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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재 Mar 05. 2018

스웨덴이라면, Fika

여유. 그리고 선택이 존중되는 곳_ Fika와 Vegan

Fika

스웨덴어로 '커피, 커피를 마시다, 커피나 차와 함께 쿠키를 먹다, 가족이나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일에서 벗어나 잠시 쉬다' 정도의 의미를 가진 단어인 fika.
 
 구글 번역기에 넣으면 coffee라 번역되지만, 이는 fika가 갖는 의미를 너무나도 쉽고 정 없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처음 Lund University에 도착해서 교환학생을 위한 기초 스웨덴어 수업을 들었는데, 농담인지 진담인지 스웨덴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단어가 fika라고 했다. 이 단어를 알면 스웨덴에서 친구를 사귀는 첫 단계를 배운 거라고. 
 
 당시에는 과장한 말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스웨덴에 온 지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은 스웨덴 사람들이 피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조금 알 것 같다.
 
 첫 교환학생 멘토 모임에서도, 네이션(교내 동아리와 비슷한 학생 단체) 활동 소개 모임에서도, 언어 교환 language cafe에서도 한 편에는 언제나 fika를 위한 커피나 차, 쿠키가 준비되어 있었다. 
 
  '커피 한 잔 할래?'라고 말하는 것보다, '피카 할래?'라고 말하는 것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스웨덴 사람들에게 일상에서의 fika는, 그들의 삶에 녹아 있는 잠깐의 여유와 쉼표를 의미하지 않나 생각이 든다. 

Ebba's skafferi. 건물 틈으로 들어온 햇살과 창문에 비친 파란 하늘이 예쁘다.

북유럽의 겨울은 흐리고, 길고, 어둡다. 룬드에 오고부터 사람이 날씨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 실감하고 있다.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 생각해 보면 하늘이 파랗고 햇빛이 나고 있었다. 첫 2주 동안은 거짓말 안 하고 해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스웨덴의 해는 대체 어떻게 생겼나 구경 좀 해보자'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햇빛이 나는 날은 가방과 카메라를 들고 꼭 시내에 나서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어느 카페에서 fika를 할까 하다가, 교환학생 멘토인 스웨덴 친구가 소개해준 Ebba's skafferi에 왔다. skafferi는 스웨덴어로 Pantry(식료품 저장소)와 비슷한 의미이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니 Hej!라는 인사와 미소가 나를 반겨주었다. 룬드대학교 교내 자치 단체 중 하나인 'Kristianstads Nation'이 적힌 후드티를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룬드대학교에 다니는 아르바이트생인가 보다. 


스웨덴 크로나(SEK) 단위의 메뉴판. 스웨덴의 물가를 생각하면 정말 착한 가격이다 :)

오늘 내가 맛볼 메뉴는 우유 대신 오틀리가 들어간 카페라테와  비건용  사과케이크다.  오틀리는 귀리로 만든 음료인데, 우유와 비슷한 듯 다른 듯 고소한 맛이 난다. 나는 사실 비건은 아니지만, 스웨덴에 온 이후로는 비건용 음식이나 음료를 자주 먹는다. 오히려 맛이 더 좋을 때도 있고, 더 건강해지는 기분이라서 :)

다양한 홈메이드 케이크들. 아래 칸은 모두 Vegan& Gluten free 케이크다.

스웨덴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놀란 것 중 하나는, 생각보다 스웨덴 사회에 비건(Vegan)이 많고, 그들의 Food Preference가 언제 어디서든 존중된다는 것이었다. (비건은 달걀이나 유제품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이다.)
 
 어느 식당이나 카페를 가도 비건용 메뉴가 따로 준비되어 있었고, 교내 공식 행사나 학생 자치 행사에서도 음식이 제공되기 이전에 Food Preference를 꼭 확인했다. 나와 가장 친한 스웨덴 친구도 비건인데, 왜 채식을 선택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단 동물을 아끼는 마음. 그리고 난 굳이 고기를 먹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
 
 내가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는 선택이지만, 그 선택이 사회 속에서 존중받지 못할 이유는 절대 없었다. 
 

커피와 차를 따르는 곳. 역시 우유와 오틀리가 함께 준비되어 있다.

많은 스웨덴 카페에서 '그냥 커피(Kaffe)'나 '차(Te)'를 시키면 카운터에서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쌓여 있는 컵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알아서 따라 마시면 된다! (물론 제조 음료는 따로 만들어 줌) 처음에는 당황했었는데, 이제는 익숙하게 예쁜 컵을 고른다. 하지만 오늘은 바로 내려주는 커피가 먹고 싶어서, 오틀리가 들어간 카페라테를 시켰다.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 내부다. 커피와 케이크를 들고 구석자리에 앉으면 하루 종일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다. 서로 다른 크기의 액자와 테이블, 의자들도 이곳에 모여 있으니 조화롭게 어울렸다. 

오틀리가 들어간 카페라테는 내가 알던 카페라테와 별다르지 않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리고 기대했던 사과 케이크는 정말 맛있었다. 달콤하고 찐득한, 비건 음식이 다 이렇다면 난 비건으로 살겠다 하는 마음이 잠깐 들 법도 한 그런 맛. 아무래도 다른 케이크도 먹어보러 조만간 다시 올 것 같다.  

다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시간이 지나니 비어 있는 테이블이 거의 다 찼다. 다들 날씨가 좋아서 밖에 나왔나 보다. 스웨덴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조금은 듣고 싶었는데, 스웨덴어를 몰라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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