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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May 08. 2024

"쭈쭈 빠빠이"

단유. 너무나 슬픈, 하지만 언젠간 해야 하는

2024. 5. 8. (수)


둘째 찰떡이가 단유 중이다.


어느덧 14개월. 둘째에게 갑자기 찾아온 중이염이 몇 주째 낫지 않는 탓에 아내가 단유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사실 처음에는 '밤수 끊기'를 결심한 것인데, 아직 완전히 대화가 되지 않는 찰떡이가 '낮에는 주는데 밤에는 왜 안 주냐'며 헷갈려하는 통에 아예 단유로 전환되었다. 아빠를 닮아 고집 세고 어리석은 찰떡이 


찰떡이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단유를 결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중이염은 언제 그랬냐는 듯 나았고, 밤에 4~5번씩 깨던 찰떡이는 이제 통잠까진 아니지만 확실히 길고 깊이 밤잠을 자기 시작했다.


단유. 글로 쓰면 참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데, 현실은 결코 쉽지 않다. 첫째 꿀떡이 때도 그랬지만, 둘째 찰떡이는 첫째보다 수유 기간이 더 길어서인지 저항(?)이 더 심하다. 당장 이 글만 해도, 밤에 '쭈쭈 내놓으라'며 울고 몸부림치는 찰떡이를 안고 거실에서 1시간을 흔들흔들하며 달래다 간신히 소파에 누이고 보초를 서며 쓰는 글이다. 언제 깰지 몰라 조마조마한 이 느낌이란


무려 1시간을 뒤척이다 간신히 잠든 찰떡이 (Feat. 급할 때는 '엄마'를 아주 또박또박 외침)


도대체 쭈쭈가 뭐길래 그토록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도 그토록 서럽게 우는지. 낮에는 쭈쭈를 먹고 땀범벅인 채로 세상 행복한 미소를 짓다가도, 밤에는 엄마에게 안겨 울먹거리며 '쭈쭈'를 외치는 둘째를 보고 있노라면, 이 시기 모유수유 아이에게 엄마는 곧 쭈쭈고, 또 쭈쭈는 곧 엄마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낮에 쭈쭈타임 직후. 땀범벅이지만 위에서 찍어도 감출 수 없는 저 미소


그런데 (쭈쭈가 나오지 않는, 그래서 영양학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그래서 더욱 쓸데없이 객관적인) 아빠 입장에서 보면, 재미있게도 단유는 아이보다 엄마에게 더 쉽지 않은 것 같다.



엄마가 미안해..


첫째 꿀떡이는 돌을 한 달여 앞둔 11개월 즈음에 단유를 했다. 꿀떡이도 완전 밤수, 완전 모유 아기였는데, 재미있게도 꿀떡이의 단유는 아빠인 내가 결정했다. 아내가 아팠었기 때문이었다.


첫째 꿀떡이가 태어난 직후는 내가 회사에서 매일 같이 야근을 할 때였다. 당시 코로나도 심해 사람을 만나지도, 모임에 가지도 못하던 암울한 시기. 그 시기에 아내는 내내 혼자 육아를 했다. 그러다 귀에 작은 염증이 생겼는데, 꿀떡이를 먹이고 재우느라 정작 본인 몸을 챙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 별 거 아니었던 염증이 계속 커져 결국 '이제 항생제를 먹지 않으면 한쪽 귀가 잘못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온 것이다.


나는 그날 부로 '무조건적인 단유'를 선언했고, 아내는 반대 (24개월 완모가 목표라는 이상한 소리를 하며)했지만 내 고집을 꺾지 못했다. 다행히 꿀떡이는 11개월임에도 의사소통이 어느 정도 되던 시기라, 한 이틀 밤을 울며 '쭈쭈 빠빠이'를 하더니 비교적 수월하게 단유를 했다. 당연히 아내의 귀도 깨끗이 나았고.


단유 하던 날의 첫째 꿀떡이 뒷모습. 11개월에도 말이 다 통하던 프로 단유러(?)의 슬픈 뒷모습


내게는 완벽한 해피 엔딩이었다. 아이도 쭈쭈를 찾지 않았고, 아내는 약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내는 갑작스러운 단유를 못내 아쉬워했다. 틈만 나면 꿀떡이에게 '엄마가 미안해'라며 꼬옥 안아주기도 하고 (정작 꿀떡이는 괜찮아 보였는데). 그 장면을 옆에서 바라보며 갸웃거리는 내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다.


"당신은 몰라. 이래저래 힘들긴 해도 수유할 때만 느낄 수 있는 아이와의 뭔가가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잘은 모르지만) 아마 수유를 하며 엄마가 느끼는 아이와의 유대감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편해서 그냥 쭈쭈 물리는 거야'라며 너스레를 떨면서도, 수유를 하며 아이를 쓰다듬는 아내의 행복한 표정을 보면 확실히 뭔가 있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애틋하고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는 끊어야 하는 것이 수유이기도 하다. 재미있게도 우리 집에서는 첫째 때는 엄마가 아파서, 둘째 때는 아이가 아파서 조금 일찍 단유를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육아가 그런 것 같다. 시기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행복들이 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며 어떤 것은 아쉽지만 놓아주고 또 새로운 모양의 행복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느덧 조금씩 기저귀를 떼고 있는 첫째 꿀떡이의 모습도, 그토록 좋아하던 쭈쭈를 조금씩 놓아주고 이유식으로 전환하고 있는 둘째 찰떡이의 모습도 그렇고, 앞으로도 아이들의 이런저런 변화의 순간마다 부모인 우리도 함께 아쉬워하고, 또 함께 변화를 받아들이며 성장해 나가지 않을까.


너무나 아쉽지만, 또 새로운 모양의 행복을 기대하며, 우리 가족은 오늘도 '쭈쭈 빠빠이' 중이다.

 

어서 오시게 후배님. 쭈쭈 말고도 이 세상엔 맛있는 것이 아주 많다네 (Feat. 쭈쭈 기억도 못하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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