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작년 이맘때 일이 많았다. 이사도 하고, 28개월 간 가정 보육을 하던 첫째 꿀떡이가 어린이집을 갔다. 그리고 아내가 육아휴직 종료와 함께 퇴사를 했다. '큼지막한 일들이 많아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떠오른 것.
세상에. 작년 이맘 때는 내가 육아휴직 중이었다.
이사와 관련된 일들, 인테리어나 이사업체 관리나 집 정리 모두 함께 고민했고, 첫째의 첫 등하원도 아내와 내가 함께 갔다. 아내가 퇴사할 때도 잠든 둘째를 안고 같이 가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슬퍼하는 아내 손을 이끌고 쿠우쿠우에 가서 퇴사 파티(?)를 했더랬다.
분명 중요한 일들이 많았고 꽤나 힘들었지만, 육아휴직으로 아내와 24시간 함께 붙어있었기에 서로 외로울 틈이 없었던 게 아닌가 싶다.
산책도 함께. 그림도 네 명 완전체
누군가 '아빠 육아휴직 어땠나요?'라고 물어본다면 '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대답하고 싶다. '왜 후회하지 않나요?'라고 다시금 묻는다면, '잃은 것보다 얻은 게 훨씬 많아서요'라고 대답할 것이고, '무엇을 얻었나요?'라고 또 묻는다면, '커피 한 잔 할까요'라고 응하며 예상하지 못하게 많은 것들을 얻었다고 한 두 시간 붙들고 하나하나 말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무엇보다, 반복되는 일상으로 가득한 육아 특유의 우울함을 느껴봤다는 점이 좋았다.
일어나서 놀다 해 지면 빨래 개기 × 365
휴직 중이라 '직장'이나 '일'과 관련된 생각이 단절된 상태에서 집에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아이와 잠들고 또 일어나서 밥을 먹기를 반복했다. 말 그대로 '삼시 세끼'를 살아내는 그 과정은, 짧은 순간이나 한 장의 사진으로 보면 알록달록하고 행복한 순간일 수 있겠으나, 한 걸음 뒤로 훌쩍 물러나서 더 큰 그림으로,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라는 묶음으로 보면 무채색의 우울한 영상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게 1년 간의 육아휴직은, '순간이라는 찰나'로 보면 행복으로 점철되어야 할 것 같지만, '일상이라는 묶음'으로 보면 우울할 수도 있는 육아 본연의 특징을 훔쳐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찌 보면, 육아의 '행복'이라는 그림책에는 '우울'이라는 색깔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도 해볼만큼.
'깨달음'이라고 표현했지만 특별히 엄청난 것은 아니고, 어느 날 본인도 모르게 지치고 힘들어하는 아내에게 '그래도 여보.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함께하니 행복하지?'라는 의미 없는 말은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달까? 그저 혼자 주중에 두 아이를 돌보는 아내의 힘듦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주기 위한 이런저런 방법을 찾게 되었던 것.
적어도 육아의 일상에 있어서는, '왜 힘든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힘들다'는 그 사실 자체가 더 중요하다. 직접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무게를 직접 느껴본다는 것......(무겁)
요즘 TV나 SNS를 보면 이혼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많은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유에 '육아'라는 키워드가 자주 포함되는 것이 안타깝다. 독박육아, 육아 스트레스, 부부간 육아관 대립, 소통 불가 등 다양한 이유와 배경이 있는 듯해서, 딱 하나 콕 집어 '이것'이 문제라거나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제시하기도 어렵지만, 적어도 육아와 관련해서는 다른 솔루션보다 '직접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다.
사실 육아라는 게 아이 성향에 따라, 부모 성향에 따라, 또 그를 둘러싼 환경에 따라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적용될 방침이랄 게 없지 않을까 싶다. 어느 정도 넓은 범위의 지침 정도가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더더욱, 육아는 직접 해 보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물 밖에서 다른 사람 수영하는 것을 보며'저 정도는 나도 하지'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물속에들어가서 그 온도와 파도의 힘을직접 경험하며 몸을 허우적 대 보는 경험은 큰 차이가 있다. 수영을 잘하면다행이지만, 수영에 실패하더라도 배움이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경험인 것이다.'아.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은 다른 사람이 말이나 글로 넣어줄 수 없다. 직접 경험해봐야 하는 것이다.
육아 체험형 인턴 (잘 하면 전환될 수도..?)
'힘든 직장일도 하는데 애만 보는 걸 못할까'라는 말이 사회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선 엄마들 뿐 아니라 아빠들도 다들 육아를 해봐야 한다. 해보고 만약 이 정도면 '개꿀'이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적성을 찾은 것이니 좋고, '아 이렇게 힘들구나'해도 아내를 이해할 수 있어 좋고. 육아는 일단 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내가 1년 간 경험한 육아휴직이라는 이야기의 결말은 행복이었지만, 그 중간중간 우울한 감정이 앞선 순간이나 기간도 있었다. 나는 많은 아빠들이 1년 간 내가 경험한 행복이라는 결말을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결말뿐 아니라, 말에 다다르는 수많은 작은 사건과 순간들에 스며들어 있는 우울함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그 경험을 통해, 육아의 대상인 아이뿐 아니라, 육아의 동반자인 아내를 바라보는 시선과 각도가 많이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육아휴직 당시 '나는 훨씬 더 잘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 있게 외쳤던 내가 그랬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