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연재 Apr 08. 2018

당연한 듯 지워진 것들

기우뚱하는 게 고장이 아닙니다_스웨덴 버스의 유모차 전용석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있다. 나는 한 번은 그것을 우습게도, 대학 친구들과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첫 차를 타면서 깨달았었다. 내게는 모두가 아직 자고 있을 것만 같던 새벽 5시,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보다 한적한 새벽길을 청소하는 분들이 있었다. 매일 걸어 다니는 거리가 깨끗한 이유는, 길에 놓여 있는 쓰레기통이 흘러넘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보지 않는 동안 치워졌기 때문일 것이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들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생각하기 힘들었다.


접이식 좌석이 있는 버스 중앙. 아기가 유모차에 앉아서 빵을 먹고 있다. ㅎㅎ

룬드에서 버스를 타면, 두 번에 한 번 정도는 유모차에 탄 아기를 볼 수 있다. 가끔은 심지어 여러 대의 유모차가 타기도 한다. 유모차를 끄는 승객이 있으면 기사는 버스 가운데의 큰 문을 열어준다. (스웨덴의 시내버스는 앞, 가운데, 뒤에 문이 하나씩 있다.) 최근 서울의 신식 시내버스가 그렇듯, 버스의 중앙은 접이식 좌석과 함께 텅 비어 있다. 이는 바로 유모차를 끌거나, 휠체어를 탄 승객들을 위한 공간이다.

휠체어와 유모차 모양의 기호가 표시된 버스.  이 기호는 기차에서도 볼 수 있다.

스웨덴의 버스에는 또 한 가지 독특한 사실이 있는데, 정류장에서 가끔 한쪽으로 기우뚱한다. 이는 고장이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바로 유모차나 휠체어가 쉽게 승하차할 수 있도록 경사를 만들어 주는 거다.


버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모차. 정류장에서 한쪽으로 기우는 버스. 스웨덴에 도착한 순간부터 항상 '보였기' 때문에, 나에게도 그냥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아기가 유모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

내가 한국에서 유모차를 끌고 버스에 탄 승객을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 매일같이 시내버스를 타고 서울을 돌아다녔지만, 한 번도 못 봤던 것 같다. 그렇다면 유모차를 끌고 이동해야만 하는, 자가용이 없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던 것일까?


아마 아예 멀리 나가지 않거나, 당연하게도 택시를 탔을 것 같다. 나는 이런 당연한 사실을 눈에 보이지 않아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끌어 본 적이 없어서, 유모차와 함께 버스를 타려는 승객을 본 적이 없어서.


당장 한국에 유모차 전용석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 빽빽이 사람들이 들어찬 서울시내버스에 유모차가 탄 광경은 사실 상상하기 어렵다.


그저, 이렇게 당연하게 지워진 것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두렵다.


최근 한국의 시내버스나 지하철에서는 초기 임산부를 배려하기 위해 임산부 전용 좌석을 비워두자는 캠페인을 계속하고 있다. 이전에는 지워졌던 그들의 존재가, 사회로부터 좀 더 배려받게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는 노력. 그 노력이 모두를 '당연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감과 댓글로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

행복한 하루 되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이라면, Fika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