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1. (월)
지난 11월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소아과'라고 할 수 있겠다. 무려 세 곳의 소아과를 다녀왔다. 규모도 다르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도 모두 다른 소아과 탐방을 다니게 되다니. 짧지만 너무 길게 느껴졌던 한 달 동안 여러 곳의 소아과를 전전하며 느낀 것이 있다.
1. 첫 번째 소아과: 집 근처 (5살 첫째, 3살 둘째)
셋째 주 금요일 밤. 첫째가 39도의 고열이 났다.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 근처 소아과에 갔는데 대기가 40번. 첫째와 유치원 같은 반 아이가 먼저 진료를 받고 나오더니 A형 독감이란다. '아....' 하는 탄식과 함께, 60일도 안 된 막내와 아내 생각이 났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은 열이 난 지 얼마 안 되면 독감 신속검사에서는 결과가 안 나올 수 있으니 일단 약을 처방해 주겠지만 밤에 열이 또 나면 일요일에 진료하는 다른 소아과라도 꼭 가라고 당부하셨다. 그러시더니 진료 접수도 안 하고 옆에 서 있는 둘째도 감사하게 꼼꼼히 봐주셨고, 다행히 둘째가 열은 없지만 감기 증상이 있다고 약을 지어주셨다.
"아. 집에 신생아 있죠? 아이고 어떡해..."
일단 집 근처에 위치한 시댁이 마침 비어있어 아내와 막내가 급히 시댁으로 대피했다. 독감이 우리보다 한 발 빨랐다는 게 문제였지만.
2. 두 번째 소아과: 시댁 근처 (신생아 셋째)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아내가 열이 39도가 되었다.
아내는 수유 중이라 독감주사를 맞을 수 없어 해열제와 타미플루만 처방받았다.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수요일. 막내가 뜨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막내의 열이 37.7도가 되자마자 아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시댁 근처 소아과에 갔다.
앱으로 예약을 하고 갔는데 오후 늦게라 그런지 대기가 많았다. 체온을 재려고 다가온 간호사 선생님이 갓 60일 된 막내를 보시더니 표정이 바뀌셨다고 했다. 소아과 선생님과 논의를 하고 감사하게도 바로 진료를 봐주셨다. 코를 찔러보니 결국 A형 독감.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한참 동안 고민을 하셨다고 했다.
"이 정도 신생아는 열이 나면 안 되는데... 타미플루랑 해열제를 처방해 드리겠지만, 오늘 저녁에 조금이라도 아이가 쳐지거나 열이 더 나면 꼭 응급실 가세요."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막내는 금방 38도를 넘겼다. 결국 그날 저녁, 첫째와 둘째를 집 근처 지인에게 잠시 맡기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3. 세 번째 소아과: 대학병원 (신생아 셋째)
응급실 대기실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피곤해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나오셨다. 퀭한 눈으로 막내 이름을 부르셨는데, 아기띠 안에 있는 쪼그마한 막내를 보자마자 표정이 확 바뀌셨다. 분주해지더니 상급자로 보이는 다른 간호사 선생님이 대기실로 뛰어나오시고, 대기 없이 바로 막내를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가셨다 (보호자는 1명만 들어갈 수 있어서 아내가 들어갔다).
혈액검사 결과 A형 독감뿐 아니라 코로나도 나왔는데 수치가 굉장히 높음에도 열이 이 정도밖에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라고 하셨다.
그렇게 바로 입원한 막내는 5박 6일 동안, 무려 살아온 인생의 10%를 병원에서 지내며 약도 먹고 수액도 맞으며, 소아병동 최연소 환자로 간호사 선생님들의 예쁨을 듬뿍 받다가 지난 월요일에 건강히 퇴원했다. 지금은 오동통 너구리로 잘 먹고 잘 싸고 잘 토하며(?) 집에서 잘 지내고 있다.
요즘 '소아과 실태'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은 것 같다. '대기가 많다', '진료가 짧다', '불친절하다' 등의 문제 제기가 있고, 일정 부분 어떤 순간에는 사실인 점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11월, 나와 아내가 세 곳의 소아과를 경험하고 느낀 것은 '감사함'이었다.
부모인 우리가 양육자로서 아이들을 책임지고 키우는 데 있어 소아과는 필수 영역이다. 요즘 소아과는 어딜 가나 매일 100명이 넘는 아이들을 진료하시는데, 묵묵히 그리고 성실히 현장을 지키는 소아과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휴일에도 진료를 보는 것은 정말 사명감의 영역이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시댁 근처 소아과 원장님은 일요일에도 진료를 보시고 지난 몇 년간 쉬는 날이 거의 없으시다고 들었는데, 처음 본 우리 막내아이를 위해 한참 고민하시고 논문도 찾아보시며 부모처럼 고민해 주셨다고 아내에게 전해 들었다.
매번 첫째 진료 보면 둘째도 살펴봐주시고 막내도 물어보시고 걱정해 주시는 집 앞 소아과 선생님, 신생아라고 빠른 진료를 볼 수 있게 도와주신 간호사 선생님들, 자기 자식처럼 고민하시며 꼼꼼하게 진료 봐주셨던 시댁 근처 소아과 선생님, 대학병원에서 병실 옮길 때 막내 예뻐해 주시고 직접 안아 옮겨 주셨다가 독감에 옮아서 고생하셨던 병실 간호사 선생님까지. 한 달 동안 경험한 소아과 실태는 '감사함'이었다.
경황이 없어 매번 충분히 감사인사를 드리지 못했지만, 우리 동네뿐 아니라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아이들을 봐주시는 모든 소아과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여러분들 덕분에 저희 세 아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