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지지 못하는 남자, 떠나가지 못하는 여자 下
돌이켜보면 처음부터 빈틈이 많은 관계였다. 다만 사랑에 굶주렸던 내가 그 사실을 애써 외면했을 뿐. 이 남자는 처음부터 나를 여자친구라 부르길 거부했다. 것도 수가 뻔한 쌉소리들을 시전하면서. 이 땅의 수많은 동지들이여. 가령 다음과 같은 대사를 치는 잡놈이 있다면 시원하게 거르셔야 한다.
“꼭 여자친구 남자친구란 말을 써야 하나? 그냥 연인처럼 부부처럼 친구처럼 그런 자연스런 관계가 난 좋아. 우리 이미 만나는 사이잖아.”
자. 이런 전방위적 개논리를 펼치는 남자가 있다면 하루 빨리 손절하시라. 눈에 선한 변명이고 앞이 뻔한 헛소리니까. 굳이 해석해드리자면, 너랑 자고는 싶은데 책임지긴 또 싫고 연애를 하자니 부담스럽다만 아예 안 보기엔 좀 섭섭하니까 우리 할 거 다 하면서 무기한 썸이나 찐하게 타보자. 라는 놀랍도록 병신같은 말이다.
그럼 저딴 정형화된 멘트는 어떤 상황에서 튀어나오느냐. 대개는 여자친구라는 호칭을 붙일 수가 '없는' 상황이거나 굳이 붙이고 싶지 '않은' 경우다. 명쾌하게 정리해드리겠다. 첫째, 여자친구란 호칭을 붙일 수가 없는 경우. 이미 여자친구 타이틀을 채간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둘째, 여자친구라는 호칭을 붙이고 싶지 않은 경우. 너랑 쟤랑 저울질 중인데 아직 못 골랐단 뜻이다. 혹은 끝까지 고를 생각이 없거나.
이랬거나 저랬거나 결국 이들 경우는 하나의 단어로 통한다. <양다리>. 이만큼 살아보니 생각보다 진짜로 진심으로 정말로 이 세상에 양다리 걸치는 놈들이 너무너무 많더라. 아니 그럼 사람 다리가 애초에 두 갠데 살다보면 각 다리를 적절히 양쪽에다 나눠 걸칠 수도 있고 뭐 그런 거지. 하고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정신 나간 인간들도 더러 있는데 말이죠... 그러다 진짜로 두 다리가 따로 놀게 만들어주는 수가 있으니 닥쳐라.
하여간에 나는 위와 같은 이유로 호칭을 부여받지 못한 비련의 여자 2번이었다. 그럼 1번한테 어떻게 안 걸렸는지가 궁금할 텐데,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여자 1번이 머나먼 타지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이 자식 휴대폰 연락처 목록 중에 '넘버원'이란 이름이 있었더랬다. 설마설마 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였다. 와... 진짜 초월적으로 직관적인 새끼. 입이 짧다고 말하면 자 들고와서 입 크기 재 줄 새끼. 내일 모레가 서른이라고 말하면 어제가 생일이었냐고 물어볼 새끼. 어휴.) 무려 한국에서 비행기를 4시간씩이나 타고 가야 하는 나라에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나는 대타였다.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줄 용도로 섭외된 대타.
슬프지 않았냐고요? 아직 그런 질문을 받기엔 이릅니다.
방금 얘긴 프롤로그였다. 참. 여러분들께 알려준다는 걸 깜빡했는데 이 남자는 개새끼도 싸이코패스도 그 어느쪽 부류도 아니었다. 그냥 병신이었다. 개새끼만큼의 내공도 없고 싸이코패스만큼의 신공도 없는. 하다못해 내 첫번째 남친은 손오공급 능력이라도 탑재했었고, 내 두 번째 남친은 강태공급 매력이라도 탑재했었는데... 이 병신은 노 잃고 떠도는 뱃사공급 수준도 안 됐다. 아 갑자기 또 빡친다. 내가 만났던 남자 중에 가장 후졌던 놈이라 지금 이렇게 소개하면서도 쪽팔릴 정도다. 근데도 내가 목숨 걸고 그 관계를 사수하려던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 놈의 술. 이성은 마비시키고 감정은 증폭시키는 인류의 위대한 발명품, 바로 술 때문에. 덕분에 상황은 언제나 즐거웠고 마음은 딱 좋게 익어갔다. 그 남자와 나는 비가 오는 날이면 노천 테라스에서, 해가 나는 날이면 옥상 한 구석에서, 순대볶음에 위스키를 마시고 냉면에 소주를 마시고 복숭아에 샴페인을 마셨다. 그와 나는 내가 즐겨가던 바를 함께 다녔고, 재즈를 들으며 와인잔을 기울였으며, 밤의 한강을 거닐며 꿈을 이야기 했다. 달빛에 일렁이는 강의 표면을 바라보며 모든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한없는 낭만을 표하고, 북악산에서 서울 야경을 내려다보며 모든 반짝이는 것들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표하던 그때. 적어도 그때까지는 우리가 같는 곳을 바라보는 아주 비슷한 사람인 줄 알았다.
연금술사가 금을 좇듯 주정뱅이는 술을 좇는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이 바라는 궁극의 판타지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쫓았던 건 환상이고 허상이었다. 처음부터 이 남자는 날 속일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내가 알아서 껌뻑 속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면 여자 1번과의 결말에 대해 가타부타를 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한 여자를 9년 만났다고만 했을 뿐. 근데 그게 현재 진행형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냐고. 문제는 늘 속은 사람만 바보가 되는 이 연애 시장의 병폐적인 구조에 있다.
그가 늘어놓은 개소리가 꽤 진부한 것들이었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가 흘리고 간 힌트가 제법 많았음에도 나는 계속해서 그것들을 못 본 척 했다. 나는 그에게 여자친구와 언제 헤어졌냐고 묻지 못했다. 어떻게 헤어졌냐고도 묻지 못했다. 헤어진 게 맞는지를, 나는 끝끝내 확인하지 못했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내가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실이 정말로 진실일까봐. 그래서 내가 또 다시 상처받을까봐.
술의 신 디오니소스는 평생토록 유희와 쾌락을 추구했다. 그러나 결국엔 운명의 고난 속에서 사지가 찢겨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환생한다. 역시 갓은 갓이다.) 이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살면서 직면하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에는 고통의 회피라는 주제가 들어있다. 우리는 평생을 괴롭지 않기 위해 많은 이슈로부터 도망가고 아픈 현실로부터 숨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삶의 긍정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도 필요한 법이다. 디오니소스가 고통 속에서 최후를 맞이했음에도 또 다시 디오니소스로 환생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우리 역시 그렇다. 고통을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니다. 모진 고통을 마주할 용기가 있다면, 삶에 대한 그만큼의 의지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삶에 대한 진정한 긍정이란 뜻이다.*
복잡한 얘기는 여기까지. 내가 진짜로 하려던 말은 이거다. 아프면 아픈대로 살아보자. 감기도 앓고 나면 면역이 생기듯. 윈스턴 처칠이 말하길, 술이 내게서 가져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술로부터 얻었단다. 나 역시 그 말에 지극히 동감한다. 아무튼 나 역시 알콜로부터 큰 교훈을 얻었으니까.
달콤한 술로 시작한 관계는 씁쓸한 솔로로 끝난다.
그러니 이건 슬픈, 아니 그냥 술 푼 이야기.
9년 어치의 세월을 땜빵할 대타래도 난 여전히 내가 너무 오버스펙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지나가버린 9년이 뭐 어쨌다고 유세는 유세냐고.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 남자의 앞으로 29년을 같이 고민해주던 중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12년 동안 몸담은 바텐더직을 관두고 개인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공동창업자들과 견해 차이로 완전히 갈라서게 됐다. (너무 뻔한 얘기라 그냥 중략하겠다.) 무튼 퇴직금 야무지게 까드셔주며 수중에 돈은 사라져가고 덩달아 자존감도 떨어져가던 중, 혜성처럼 나타난 게 바로 나였다.
대외적으로 그는 백수였고 나는 교수였는데, 타이틀이 다 무슨 소용이냐 해도 어쨌든 내가 처한 상황이 더 나았다는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본인이 백수라고 나까지 죄수가 되어 눈치 볼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줬다. 학연, 지연, 혈연 탈탈 털어 사업파트너도 만나주고 사업구상도 도와주고 사업계획도 짜주고. 그 와중에 혹시라도 그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최대한 조심하랴 주머니 사정도 적당히 모른척 하랴. 나 혼자 아주 북치고 장구치고 원맨쇼를 했다는 뜻이다. 근데 나만 아는 줄 알았던 원맨쇼가 사실은 나만 몰랐던 트루먼쇼일 줄이야.
이 남자도 처음에는 내게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내 앞에서 눈물도 보였고 속내도 낱낱이 보였다. 그 과정이 아름답지만은 않았으나 꼭 지저분했던 것만도 아니다. 그냥 무척이나 인간적이고 인상적인 과정들이었다. 아무튼 나로서도 쉽지 않은 경험이었는데 나는 적어도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라는 신념은 끝까지 지켰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만큼의 이상을 했고, 그 가상한 노력이 언젠가는 빛을 발할 줄 알았다. 근데 내가 준 건 분명 빛이었는데 그는 내게 빚을 졌다 생각하더라.
어느 날, 이 남자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이 시점은 드디어 그가 나를 '여자친구'라고 인정한 후였다. 그러기까지 장장 3개월이 걸렸다.) 나한테 너는 너무 과분한 것 같아. 솔직히 너네 부모님이 날 보면 뭐라고 생각하시겠어. 우리 할머니가 그러는데 너무 잘난 여자는 데려오지 말라더라 나중에 피곤해 진다고. 너 훨씬 더 좋은 놈 만날 수 있잖아. 아 그니까 첨부터 내가 굳이 남자친구 여자친구 이런 거 하지 말자니까. (네? 갑자기요?) 이 무슨 줄줄이 개떡같은 발언을 듣고나니 진심으로 할 말이 없더라. 이토록 수준 떨어지는 무맥락 아무말에 내가 무슨 수로 답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며칠 후,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 거짓말을 커버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가며 나를 속이던 그는 결국 지가 싸질러놓은 허언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기에 이른다. 심지어 그가 내게 마지막으로 했던 거짓말은 너무 흔하고 시시해서 나를 오히려 초라하게 만들 지경이었다. <나 먼저 잘게>라는 문자를 보는 순간 뒷통수가 쎄하게 식더라. 그리고는 그대로 다음 날 오후까지 잠적. 물론 이 수법에 한 두 번 당해본 게 아닌 나로서는 이미 촉이 곤두설대로 곤두선 후였다. 올 게 왔구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여섯 번째 감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예상은 언제나 적중할 뿐이다. (남자들이여. 여자들의 촉은 사이언스다. 제발... 부디 새겨들어라. 레이더 도는 순간 게임 끝이다.)
알고 보니 그 여자가 귀국을 했더랬다. 이미 그가 내게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하던 그 무렵에 말이다. 그래 나 같아도 잠깐 고국에 놓고 온 내 남자가 저보다 여섯 살이나 어린 (나보다 훨씬 언니였다.) 여자한테 눈 돌아갔단 소식 들으면 같이 눈 돌아가지.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녀가 엄청나게 잘 나가는 증권사의 펀드매니저였는데, 아시아 헤드쿼터로 발령이 났다가 내 존재를 알게되어 득달같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더라는 것이다. (나한테 과분하다던 이 새끼의 뻔뻔함에 물개박수를 치는 바다.) 그래서 그는 그대로 발등에 불똥 떨어지고 그녀는 그녀대로 머리에 번개 맞아서 그때부턴 아주 대환장 코미디 쇼였다.
저 놈의 집구석도 아주 콩가루였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 사이에 큰 돈이 껴 있었다. 좀 큰 돈이 아니라 많이 큰 돈 말이다. 내막을 알고 나니 그 여자가 눈 돌아간 이유를 알겠더라. 거금 들여 투자해놨더니 뒤에서 호박씨를 까고 있네? 이미 쥐어준 돈도 홀랑 사업자금으로 꼴아박은 주제에 미쳐가지고 여자까지 새로 만들어? 요약하자면 이런 얘기였다. 덕분에 내로라 하는 막장드라마보다도 더한 전개가 시작됐다.
이 새끼는 나한테 급기야 헤어지자고 하더니, 몇 시간 뒤에 갑자기 집 앞에 찾아와 그래도 아는 오빠 동생으로는 지내면 안 되겠냐고 하더니, 그 얘기를 하던 중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에 난데없이 그 여자와 싸움을 시작하더니, 또 태세전환해서 자기가 그녀와 헤어지고 오겠다고 하더니, 다시 돈 문제 때문에 역시 안 될 것 같다더니. 아주 한 시간에 두세 번 꼴로 말을 바꿔가며 세상 염병을 떠는데... 어쩌라고. 지랄도 풍년이지 이모작만 하든지 뭘 삼모작씩 하고 쳐 앉았는지.
아무튼 가만있는 사람 이래저래 들쑤셔준 덕분에 나는 완전히 질려버렸다. 사람이고 상황이고 다 필요 없으니까 딱 이렇게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야 됐고, 그냥 꺼지라고. 난 너 없어도 잘 먹고 잘 살기만 해. 내 인생은 원래부터 문제가 없었고 네가 바로 내 인생 최대의 난제야. 아니 그리고 언니. 제가 진짜 안타까워서 그러는데 언니는 이딴 놈을 굳이 왜... 아니 이런 병신을 꼭 가지려고 하시는 이유가... 아 그쵸 생각해보니 돈 문제가 좀 크리티컬하네요 네 뭐... 근데 거기까진 제가 모르겠고. (물론 실제로는 그들의 행동에 아무런 대응 자체를 안 했다.)
여하간 요지는 이렇다. 쩐으로 얽힌 관계는 절대 꽁으로 안 끝난다. 정말이지 갈 때까지 간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추락이다. 고로 아무리 사랑해도 금전관계는 말자.
어쩌다보니 술 얘기로 시작해서 돈 얘기로 끝났다. 술로도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술로도 돈으로도 감출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즉 사람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신뢰다. 연인 관계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거짓말은 분명한 적신호다. 하나의 거짓말을 하기 위해선 적어도 일곱 개의 거짓말을 더 만들어내야 한다더라. 결국 여러분이 한 개의 거짓말을 들었다는 건 여덟 개의 거짓말을 들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선의로 시도했든 악의로 의도했든 거짓말은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그 뒤엔 무슨 진실을 말해도 그냥 한낱 변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피노키오의 코에 찔렸다고 아퍼 마시라. 그딴 건 그냥 분질러버리면 끝이다. 어차피 젓가락으로도 못 쓸 거 이왕이면 세게 꺾어주길 바란다. 늬들이 쌍코피 철철 흘려봐야 우리를 빙다리 핫바지로 안 보지. 안 그래요?
뭐, 쫄리면 뒤지시든가.
@ 참고문헌
*질 들뢰즈, <니체와 철학>, 민음사,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