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 없이 쉬는 날 오후였다. 전날 밤 비행을 마치고 새벽녘에 집에 들어와 아침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모처럼 단잠에 빠져 오후 늦게 일어났다.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더니 오히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암막 커튼 틈새로 한낮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방안을 밝히고 있었다. 나는 커튼을 살짝 열어 재끼고는 뜨거운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올리고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고된 비행 후 긴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열어보는 핸드폰은 마치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가 다시 세상에 연결되는 느낌마저 들게 했다. 나는 물이 끓는 동안 밀린 메시지들을 하나씩 확인할 요량이었다.
찬찬히 내려보는데 오랜만에 연락 온 언니가 안부를 묻는 메시지가 있었다. 카타르 항공에 다니는 언니라서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언니가 한국에 올 때마다 한 번씩 만나고는 했다. 만나는 게 뜸할 때면 가끔 전화로라도 서로의 비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카타르 항공에서 주로 만나는 인도 승객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불을 뿜었다. 신분 제도가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도인들에게 승무원은 하녀와 다름 없어 비행하다 보면 서러운 순간이 많다는 게 요지였다. 얼마 전에는 인도 꼬마에게 말을 걸었더니 꼬마가 굉장히 도도한 표정으로 자기한테 말 걸지 말고 내니(유모)한테 말하라고 했단다. 그에 반해 너는 질서 있고 예의 바른 일본인 승객을 응대한다며 부럽다고 말했다. 그러면 나 역시 불을 뿜듯이 항변했는데, 분명 앞에서 다이조부라고 했는데도 뒤에서 컴플레인이 들어오는 그 뒷통수 때리는 심정을 아냐며 되받아쳤다.
그렇게 비행하는 두 처자의 수다란 끝이 없었다. 나는 마침 어제 비행에서 있었던 일을 누군가에게 마구 쏟아놓고 싶은 마음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언니는 고맙게도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한국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말버릇처럼 또 꺼내며, 하루빨리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가고 싶다는 투정을 부렸다. 나는 언니가 말은 그렇게 해도 그만두지 못할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건성으로 들으며 끓는 물을 머그잔에 옮겨 닮았다. 티백을 넣고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는 동안에도 언니의 불만은 계속 이어졌다. 그러다 조금 지쳤는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한국은 좀 어때?” 나는 별 감흥 없이 대답했다. “여전하지 뭐.”
“아! 맞다. 나 얼마 전에 북한 승객이 단체로 탔었다?”
그간 비행하며 수없이 많은 인종과 국적의 승객을 만나왔지만 북한 승객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어떻게? 무슨 노선에서?” 언니는 조금 전과는 다른 내 태도를 재미있어하며 말을 이었다.
“도하에서 베이징으로 가는 노선이었어. 베이징에서 평양까지는 기차로 갈 수 있잖아. 그래서 탄 것 같아. 처음에는 나도 중국 승객들인 줄 알았어. 그래서 영어로 서비스했지. 근데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은 거야. 그래서 같이 서비스 진행하고 있던 한국인 승무원 후배한테 말했지. 중국인인데, 영어 잘 못 알아들으시는 것 같으니까 메뉴카드 가지고 오라고. 아, 물론 한국어로. 그랬더니 갑자기 그 사람들이 “조선말! 조선말!” 이러는 거야. 그래서 조금 당황해서 “네? 네, 한국인 승무원입니다. 한국 분이시구나...”이랬더니 또 “남조선 처녀네?” 이러더라고. 그때 북한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지. 나중에 착륙하고서 재킷 입은 거 보니까 김정일 배지도 달고 있더라고.”
“와, 신기하다. 그래서 북한 사람들은 어때? 별다른 일은 없었어?”
“응. 북한 사람이라고 하면 뭔가 무섭고 그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다들 정겨웠어. 나보고 대학은 나왔냐고 묻는 거야.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앞 좌석의 다른 사람이 대학을 나왔으니까 저렇게 영어를 잘하지! 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시더니 자기들끼리 껄껄 웃고. 그냥 우리 평범한 한국 아저씨들 같았거든. 그런데 마지막에는 좀 뭉클하기까지 했어.”
“어떤 점에서?”
“착륙하고서 다들 내릴 준비 하고 서 있을 때, 그 사람들이랑 내가 가까이 있었거든. 그 사람들도 내가 신기한지 흘낏흘낏 쳐다보기도 하고, 나도 멀뚱히 가만히 서 있기도 민망해서 한 마디 던졌거든. 저도 평양냉면 먹어 보고 싶어요! 라고.
그랬더니 한 아저씨가 어떻게 했는지 알아? 양손을 주먹 쥔 상태에서 새끼손가락만을 핀 채로, 두 새끼손가락을 맞닿게 하더니 활짝 웃으면서 말하는 거야.
“하나 되면 먹으러 오시라우” 이렇게. 근데 참 신기한건, 나는 지금까지 통일이나 북한에 대해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아니 사실 별 생각도 없었어. 근데 그 말을 듣는데 괜히 울컥하는 거야. 살짝 눈물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재빨리 “네. 하나 되면 먹으러 갈게요.”라고 대답하고 말았어.
통일이란 단어를 안 쓰고 하나 되면, 이라고 말하는 거 있지……. 내릴 때는 다들 “남조선 처녀 잘 지내라우”라고 한마디씩 하면서 내렸어. 승무원 생활 오래 하니까 이렇게 북한 승객도 만나는 날도 다 있네. 하여튼 그랬어.”
나는 노트북 앞에 앉아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터넷 첫 페이지를 열었다. 마침 ‘제21차 남북이산가족상봉’ 기사가 눈에 띄었다. 2015년 이후로 다시 이루어진 이산가족상봉으로 이번 2018년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신청한 수는 약 5만 7천 명이고, 경쟁률은 570대 1이라고 했다. 기사에는 95세 할아버지가 이산가족상봉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하자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의 사진이 첨부돼 있었다.
핸드폰으로 언니의 음성이 먹먹하게 들려왔고, 노트북 화면에는 할아버지의 주름진 얼굴이 떠 있었다. 내 앞에는 김이 피어오르는 따뜻한 차가 놓여 있었고, 나는 언니가 묘사한 북한 아저씨의 손짓을 상상했다. 양손을 주먹 쥔 상태에서 새끼손가락만을 핀 채로, 두 새끼손가락을 맞닿게 하는.
나는 낮게 웃으며 말했다.
“응. 언니. 그러니까 언니도 승무원 그만두고 한국 올 생각 하지 마.”
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중동에서의 생활이 얼마나 삭막한지, 이곳에서 카레와 치킨만 먹다 노처녀로 늙어 죽게 생겼다면서 다시 구구절절 한탄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뜨거운 물로 달구어진 머그잔에 손을 감싸고는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따뜻한 기운이 손끝부터 올라오며 내게 무력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언니는 코로나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수 개월 째 비행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힘들다고 투정부리던 비행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비행기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우리 승객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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