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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에 아빠가 있다.

by 봉천동잠실러

2025. 11. 3. (월)


"아빠~나가자아"

어제 오후 3시 즈음인가. 아침부터 무려 6시간을 외출하고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둘째가 바닥에 드러눕는다. 현관에 있는 자전거를 보고 또 나가고 싶어진 것. 첫째는 지쳤는지 벌써 신발 벗고 손을 씻으러 들어가고 있다. 조금의 망설임. 그리고 결심.


"... 그래. 또 나가자"


육아휴직 후 벌써 4개월이 넘게 지났는데,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점이 바로 이것이다. 아빠랑 원 없이 신나게 놀 수 있는 것.


더운 여름에는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지도록, 그리고 요즘처럼 추워지는 날에는 콧물이 시큰하게 흐를 때까지 밖에서 놀다 들어오는 것이다. 출산 전에는 만삭이었고 출산 후에는 몸을 회복 중인 엄마가 해줄 수 없는 것. 아니 어쩌면 엄마가 몸이 다 회복되어도 해줄 수 없는 수준의 신체 노동(?)을 아빠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이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바람이 쌩쌩 부는데 기어이 다시 나온 둘째



"혹시... 복직이 언제세요?"


그런데 나의 휴직은 우리 애들 뿐 아니라 동네 놀이터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통상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 놀이터는 하원 후 1시간 정도 엄마들이나 할머니들이 아이들의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마치 잔불(?)이 타닥이는 공간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름도 낯선 '꿀떡이(또는 찰떡이)네 아빠'가 하원을 담당하면서 동네 놀이터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것. 우리 애들만 놀아주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결국 첫째 유치원 친구들, 그리고 둘째 어린이집 친구들과도 같이 놀며 친해져 버려서 내가 나타나기만 하면 멀리서 '삼촌! 삼촌이다!' 이러면서 아이들이 달려와 같이 노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놀이터이다 보니 아무래도 말보다는 몸으로 놀아주고, 뛰고 달리고 또 달리며 놀기 마련인데, 다른 부모들 입장에서는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어도 아이들 힘을 빼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나 보다. 요즘은 하원하러 가면 조심스레 "놀이터... 오시죠?"라고 물어보시거나, 다 놀고 헤어질 때 "내일 뵙겠습니다"라고 확인 아닌 확인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졌다. 할머니나 할아버지들은 "젊은 양반이 잘 놀아주네"하며 등을 토닥여주시기도 하고.


심지어는 지난달 즈음 둘째 어린이집 같은 반 어머니들이 조심스레 다가와 '언제 복직하냐'며 물어보신 것이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니 언제 복직이신지 알려달라며...


겨우 아빠 한 명이 휴직을 했을 뿐인데, 동네 놀이터 분위기가 변하는 것이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노는 건 맨날 똑같은데 아이들에게는 매일 새롭게 느껴지나 보다.


생각해보니 정작 놀아주는 내 사진은 없음



아빠랑 놀아줘서 고마워


사실 어른 입장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이 노동으로 느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이들과 노는 행위는 단순 반복인 경우가 많고, 말도 안 되는 떼도 많이 쓰고, 무엇보다 한두 시간이 지나면 몸이 지친다. 그런데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오늘만 사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원없이 노는 이유는, 이 아이들과 이렇게 깔깔거리며 뒹구는 시간들이 금방 지나갈 것이라는, 미리 느끼는 아쉬움 때문이다.


인생 전체로 봤을 때 아빠만 보면 '놀자'며 달려드는 시기가 얼마나 될까? 나만 보면 밖에 나가 놀자며 매달리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도 결국 이 짧은 몇 년의 기억이 다일 것이다. 나중에 후회하기 전에 지금, 육아휴직으로 상황도 허락하고 아직 30대라 몸도 어느 정도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녹초가 될 때까지 놀아주고 있다. 어린아이들과 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폭소하는 순간들도 많고 놀라운 경우도 많아서, 요즘에는 내가 놀아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나와 놀아주는 것 같을 때도 많다.


얘들아. 아빠랑 놀아줘서 고마워. 이제 또 월요일이네. 옷 따듯하게 입고 또 신나게 놀아보자.


하원용 보냉백 (Feat. 모기퇴치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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