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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우 Feb 23. 2019

달이 참 예쁘네요

소설가 - 나츠메 소세키

산책하기 좋은 밤이었다.


"뭐해요?"


때마침, 너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산책을 할 참이라고 했고, 너는 자신도 마침 산책을 나왔다가 내 생각이 나서 연락을 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제안했는데, 너는 뜬금없는 말로 답했다.


"제가 지금 00 초등학교 앞에 있거든요. 이쪽으로 걸어오실래요? 저도 그쪽으로 걸어갈게요. 어디서 만날지 정하지 말고, 어느 길로 갈지 말하지 말고 우리 중간에서 볼 수 있으면 봐요."


나는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지만, 너는 읽지 않았다. 아마 내 답장은 중요하지 않은 듯했다. '볼 수 있으면'이라는 말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지긴 했지만 곧 대수롭지 않았다. 산책하기 좋은 밤이었고, 평소 좋아하는 산책코스인 골목길 대신에 지도 앱이 알려주는 큰길을 선택했을 뿐이다.


솔직히 한 걸음 한 걸음이 설렜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너와 내가 늦은 밤에도 뜬금없이 만날 수 있는 사이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때의 우리는 상대방이 어디쯤인지 모른 채 서로를 향해 걸었다.


운이 좋았는지, 1시간이 채 못되어 우리는 서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산책하기 좋은 밤이어서 한참을 함께 걸었다. 너의 동네를 지나 네가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와 내가 살던 동네를 거쳐, 다시 너의 동네로 돌아와서 담배를 함께 태웠다.


"혹시 나츠메 소세키라고 알아요?"


나는 모른다고 말했고, 너는 말을 이어나갔다.


"일본에 나츠메 소세키라고 소설가가 있는데, 영문학을 전공해서 유명한 번역가이기도 해요. 그 사람이 번역을 하다가, 여자가 남자한테 고백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당시 일본 정서상 사람들한테 잘 받아들여질 것 같지가 않았대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I love you'라는 말을 '달이 참 예쁘네요'라고 번역했대요. 근데, 그 번역을 보고 일본 사람들은 다 이해했다고 하더라고요. 일본어로 달이 'つき'(츠키로 읽음)거든요. 근데 좋아한다는 말이 'すき'(스키)잖아요. 참 로맨틱하고 신기하죠?"


소설가의 천재성과 일본 사람들의 감수성에 감탄하며 그 날의 달을 보았다. 달이 참 예쁜 산책하기 좋은 밤이었다. 너도 달을 보는 듯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늘 달이 참 예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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