사겠다며 나가자는 남자까지. 아니 저기요. 나 그냥 술 마시러 온 거라고. 조용히 혼자 시간 보내고 싶어서 기꺼이 내 돈 쓰러 여기까지 온 거라고. 누가 술을 사달래, 말을 걸어달래, 옆에 앉아달래. 시키지도 않은 짓들을 하고 난리다. 혹시라도 내가 처량하고 애잔해 보여서 그랬다고 하기엔, 내 앞엔 너무나도 비싼 위스키 바틀이 놓여있었는데도 말이다. (다행히 일부 클래식 바의 경우 이런 상황에 대비해 합석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에 편히 마실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기도 합니다.)
착각은 자유지만 참견은 실례다. 내가 혼자 쏘주를 먹든, 곡주를 먹든, 독주를 먹든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심지어 내가 <ㄱr끔씩 눈물을 흘린ㄷr>거나 소리내어 훌쩍이고 있던 것도 아닌데. (설령 그랬다 한들 네 알 바는 아니시다.) 뭇 남성들이 제법 괜찮은 바에서 혼자 술 마시는 여자를 두고 외롭다거나 어떤 사연이 있을 거라 착각하곤 한다. 근데 사연은 무슨 사연. 사연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돈이 있어서 온 거다. 혼술이란 내게 최고의 휴식이자 위안이니까. 본래 섞어먹고 말아먹는 타입도 아니거니와 부어라 마셔라 달릴 나이도 지났다. 이제는 한 잔의 여유 속에서 천천히 인생을 곱씹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와 같은 취미를 가진 여자가 어디 나 뿐이겠는가.
암튼 시대가 어느 땐데 아직도 혼자 술 먹는 여잘 희귀템 취급하는 세상이다. 희귀템이면 차라리 희귀템답게 귀한 줄 알고 감히 쳐다볼 생각도 말든가. 그러니 처음 보는 여자의 안녕을 물으시려거든 집에 계신 부모님 안부부터 여쭙기를 권한다.
내 평생의 취미가 음주라면 그의 일생의 유흥은 가무였다. 그와 내가 처음 만난 라운지 바는 당시 이태원에서 가장 잘 나가는 핫플레이스 중 하나였다. 언뜻 보면 주점인지 클럽인지 헷갈릴 정도로 조명은 현란하고 음악은 요란하고. 술값이 다른 데보다 저렴해서인지, 스피커가 다른 데보다 빵빵해서인지, 하고 많은 이태원의 술집 중에서도 유독 그곳에는 사람이 바글거렸다.
이런 종류의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는 제법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한 여름 밤의 썸이 됐든, 내일이면 사라질 꿈이 됐든, 여하간 낯선 상대와 티키타카 불꽃 튀기고 노는 뭐 그런 거 있잖나. 젊은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상대의 간을 봤다. 제각각 생긴 놈들이 조금이라도 더 튀어보겠답시고 한껏 멋을 부리고와서는 우습게도 죄다 하나같은 수법으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저희도 둘이서 왔는데 괜찮으시면 같이 한 잔 하실래요. 여기저기서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장면이 연출되기 시작하고, 그걸 듣던 나는 멘트가 어째 10년 전이랑 똑같냐며 한숨을 쉬고,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짓거리를 또 하러 왔냐 싶던 바로 그때. 내 레이더에 남자 하나가 걸려들었다.
흰 티에 청바지를 입은 그는 멀리서 봐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훈남이었다. 그런 최소한의 복장으로도 나의 지독한 심미안을 통과했으니 더 이상 긴 말 않겠다. 불나방이 불을 봤는데 가만 있었을 리가. 그에게 한 눈에 반한 나는 그 즉시 눈에 쌍심지를 켰다. (절친의 표현에 따르면, 내가 양 눈깔에서 레이저빔을 쏟아냈단다.) 하필이면 그 날이 또 나의 생일이었거늘. 기분도 끝내주겠다, 술도 한 잔 걸쳤겠다, 무서울 게 없었던 나는 노빠꾸 직진녀가 되어 그를 향해 돌진했다. (네.. 제가 이렇게 노답입니다. 1편에서 말씀드렸죠...? 읽다보면 욕 나오실 거라고. 그거 사실 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내 휴대폰 속에 11개의 숫자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참고로 그를 바텐더 대 손님으로 만난 것은 아니었다. 알고 봤더니 신기하게도 바텐더였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또 한 번 그 놈의 몹쓸 운명론을 펼치기 시작한다. 만 잔도 한 잔처럼 마시는 나에게 드디어 제 짝이 나타났도다. 그토록 술이 술이 마술이 염불을 외워대던 끝에 마침내 바텐더를 만나다니. 내 평생 주(酒)님을 뫼신 보람이 있구나. 이건 신의 뜻이고 하늘의 계시다. 이 얼마나 눈물나게 아름다운 운명인가. 어쩌구 저쩌구.
처음에는 그도 내 콩깍지에 열심히 본드칠을 해주었다. 정말로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와는 달리 일찍이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겪는 쪽을 택한 부류였다.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을 거쳐서인지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어른스럽기도 했다. 그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때까지는 지 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만 만났던 나로선 그의 끝도 없는 이타주의에 입을 벌려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어디 그 뿐만인가. 그는 내 모든 것에 관대했다. 나의 외모와, 취향과, 생활 습관에 무척이나 너그러웠다. 그래서 나로 하여금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주었다.
아마도 많은 부분이 착각이었을 것이다. 그가 매일같이 최고의 칵테일을 선사해준 탓에 나는 하루도 정신이 멀쩡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달고 사는 숙취가 행복이라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이변이 없는 한 나는 계속 이렇게 취해있고 싶었다. 잇따른 연애 실패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던 나에게, 그가 주는 다정함이란 너무도 소중하고 절박한 것이었기에. 그러나 나의 작은 꿈은 얼마 못 가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내가 그의 집 냉장고에 붙어있던 전 여친의 편지를 보게 되면서.
전 연인의 흔적을 남겨 놓는다는 것. 이게 참으로 사람을 심란하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아주 몹쓸 짓이라 생각하는데, 대개 피의자는 별 생각이 없을 때가 많더라. 나의 경우 앞선 두 번의 연애에서 모두 그들의 전 여친을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확인한 경험이 있는데, 그때마다 구남친들은 입이라도 맞춘듯 똑같은 말을 했다. 치우는 걸 까먹었다나 어쨌다나. 속 편한 소리들 해쌓고 앉았다. 정작 상대는 이미 심장이 발치로 내려앉고 속이 덩이째로 깎여 나간 후인데.
(혹시라도 이 글을 보시는 남성 분들 중 이런 습관이 있으신 분이 계시다면 이거 하나는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쪽지가 됐든, 사진이 됐든, 뭐라도 발견하는 입장에선 이게 정말로 상처거든요. 내가 지네 집에 온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이걸 안 치웠다는 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직 그 여자를 못 잊었다고 시위라도 하는 건가? 아님 나를 그 정도로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알려 주는 건가? 정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면서 눈물샘에 자동재생 모드가 켜집니다. 그러니 부디 예의로라도 치워주세요. 전관예우 하는 게 아니라면.)
문제는, 이 세 번째 놈팽이의 경우 <까먹어서 못 치운 경우>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자식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제 집 냉장고 한 가운데에 떡하니 전 여친의 편지가 붙어있다는 걸. 심지어 나중에 가서는 그 편지에 얽힌 애틋한 이야기까지 들려주기에 이른다. 그 편지야말로 자신의 인생을 받쳐주는 소중한 부적 같은 존재라며 웅앵웅앵. 진짜 무슨 옥장판을 팔아도 이렇게는 안 팔겠다. (이땐 얘가 뭐 잘못 먹고 미친 줄 알았는데... 미친 게 맞았다.)
궁금하지도 않은 그 편지의 속사정을 듣기도 전에 나는 이미 크게 좌절한 상태였다. 아무 에이포 용지에 아무 펜으로 써갈긴 그 한 장짜리 편지 앞에서, 나는 모래성 내려앉듯 퍼석히 무너졌다. 편지의 내용을 보는 순간 내가 영원히 그녀를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물론 연애라는 것이 연인의 과거를 상대로 벌이는 싸움은 아니라지만, 아무튼 그녀는 내가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고 드높은 벽이었다.
편지는 그로부터 대략 1년 전에 쓰인 것으로,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는 게 주된 골자였다. 그런 흔하디 흔한 내용 앞에서 내가 기함을 토한 이유는 그 표현 방식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만큼 견고한 사랑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라는 듯, 이 지구상에 너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나뿐이라는 듯, 내 존재의 근원적인 이유마저 너의 탄생과 맞닿아 있다는 듯. 그 숨막히게 촘촘하고 빈틈없는 세레나데는 내게 웃으면서 파워 싸닥션을 날리는 중이었다. 어디 감히 너 따위가 우리 사이에 끼어드냐며.
그가 이토록 저의가 명백한 편지를 떼버리지 않은 데에는 나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어느날, 편지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던 나는 그에게 '나 만나는 동안에는 이거 잠깐 치워주면 (심지어 버리라고 하지도 않았다.) 안 되겠냐'며 지극히 지당한 요구를 했다. 근데 이놈새끼가 이에 대한 대답이랍시고 나를 급기야 제 판도라의 상자 앞으로 강제소환 한 것이다. 이게 무슨 황당한 전개인가 싶던 중, 그는 한 술 더 떠 상자 뚜껑을 날려버리기에 이른다. 십(十)새끼.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서 말이다.
덕분에 나는 그 안에서 튀어나온 엄청난 위력의 주먹에 정통으로 어퍼컷을 맞게 된다. 그 주먹의 주인은 다름 아닌 <그녀>였다. 무려 9년의 세월에 육박하는 기간 동안 그와 함께 한 그녀. 나를 좌절 시킨 바로 그 편지 속의 그녀. 심지어 그 둘은 확실하게 헤어진 상태도 아니었고, 정신차려보니 나는 남이 차려놓은 구첩반상에 버젓이 손을 댄 썅년이 되어있더라는 얘기다.
진심으로 억울했다. 아직도 뒤질라게 억울하다. 내가 그걸 알았으면 애초에 시작도 안 했겠지. 누구한테 남자를 뺏겨본 적은 많았어도, 의도치도 않게 남의 거 뺏은 여자가 된 건 처음이었다. 기분은 내가 뺏겼을 때보다 두 배 이상으로 드러웠다. (아, 여러분이 오해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나는 그녀를 욕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녀도 결국엔 당한 거니까. 내 샌드백은 언제까지고 상황이 이 지경이 되도록 만든 그 새끼다.)
그 시점을 기준으로 나는 '헤어지지 못하는 남자'와 '떠나가지 못하는 여자' 사이에 낀 최대의 피해자로 전락한다. 왜 햄버거 사이에 낀 피클 꼭 버리는 사람들 있지 않나. 그 피클처럼 말이다.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나는 남의 집 개싸움에 낀 행인이 되었고, 막장드라마의 영원한 조연이 되었다.
혹시 나를 미치고 환장하게 할 목적이었다면 축하한다. 덕분에 미친년력 만렙 찍었다. 그래서 지금 그 미친년이 마이크 잡은 거 아니겠냐. 그니까 딱 기다려라. 벌스는 다음편부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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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또각입니다. 갑자기 인사를 드리게 되었네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기막힌 연애담>의 연재일은 주1회, 매주 수요일로 생각 중입니다. 물론 중간에 틈이 나면 한 편씩 더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