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휴직으로 피한 눈물 골짜기
2025. 10. 19. (일)
육아휴직 후 4개월이 번개처럼 갔다. 특히 셋째가 태어나니 인생이 빨리감기다. 신생아 육아에 비몽사몽인 채로 유치원생인 첫째와 어린이집 다니는 둘째를 돌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나름 두 번째 육아휴직이고, 벌써 세 번째 신생아 육아인데도 새로운 것이 많다. 아이가 둘에서 셋이 되었고, 가정보육만 하던 첫 휴직 때와 달리 유치원생과 어린이집 등원생이 있는 지금은 육아의 스펙트럼이 다채로워졌달까.
마침 첫째 유치원, 둘째 어린이집에 한 가정씩 세 자녀 가정이 있다. 경험치가 있어서인지 두 가정 모두 우리를 바라보는 마음이 애틋하신 게 눈빛으로 느껴지곤 하는데, 얼마 전 '아빠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라며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전 셋째 정말 울면서 키웠어요."
두 아이와 세 아이는 육아의 난이도가 다른 것 같다. 무기력함의 정도가 다르달까? 아내와 우스갯소리로 '팔과 다리는 두 개인데 아이가 셋이라니'라며 웃곤 하는데, 진짜 안아주는 데도 셋은 꽉 참을 넘어선다. 지난 4개월 동안에도 '내가 휴직을 안 했으면 이걸 어떻게 하지?' 싶은 아찔한 순간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휴직 직후인 6월 말부터 아내와 두 아이가 연달아 아파 하루 종일 병원에 왔다 갔다 했다. 아픈 데도 다 달랐다. 아내는 이비인후과, 애들은 소아과와 안과. 만약 내가 회사에 있었다면 만삭의 아내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와 안과를 매일같이 왔다 갔다 했을 것이다. 본인 병원은 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매일 유치원과 어린이집 하원 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자고 떼를 쓰면 만삭의 아내가 배뭉침을 견뎌가며 위험하게 노는 아이들을 지켜봐야 했을 것이고, 이번 여름처럼 갑작스레 비가 오는 날이 잦았다면 셋 다 쫄딱 젖은 채로 집에 왔어야 했을 것이다. 만삭의 아내는 또 그 둘을 혼자 씻겼어야 했을 것이고.
아빠 육아휴직 덕분에 그 모든 것들을 내가 대신할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아빠 육아휴직이라는 제도 덕분에 눈물 골짜기를 피할 수 있었다.
내심 셋째부터는 아빠 육아휴직이 의무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발칙한 생각을 해본다. '의무화'라는 것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많아 조심스럽지만, 애가 셋이면 엄마 혼자서는 감당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낀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혹자는 '예전에는 애 셋 키우고 밭도 매면서 잘도 살았는데'라고 말하겠지만, '잘도 살았는데'의 의미에 대해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당장 내 아내가 그 모든 것을 견뎌야 했다면, 아내도 몇 년 후 놀이터에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을 것 아닌가? '셋째는 울면서 키웠다'라고. 그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다. 물론 육아라는 게 당연히 어쩔 수 없이 힘든 부분이 있지만, 과거 육아를 떠올릴 때 '셋째는 사랑이더라'라는 설레는 말보다 '울면서 키웠어'라는 아련한 말이 나오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셋째를 맞이하는 많은 가정들이 아빠 육아휴직을 통해 눈물 골짜기를 피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