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우 Jan 19. 2020

하루에 두 시간을 지하철에서 보냅니다

하루에 시 한 편

운이 좋게 백수 생활을 마감하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직장이 생겼다.


정신없는 첫 주를 보내고, 주말이 되자 뜬금없이 얼마 전 봤던 유튜브 영상(김영하 작가가 매일 1편씩 시를 외우며 깨달은 것)이 떠올랐다. 우습게도 다시 보니 영상의 핵심은 '시를 외우는 행위'에 대한 것만은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일을 마주하는 한 주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다가오는 주에는 좀 더 잘 살아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도 하루에 1편씩 시를 외우고 있다. 어떤 날은 출근길에 외운 시를 퇴근길에 되뇌며 집으로 돌아왔고, 너무 붐비는 지하철을 탄 하루는 퇴근길에 시를 외우고 다음날 아침에 그 시를 다시 떠올려봤다.


시를 외우며 겸손해지고 있다. 많은 것을 손쉽게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나의 암기력이 얼마나 무뎌지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흘려보내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또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문장들을 꼼꼼하게 마주하며 그 앞에서 무너지기도 감탄하기도 했다. 시인의 문장 속 단어 하나하나 글자 하나하나를 붙잡으니 시가 또 새롭게 보인다. 시가 가진 넉넉한 공간 속에 내 생각과 상상을 마음대로 끼워 넣을 때도 좋았지만, 문장과 단어에 눌러 담긴 시인의 감성과 표현을 하나하나 느껴가며 시를 읽으니 더욱 좋았다.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외웠던 한 주가 지난 주보다 더 나았는지는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매일 아침 일어나서 집을 나설 때나, 퇴근하면 한 시간의 거리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이 표현 하나하나를 고민하는 것처럼 나도 시를 외우며 타는 지하철 속에서 하루의 순간순간들을 고민하고 더 잘 살아내기 위해 고민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자세에서도 숨을 쉬기 위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