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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연재 Apr 25. 2018

스웨덴 화장실은 성별이 없다?

남녀평등을 넘어_성별로 특징짓지 않으려는 노력

주말에 가까운 독일로 여행을 가려고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있었다. 개인 정보를 적는 페이지에서 주어진 질문은 3가지 정도 이유로 나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What gender do you self- identify with? (당신은 스스로를 어떤 성으로 인지합니까?)


- 젠더를 그냥 묻지 않고 'self-identify'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

- 답변을 2개가 아닌, 3개도 아닌 5개 중 선택할 수 있던 것.

- Female이 Male보다 위에 놓인 것.


한국에서 남/녀의 이분법적 성 관념 속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내게는, 꽤나 낯선 질문이었다.

(UNDP, 2017)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를 포함한 북유럽 국가들은 매년 높은 성평등 지수를 자랑한다. 성 평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경제참여, 교육받을 기회, 정치 참여, 보건환경조건' 등을 대개 포함한다. 위의 자료는 UNDP(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에서 2017년에 발표한 것인데, 스웨덴은 특히 여성 국회의원 비율에서 1위(43.6%)를 차지했다. 


나는 이번 학기에 룬드대학교에서 사회학 전공과목으로'Gender, Social change, and Modernity in Sweden'을 수강하고 있다. 스웨덴에서 젠더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했고, 현대에 어떤 사회적 영향을 주고 있는지 배우는 수업이다.


스웨덴을 비롯한 북유럽 국가들에서 여성의 높은 경제활동 참가율이 보이는 것은, 북유럽의 복지모델과 깊은 연관이 있다. 사회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북유럽식 복지국가 모델에서는, 국민들의 완전고용을 전제하기 때문에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뛰어들도록 하는 것이 국가적 목표가 되어 왔다. 이는 이미 20세기 초반부터 권장되었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는 그들의 권위와 목소리를 키워 주었다. 여성들이 출산, 육아와 경제활동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정책들이 만들어졌고, 계속해서 발전해 왔다. 

스웨덴의 화장실은 성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복지 정책이나 수치가 아니더라도, 내가 지난 3개월 동안 느낀 스웨덴은 '성별로서 누군가를 특징짓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 재미있는 것은 스웨덴 화장실에는 성별이 없다는 것이다. 모든 화장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험상 시내와 학교 건물 중 80퍼센트 정도의 화장실이 공용이었다. 모든 칸이 한국의 여자화장실처럼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남성용 용변기가 따로 있지도 않다.

스웨덴의 평범한 화장실 내부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룬드대학교 기숙사는 모두 혼성이라는 것이다. 개인 방이 주어지고, 주방을 공유하는 코리도(corridor) 형식의 기숙사에서는 성별 구분이 없다. 나는 지금 호주, 미국, 일본, 싱가포르에서 온 남자인 친구 4명, 미국에서 온 여자인 친구 1명과 살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기숙사 혼성'에 당황했었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했던 내가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 친구가 어떤 성별인지를 보기 전에,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보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룬드대학교에서 열리고 있는 젠더학 석사과정

스웨덴은 이미 세계 최상위권의 성평등지수를 가지고 있지만, 아직도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룬드대학교에서는 젠더를 다루는 정규 학부가 따로 존재하고, 석사과정도 마련되어 있다. 물론 관련 교양과목도 많이 개설되어 있다. 수업에서는 현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눈다. 이러한 과정이 대학 내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성평등에 대한 사회 전체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지속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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