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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de Apr 30. 2024

발리에서 학교 다닐래?

작년에 발리 세 달 살이를 계획하며 아이에게 물었다.

"엄마랑 세 달 동안 발리에 가서 지내는 거 어때?"

"아빠는요?"

"아빠는 회사 때문에 집에 있고, 엄마랑 너랑 둘만.

  싫어?"

"아니, 좋아!"

예상한 대로 아이는 들뜬 표정으로 그러자고 했다.

"근데 발리에 가려면 00유치원은 그만둬야 해. 친구들하고도 헤어져야 하고."

"괜찮아."

"발리 가서 새로운 유치원에도 다녀야 하는데?"

"유치원?"

"응. 근데 거기는 외국이라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영어로만 대화해야 해. 괜찮겠어?"

"응. 괜찮아."

"진짜 가고 싶어?"

"가고 싶어!"

아이는 원래도 기관에 잘 적응을 하는 편이었다.

한 번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가기 싫다고

떼를 써본 적이 없다.

물론 종종 유치원 안 가고 집에 있고 싶다느니

오늘만 안 가고 싶다는 둥 그런 말을 할 때도 있었지만 안된다고 하면 바로 수긍하는 그런 아이였다.

4살 때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어린이집을 옮겨야했는데, 그때도 똑같은 반응이었다.

‘뭐, 까짓거 가보지 뭐.‘ 이런 쿨내 진동하는 아우라가 느껴진달까?

유치원에 처음 갔을 때도 그저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름대로 적응해나갔다.

올해 겨울에 아이에게 넌지시 물어본 적이 있다.

"지금 친한 친구들과 같은 반 되고 싶어? 엄마가 유치원 선생님께 말씀드려 볼까?"

아주 잠깐 고민하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괜찮아. 말 안 해도 돼."

이게 아이의 가장 큰 장점이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다.

새로운 환경에 떨어졌을 때 겁먹지 않고, 자기 살 길을찾아 나가는 것.

아이가 분명 발리에 가서도 잘 적응할 거라고 믿고    있었기에 선뜻 세 달 살기를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도 발리에서의 생활을 기대하는 게

분명해보였다.

작년에 처음 이야기를 꺼내고 얼마 안 됐을 때

아이는 이미 유치원 친구들은 물론 선생님께도

자기는 발리에 가서 유치원을 다닐 거라고 다 말하고 다녔단다.

가끔 말을 심하게 안 들을 때, 이렇게 하면 단둘이 발리에 가서 생활할 수 없다고 하면

"이제 잘 할게요. 발리 가고 싶어요."라고 애원했다.

아이가 의젓한 모습을 보이면, 엄마랑 둘이 발리가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칭찬했다.

무엇보다 아이는 영어 공부에도 드디어 의욕을 보이기시작했다.

발리 사전답사를 다녀오고 학교를 알아보는 동시에, 아이의 영어학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유치원을 다니는 것과 초등학교 1학년으로 입학해서 수업을 듣는 건 천지차이 아닌가!

아무리 적응을 잘 하는 아이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돼야 수업도 따라가고 친구도 사귈 테니

남은 몇 달 동안 바짝 영어 듣기와 말하기 능력을 끌어올려야만 했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긴 했어도,

단어 몇 개 알파벳 몇 개 아는 정도였고

발음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가끔 영어 노래나 챈트를 하는데 정말 외계어가 따로 없었다.

일단 내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

제일 간단한 건 사실 내가 영어 문장을 말하면 아이가 따라 하고 그걸 반복 연습하는 것이지만

이미 아이에게 숫자와 한글을 가르치며 깨달은 사실은아이는 엄마 말을 따라서 반복하는 걸

무척이나 싫어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책을 활용해서 input의 양을 늘려보기로 했다.

영어 동화책은 이전에도 몇 번 읽어주기도 했는데,

어휘 수준이 책마다 천차만별이고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일일이 고르고 구매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라 그냥 묻고 따지지도 않고

유명한 Oxford Reading Tree를 선택했다.

종이책은 전체 다 구매하려면 100만 원이 넘어서

애초에 포기하고 스마트 기기로 읽을 수 있는 연간

이용권을 구입했다.

‘리딩엔'이라는 업체를 이용했는데, 기대보다 대만족 중이다. 종이책보다 훨씬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습

방법이었다. 일단 Oxford Reading Tree 자체가

단계별로 단어와 문장 구조가 반복되며

점차 심화되도록 설계되어 있어서

자연스럽게 같은 단어와 문장 구조를

여러 번 학습할 수 있었다.

책마다 어휘 학습, 듣기, 읽기, 말하기, wrap-up(철자,내용 이해 확인)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어휘 학습에서 여러 권에 걸쳐 반복적으로 나오는

단어를 계속 보다보니 자연스럽게 암기가 되었다.

듣기는 원어민 발음으로 책 내용을 들을 수 있는데,

이때 내용을 듣고 그림을 보며 이 책이 무슨 내용인지 추측하게 해본다.

그리고 읽기 파트에서 내가 직접 문장들을 읽어주고

그림을 보며 질문도 하고 영어로 대화하는 연습을 한다. 물론 아이의 대답은 'Yes' 또는 'No,' 그리고 단어 정도로 한정되어 있지만, 시키지 않아도 엄마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한다.

사실 제일 만족스러웠던 부분은 말하기 파트이다.

책에 나온 문장 세 개를 원어민 발음을 듣고 녹음을

하는 기능이다. 아이의 발화를 분석해서 발음이 명확한 부분은 초록색으로, 보통은 노란색, 발음이 안 좋은 부분은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그리고 전부 초록색이면 "Excellent" 또는 "Great."가 나오는데 별로이면

“Good"이 나온다. 이게 아이의 승부욕을 자극했는지 전부 초록색이 될 때까지 반복하고 또 반복한다. 다 초록색이고 노란색이 한 개 정도만 돼도 내가 듣기엔 충분히 괜찮은 발음인데도 그 노란색을 없애겠다고 몇 번을 다시 한다. 어떨 때는 계속해도 안되니까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그만할래."라고 말하기도 한다.

솔찬히 약이 오르나 보다.


평일에, 축구하는 날 하루 빼고, 4일 동안 대략 30분 정도씩 하고 있다. 이전에 읽은 책을 복습하고, 새로운 책을 한 권 나가는 루틴이다. 1단계라 단어 개수가     많지 않아서 어른의 눈에는 별 내용이 없는데도

아이는 재밌어한다. 그리고 꾸준히 하다 보니 확실히 발음이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Oxford Reading Tree와 함께 화상 영어도 시작했다.

예전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VIP KIDS에서 수업권을 구매했다.

처음에는 다른 성별, 연령의 원어민 선생님을 골라서 수업을 들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이를 편안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선생님을 만나 계속 그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아이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프리토킹을 하는 건 아니고

정해진 교재를 가지고 기초적인 단어와 문장을 배우는것부터 시작했다. 어떤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교재

내용만 말하고 아이는 그걸 따라서 말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수업을 진행했다면

이 선생님은 교재에는 없는 다양한 질문을 하며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셨다. 물론 아이가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런 Input들이 계속해서 축적되다 어느 날 발화로 발현되는 거니까.

처음에는 내가 옆에서 지켜보며 선생님의 지시를

아이에게 우리말로 다시 전달하기도 했는데

아이가 엄마가 옆에 있으면 신경 쓰여서 못하겠다고 해서 아이가 수업하는 동안 나는 방에 들어가 있기로 했다. 아무래도 내가 옆에 있으면 자꾸 아이에게

잔소리하고 수업에 끼어들게 되는데

내가 없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이와 선생님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며 수업을 진행해 나갈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그게 장기적으로는 더 좋을 것 같았다. 

아이 말로는 처음에는 진짜 하나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아주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단다.

여전히 선생님이 질문을 해도 그저 선생님의 말을 따라 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수업 중간중간 아이와 선생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걸보면 나름의 의사소통을 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화상 영어를 하면 갑자기 입이 트이고 문장을 말하기 시작하는 걸 기대하면 굉장히 실망이 크고

돈이 아까울 수밖에 없다.

나도 처음에는 돈이 아깝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평일에 하원하고 와서 수업을 할 때는

아이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그래서 주말 아침으로

수업을 변경했다.)

중간중간 노래를 따라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전혀 집중하지 않고 딴짓하는 모습에 속이 터졌다.

선생님의 간단한 질문에도 아무 말도 못 하거나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모습도 못마땅했다.

제대로 영어를 배워본 적이 없는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아이의 요청대로 수업 시간 동안 거리를 둔 게

신의 한 수였다.

멀리서 지켜보니,

달팽이처럼 느릿느릿,

하지만 꾸준히 나아지고 있었다.

얼마 전에 아이와 영어 공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고 보니 엄마랑 영어책도 읽고, 미국인 선생님이랑 영어수업도 하고, 유치원에서도 영어수업을 듣네?"

"그래서 힘들어."

아이가 힘들다고 하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아이를 너무 몰아붙였나 싶고, 행여 영어 자체에 아니 그보다도 공부 자체에 질려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세 개 다 하려니까 너무 힘들어?"

"힘들지 그럼."

"그럼 하나를 뺄까? 유치원 수업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니까 남겨두고, 엄마랑 책 읽는 것만 하고 미국인 선생님이랑 수업하는 걸 없앨까?"

"아니야. 괜찮아."

"힘들다면서? 엄마는 네가 힘들어서 영어 자체에 질려서 하기 싫어질까 봐 걱정되는데?"

"내가 힘들다고 그랬지, 언제 하기 싫다고 그랬어?!"

"힘들지만, 그래도 다 할 수 있을 거 같아?"

"응. 다 할 수 있어."

종종 엄마와 영어책 읽는 것도, 화상 영어도 조금 귀찮아할 때도 있지만 아직은 재밌다고 해서

발리 가기 전까지 꾸준히 끌고 나갈 볼 생각이다.

눈에 띄는 성장을 기대하면 자꾸 아이를 몰아붙이게 되니까 그저 아이가 발리에 가서 조금 더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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