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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란 Feb 14. 2019

너무도 소중한 그 시절의 기억을 이야기로

'찰스 디킨스 뮤지엄(Charles Dickens Museum)'에서




"우리는 기다릴 거예요 - 변함없는 마음을 다해 - 그리하여 시간이 변해 모든 게 우리를 돕고,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않으며, 요정들이 돌아올 때까지요. 우리는 기다릴 거예요 - 변함없이 마음을 다해 - 그리하여 우리가 여든이 되고 아흔이 되고 백 살이 될 때까지. 그러면 그때 요정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내겠죠.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가엽고 어여쁜 작은 생명체인 척한다면 우리가 기꺼이 그들을 도와야죠."


"그래요. 우리는 그럴 거예요."


_ 찰스 디킨스, 《홀리데이 로맨스》<윌리엄 틴클링 귀하가 쓴 사랑이야기>







찰스 디킨스 뮤지엄의 찰스 디킨스 스테인드글라스


우리나라의 금수저와 흙수저 비유는 어디서 온 걸까. 이 표현을 보고, 어느 기사에서 영어로 쓴 표현을 소개해준 단어가 기억에 남는다. Silver Spoon. 은수저라는 뜻도 있지만, '상속받은 부'라는 뜻도 있다. 우리나라의 금수저를 영어로 옮기면, Silver Spoon이다.  우리나라 '수저 이야기'가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 모르지만,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어 흥미로워했던 기억이 난다. 빅토리아 시대 Silver Spoon이 되었던 사람의 집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소설가이자 언론인으로도 명성을 날린 사람으로 본인은 은수저가 아니었지만, 자신의 능력으로 자녀에게 부를 상속할 수 있을 법한 최고의 이야기 꾼이 되었던 그를 가리켜 영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인의 자랑이라면, 그는 영국인의 사랑"이라고. 



바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1812-1870)의 이야기다.



관광을 위해 다듬어진 런던 지도를 보면, 찰스 디킨스 뮤지엄(이하 디킨스 뮤지엄)은 런던의 중심부에서 먼 듯 보인다. 하지만, 대영박물관에 가까운 곳에 런던의 중심에 디킨스 뮤지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영국 박물관에서 애매하게 가까운 그래서 피카딜리 서커스나 트라팔가 광장과 같은 관광지 단지와 살짝 떨어져 있는 듯 보이는 곳. 한적한 주택가에 살짝 그 존재를 숨기고 있는 듯한 곳. 그러나 사실 어느 항구마을에서 자란 소년이 런던의 중심지에 살만큼 성공한 Silver Spoon이 되었던 그를 보여주는 곳. 찰스 디킨스가 살았던 집이자, 그를 기념한 박물관에 찾아갔다. 







1925년 찰스 디킨스를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킨스 뮤지엄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에서 한참 남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의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어린아이가 뛰노는 풍경을 떠올렸던 나에게 조용한 디킨스 뮤지엄은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게 했다. 물론, 혼자서 그를 생각하기에 더없이 좋았지만, 아이가 뛰노는 풍경이 이곳과 더 잘 어울리는 듯싶었는데,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살았던 집을 박물관으로 옮겼기 때문에, 어디에서 글을 썼고 어디에서 쉬었고, 그가 먹었던 음식은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아이를 좋아했던 그가 글이 아닌 삶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실천으로 옮겼는지 알 수 있었다. 영국이 사랑하는 소설가의 박물관답게 디킨스 뮤지엄은 그가 생의 전반에 걸쳐 얼마나 많은 '글'을 썼는지에 대하여 소개하는 걸 빠트리지 않았다. 내가 디킨스 뮤지엄에서 가장 크게 놀란 건, 찰스 디킨스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굉장히 많은 작품을 썼다는 점이었다. 내가 알고 있는 소설뿐만 아니라 잡지, 신문기사, 여행기 등 평생 동안 쉴 틈 없이 글을 쓰고 또 썼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글' 그 자체였다. 

  

찰스 디킨스의 의자

찰스 디킨스는 평생 동안 매년 소설을 한 편씩 발표했다. 소설가로 두각을 나타내기 전에는 "Mirror of Parliament"와 "Morning chronicle"에서 신문기자로 일했다고 한다. 국회에서 의원들의 발언과 사건을 정리하여 기사를 썼는데 그때부터 그의 이름이 서서히 대중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소설가로 활약하며 그는 "38살에 실질적으로 자신이 편집자이고 공동 소유주인 하우스홀드 위즈라는 주간잡지를 간행"했다. 이 잡지는 "매주 목요일 발행되었는데, 그 주마다 시사성 있는 기사와 시론을 싣고 소설과 시들도 실어 시사성과 대중성을 지향한 주간지"였다. 그는 쉴 새 없이 매주 새로운 글을 쓰고 편집하는 작업을 했다는 의미인데. 그 와중에 소설까지 썼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일을 허투루 했을까? 만약 그렇게 했다면 잡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망했을 것이다. 디킨스는 발행인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는 만큼 그는 "900명의 자유기고가의 글을 하루 이틀 동안 읽고 그중 11개 만을 취해 그 기사를 거의 자신이 다시 새롭게 썼을 정도"로 그는 책임감을 가지고 일에 임했다고 한다. 정말 그의 삶의 대부분이 '글'이었다. 


글쓰기 중독에 가까웠던 디킨스에게도 글을 쉬어야 할 때가 온 적이 있었다. 1865년 뇌졸중 발작을 겪으며, 글쓰기를 잠시 멈추는 것인가 싶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후유증으로 양다리를 쓸 수 없게 되었음에도 이 시련은 그의 글쓰기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산책, 여행 그리고 글을 좋아했던 디킨스는 죽기 바로 전날인 1870년 6월 8일까지도 《에드윈 드루드의 수수께끼》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며 글을 다듬었고 한다. 죽기 직전까지 삶에서 '글'을 놓지 않았던, 그의 기록은 디킨스 뮤지엄 맨 위층에 상세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그가 '글'만 쓰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시간 활용 능력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취미를 위해 아마추어 극단을 운영해 10여 편의 연극 무대에 서기도 하고 연출을 맡았다. 틈틈이 여행을 떠나기도 했고, 런던의 밤거리 산책도 즐겼다. 마흔의 나이에 명예와 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몇 편의 소설이 성공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빅토리아 시대에 Silver Spoon이 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삶에 쉼이란 공백을 두지 않은 채 끊임없이 채운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빛날 수 있도록 뒷받침해준 탁월한 글솜씨도 한몫했겠지만.



찰스 디킨스가 원고를 작성했던 책상 



많은 글 가운데 그에게 성공을 안겨주고, 남다른 의미가 있었던 건 역시 지금까지 회자되는 소설들이 아닐까. 그의 소설 《오래된 골동품 상점》이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을 때, 항구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주인공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예전에 해리포터 시리즈가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듯이 18세기에 디킨스 소설은 독자에게 많은 사랑받았다. 또 시간이 흘러 영국인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아직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소설은 그때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은 작품은 아무래도 그의 마음에도 깊은 자취를 남기지 않았을까.


그가 쓴 소설 중에《두 도시 이야기》처럼 어둡고 눅눅한 런던과 파리 이야기를 그린 소설도 있지만. 내가 좋아했던 작품은 대부분, 다 '어린아이'가 등장하는 소설이었다. 《올리버 트위스트》, 《데이비드 코퍼필드》, 《위대한 유산》 살짝 예외이긴 하지만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모두 소년이 주인공이거나 작품에 중요한 역할로 등장했다.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듯한 명랑한 소년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비슷해 보였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에 두꺼운 벽돌 책이었지만 힘들지 않게 독파했던 기억이 난다. 문득 이런 궁금증이 떠올랐다. 왜 그렇게 찰스 디킨스는 왜 그렇게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많이 썼을까?


그 답은 그의 소년 시절에 숨어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면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불행을 느낀 시절이어서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그가 만든 이야기가 꽃을 피운 무대는 '런던'이다. 런던은 이미 인구 100만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산업혁명의 시작을 연 영국의 심장부답게 끊임없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그는 처음부터 런던에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영국의 항구도시 포츠머스에서 태어났다. 3살 때 런던으로 이사 왔지만, 유년시절 중 상당 부분을 켄트주의 채텀(Chatham)에서 보냈다. 채텀도 도시이지만, 1800년대 세계적인 대도시 런던에 비하면 작은 마을과도 같은 같은 곳이었다. 






디킨스는 채텀에서 보낸 시간을 회상하며 "평생 행복한 꿈처럼 간직해야 할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그때 그 기억은 디킨스의 삶을 가장 풍요롭게 만들고 평온하게 만든 때였다. "그 옛날의 아주 사소한 사건, 작은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기억할 만큼 그에게 어린 시절은 뇌리에 깊이 세겨진 '행복' 그 자체였다. 어쩌면 그가 10대에 맞이했던 전성기가 아니었을까. 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디킨스는 소설가로서 가장 중요한 '세상에 대한 관찰력'을 키웠다고 한다. "모든 이를 관찰하고 온갖 것에 주목했으며, 가만히 응시하다가 뜻밖의 것을 발견하는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 물론, "경련 발작도 있었고 워낙 병약했던 탓에 다른 소년들과 어울려 뛰놀지 못했지만, 책을 읽다 고개를 들어 다른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소년"이었다고 그때를 추억하곤 했었다. 


그가 소년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두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글에 등장인물의 이야기로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소설 속 소년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소년의 감정이 마냥 어른의 시선에서 관찰해서는 알 수 없는 미묘한 표현과 '천진함'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작품들 가운데 디킨스 본인이 직접 가장 아끼는 작품이며,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고까지 말했던《데이비드 코퍼필드》의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소설 초반부에 느낀 행복과 디킨스 자신이 느낀 행복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이렇듯 그에게 채텀에서 보낸 시간은 뇌에 깊이 각인되었고 행복을 되짚을 때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보물이며 그가 이야기를 만들 때 도움을 받았던 기억이었다. 하지만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시련을 겪었던 코퍼필드처럼. 디킨스도 채텀을 떠나 런던에 오면서 그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인생의 큰 행복을 맛본 소년 디킨스를 맞이한 건 화려한 대영제국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런던에 돌아왔을 때, 느꼈던 감정은 어땠을까. 꼬불꼬불 좁은 골목과 사람들로 가득 찬 공동주택, 밤낮으로 매연을 뿜어내는 공장, 수많은 인파로 뒤덮인 부두까지. 화려한 조명 뒤, 가난이란 어둠이 깊이 드리워진 슬럼가였다. 살고 싶은 도시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하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그곳에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디킨스의 가족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찾아온 소시민들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이해하기에 디킨스는 어렸다. 



찰스 디킨스가 이곳에 살았음을 증명하는 기념판

하지만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빚을 져서 집안 경제사정이 급격히 안 좋아지고 만다. 런던은 다른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외롭고 지치게 만들고, 어려움과 계속 직면하게 되는 차가운 도시였다. 그러니 디킨스의 눈에 비친 런던은 어떤 곳에서도 더 나은 삶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런던에 다시 왔을 때, 살았던 집은 디킨스 뮤지엄과 전혀 다른 곳이었다. 집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작고 어두운 방이었고, 생계를 위해 거리로 나서지 않으면 하루 살기도 벅찼을 냉혹한 현실이 어린 디킨스의 삶에 엄습했다. 




11살에 디킨스는 구두약 공장에서 일을 시작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구두약 공장은 어른이 된 후 런던 곳곳을 산책했던 "디킨스가 절대로 산책하러 가지 않는 곳인 템즈 강변의 올드 헝거포드 스테어스"에 있었다. 공장에서 "주 6일 동안 하루에 10시간씩 구두약 통에 상표 붙이는 일을 한주에 6실링 받으며" 일을 했던 그때는 디킨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절망적인 시기였다. 좀처럼 그때 그 시절 이야기하기를 피했다고 한다. 채텀에서 있었던 일에 비해서 공장에서 일했던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남겨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예 생활이 시작됐던 곳으로 도저히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아서"라며 올드 헝거포드 스테어스 거리를 가지 않는 이유에서 알 수 있듯, 11살 구두약 공장에서 보낸 기억은 디킨스에게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다. 



"학식 있는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희망이 내 가슴속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꼈고, 어떤 말로도 내 영혼 속에 숨겨놓은 고뇌를 표현할 수 없었다."



그가 소설가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바로 그때 그는 금기에 가까웠던 기억을 꺼낸다. 그 기억이 만든 소설이,《데이비드 코퍼필드》다. 데이비드가 와인 병에 라벨을 붙이던 곳. 더럽고 황폐하며, 사람이 사는 곳인지 쥐가 사는 곳인지 알 수 없는 '머드 스톤 엔드 그린비 창고'. 그곳의 묘사와 데이비드의 심정을 읽다 보면, 디킨스에게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서 그를 어른이 된 그를 괴롭게 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행복했던 데이비드처럼 디킨스 역시 소설을 즐겨 읽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던 때에서 소년 노동자라는 현실은 절망 그 자체였을 것이다. 배움의 기회가 사라지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보통의 가난한 아이들과 다름없었다. 일을 해야 했고, 공부한다는 것, 학교에 다닌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많은 사람들이 찰스 디킨스의 최고의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맛보았던 자신의 소년 시절을 솔직하게 풀어냈기 때문이 아닐까. 그가 런던에 오기 전 채텀에서 보냈던 행복한 추억과 구두약 공장에서 보낸 절망의 시간을 거의 동시에 경험했기 때문에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반된 두 기억으로 자신의 소설 세계를 만들어냈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디킨스의 행복과 트라우마를 모두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리고 훌륭하게 소설을 완성함으로써 그가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워졌다는 것까지 알 수 있어서 더더욱 의미 있는 작품이다. 


《데이비드 코퍼필드》는 앞서 발표한 《올리버 트위스트》보다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런던의 빈민가에서 온갖 시련을 겪는 올리버보다 행복과 불행을 오가는 시련 속에서 단단해지는 데이비드의 이야기가 더 좋았다. 흥미로운 서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행복 뒤에 온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려는 데이비드의 의지가 소설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지는 마흔이 되어서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그가 자신과 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또 다른 어린 디킨스에게 보내는 응원과 격려로 바뀌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그가 이 소설을 가리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할 만큼 특별한 작품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직면한 어려운 상황에 매몰되어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을 놓치지 않았다. 이 점이 인간으로서 찰스 디킨스를 존경하는 이유다. 그는 자신 앞에 펼쳐진 힘든 상황과 거리를 두면서 살기보다 그 삶을 면밀하게 관찰하며 인생을 배울 수 있는 터전으로 삼았다. 그에게 '런던의 슬럼가' 그에게 이전에 어떤 소설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기 위한 보물단지로 여겼다. 자신의 기억에 있는 또 다른 행복 단지와 함께. 각박한 현실을 외면하고, 몽상 속 세계에 들어서지 않았다. 그는 채텀에서 세상을 바라보았듯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슬럼가를 관찰했다. 그리고 그 결과물을 글과 이야기로 세상에 소개했다. 


대영제국, 산업혁명 뒤 그림자진 현실에 디킨스는 지속적인 관심을 보였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가난한 사람들 특히 가난에 누구보다 취약한 어린아이와 여자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쏟았다. 디킨스는 소설로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선물했고, '신빈민법'이라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정부를 향해 경각심을 가지라는 글을 신문으로 거침없이 밝혔다. 어린아이가 신빈민법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돕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부모님이 런던을 찾아왔을 때 꿈꾸던 더 나은 삶을 만드는 데 기여한다. 찰스 디킨스라는 개인의 삶도, 빅토리아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삶도 함께 바꾸는 그런 소설가가 되었다. 




런던 박물관에 나란히 놓인 찰스 디킨스와 빅토리아 여왕의 블라인드



찰스 디킨스에 대하여 빅토리아 여왕은 이렇게 말했다. 


    

"디킨스는 빈민들을 사랑했고, 그들에게 가장 깊은 연민을 느낀 사람이었다."



내가 찰스 디킨스 뮤지엄에 찾아간 이유와 그 답을 모두 발견한 채 뮤지엄을 나섰다. 그가 어린 시절에 겪었던 절망을 삶 전체에서 어떻게 극복했는지 알고 싶었고, 보다 많은 어린아이들이 절망이 아닌 희망을 꿈꾸도록 이야기를 만들었던 이야기꾼 찰스 디킨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고 싶었다. 이곳에서 드라마틱한 감정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생생하게 그가 살았던 공간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기분 좋은 여운을 안고서 찰스 디킨스 뮤지엄의 문을 열었다. 

 


그때 기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다 내가 그때는 몰라서 가지 못한 곳을 하나 발견했다. 

다시 런던에 간다면, 그가 자주 갔던 카페, 이름마저 '찰스 디킨스 커피하우스'인 그곳에 가봐야겠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가 정신없이 구두공장에서 일했던 유년시절을 떠올려보고, 치열하게 글을 써야 했던 디킨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여유를 가지고 싶다. 






참고 문헌

데이비드 코퍼필드, 찰스 디킨스, 살림 (2018)

문학의 도시, 런던, 엘로이지 밀러 · 샘 조디슨, 올댓북스 (2018)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빌브라이슨, 21세기 북스 (2016)

천가지 역사를 품은 살아 있는 도시, 런던 이야기, 미셸 리, 추수밭 (2015)

홀리데이 로맨스, 찰스 디킨스, B612 북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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