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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천동잠실러 Jul 01. 2024

앞서가도 괜찮아

뒤처져도, 앞서가도, 여전히 소중한

2024. 7. 1. (월)


지난달 즈음인가? 아내가 논의할 게 있다고 했다. 


퇴근 후 집에 가 앉으니 아내가 신기한 이야기를 했다. 첫째 꿀떡이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서, 첫째 꿀떡이가 영재성이 있는 것 같으니 잘 지켜보라고 했다는 것.


"엥? 어리광쟁이 우리 첫째가 영재는 무슨.."


자세히 들어보니, 경력이 오래되신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께서 꿀떡이가 평소 말하고 생각하는 수준이 또래 아이들과 확실히 다르고, 정확히는 만 세 살에 이런 아이는 '처음 본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아내에게 언질을 주셨는데, 아내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듯해서 걱정스럽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는 .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어린이집에서 진행한 발달 검사에서 전체적인 발달 수치가 높게 (특히 언어는 6-7살 수준) 나왔을 때도 아내와 나는 '수다쟁이 아빠 때문'이라며 웃어넘기곤 했었다.


그런 한심한 부모를 보며 선생님이 애가 타셨던 것이다. 혹시 아이의 재능이 부모 때문에 꽃피지 못할까 봐.


1년 만에 어린이집 인싸(?)이자 집에서는 수다쟁이 빌런이 된 꿀떡이



뒤처지는 건 괜찮은데, 앞서가는 건 걱정


불과 작년 요맘때, 어딜 가나 또래보다 뒤처지고 주눅 드는 꿀떡이를 보며 '뒤처져도 괜찮다'며 글을 썼는데, 1년 후에 정 반대 고민을 하고 있다니. 헛웃음도 나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신 선생님께 감사하면서도, 뭘 어찌해야 하나 막막했다.



다행히 마침 회사 동료 지인이 유명한 교육 전문가라  대신 이것저것 물어봐주셨는데, 아직 아이가 너무 어려서 영재성을 구체적으로 식별하기도 어려워 딱히 복잡하게 할 건 없지만 몇 가지의 지침을 주셨다.


보육이 목적인 어린이집에는 되도록 보내지 말 것 (호기심이나 학구열이 높은 아이는 지루해 할 수 있음. 이 부분은 이미 어린이집 선생님이 '자주 지루해한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영어유치원과 같이 특정 과목이나 테마 위주의 기관에는 절대 노출시키지 말 것 (지금은 재능의 영역을 알아보는 게 중요하지 특정 과목의 지식이나 원리를 강제로 주입할 필요가 없음)

하루 2시간 이상 책을 읽어주되, 건조하게 그냥 읽어주지 말고 연극하듯이 읽어주기 (이미 꿀떡이는 돌 갓 지나고부터 기본 2시간 이상 책을 읽어달라고 해서 이 부분은 이미 진행 중이었다)

재정 상황이 좋다면 한글놀이학교에 보내는 것도 추천 (엄청나게 비싸서 패스)


조언을 참고하고 담임 선생님과도 논의한 끝에, 일단 주 1-2회 <글렌도만>이라는 문화센터 교육에 다녀보기로 했다. 벌써 세 번 정도 갔는데, 엄청나게 좋아하고 집중한다는 걸 보니 확실히 꿀떡이는 교육기관으로 넘어갈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글렌도만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는 백설공주 꿀떡이 (Feat. 15개월에 덩달아 조기 교육 중인 찰떡이)


평범했으면 하는 욕심


아이들을 재우고 아내와 식탁에 앉아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도 나랑 비슷한 생각으로 걱정이 많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꿀떡이도 찰떡이도 너무 튀지 않게, 그 나이 때마다 당연하고 평범하게 누릴 것을 누리며 살아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우수하거나 할 필요 없이, 누구보다 평범해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


그런데,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영재'라는 말을 듣고 나니 불안함이 앞섰던 것이다. '우리 아이가 평범하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함.


사실, 한국 사회에서 내가 만난 '영재'라는 친구들이 끝이 좋은 경우를 많이 보지 못했고, 과정이 좋은 경우는 더더욱 보지 못해서였던 것도 같다. 평범했던, 아니 평범에서도 조금 뒤처져 있었던 내 눈에도, 타고나게 똑똑하고 멀리 앞서가던 그 아이들의 뒷모습은 불안해 보였고, 아이들 주변에는 항상 이런저런 말이 많았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마음이 맞았던 것은 '그 또한 부모 욕심'이라는 것이었다. 아이가 특출 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욕심인 것처럼, 아이가 평범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욕심이라는 것을.


하나는 책만 읽고, 하나는 오락실만 쳐다보는 이 조합... 좋아.


마음껏 특별하기를, 또 마음껏 평범하기를


부모가 되어보니, 아이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또 인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부모도 사람이라 그간 살아오며 쌓아온 어떤 잣대와 기준이 있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 잣대와 기준으로 아이들을 재단하고 더 나아가 그 잣대와 기준에 맞추려 할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러지 않으려고 한다.


특별하다면 마음껏 특별하기를. 평범하다면 마음껏 평범하기를. 또 부족하다면 마음껏 부족하기를.


이 세상에 와 부모인 우리 품에 안긴 꿀떡이와 찰떡이. 두 아이가 있는 모습 그대로 크고 작은 날개를 펴기를.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려 한다.


그러니, 앞서가도 괜찮다. 


앞서 가지 않아도 물론 좋고 (힘들면 업혀가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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