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용 감성>
뭐니 뭐니 해도 시간을 죽이는 것만큼 큰 사치는 없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그 기분 좋은 사치를 누리러 영화관에 간다. 팀 버튼의 ‘배트맨’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나온 슈퍼 히어로 영화 중 보지 않은, 아니 한 번만 본 작품이 없을 정도로 슈퍼 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
흔히들 남성이 슈퍼 히어로 영화에 열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제 슈퍼 히어로 영화는 남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900만을 돌파한 ‘아이언맨 3’의 국내 관객 성비는 여성이 더 높았다. 초반에는 남성이 주로 봤지만 점점 여성이 흥행을 주도했다고 한다. 별을 세는 단위만큼 돈을 써서 영화를 찍고, 홍보하고, 놀랍게도 그 몇 배를 벌어들이는 슈퍼 히어로 영화. 도대체 우리는 왜 슈퍼 히어로 영화에 이렇게나 열광할까.
만들어진 신
살기 좋은 세상에 영웅은 필요 없다. 1938년에 최초의 슈퍼 히어로인 슈퍼맨이 탄생하는데, 당시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고 있었다. 대중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을 초월하는 슈퍼맨의 능력에 열광했다. 슈퍼맨은 시대가 바라던 영웅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부활한 슈퍼맨은 시차 적응에 실패했다. 영화는 슈퍼맨이 아닌, 그의 부재로 인한 세상의 고통에 집중했고 결국 종교 영화가 됐다. 신이 등장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고대 그리스에서나 먹히던 방법 아닌가.
초능력 없는 슈퍼 히어로
슈퍼맨이 슈퍼수저를 물고 태어났다면 (초능력이 없어) 평범한 금수저가 비극을 통해 슈퍼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도 있다. 바로 배트맨이다. 배트맨의 재력이 아무리 비범하다 해도 돈이 초능력은 아니다. 물론 돈으로 초능력을 살 수는 있겠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는 비현실적인 판타지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를 현실로 내동댕이치는 비극이 그들을 매력 있게 만든다. 배트맨은 스스로 살인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가 된 것도 모자라 척추까지 부러진다. 토르는 망치를 잃고, 아이언맨의 슈트는 고장이 난다. 현실이라면 이야기는 가차 없이 끝날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비극을 딛고 일어서는 영웅을 통해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
만들어진 꿈
1995년 미국 정신 의학회는 우리말 화병(Hwa-byung)을 정식 병명으로 채택했다. 가슴속에 화가 응어리지는 이 병의 치료법은 다양하다. 술로 삭히거나, 뒤에서 욕하거나, 더 약한 사람한테 갑질하거나. 예컨대, 상사 욕을 안주로 폭탄주를 마시며 종업원한테 반말하는 방법이 있다. 아니면 조금 점잖게 상상을 통해 푸는 방법도 있다. 이 상상이 절실해지면 꿈이라고도 부른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퇴사를 꿈꾼다.
일상이 가혹할 때 우리를 지탱하는 것이 바로 꿈이다. 현실에서 이루기 힘든 일을 꿈에 그리면 가슴속 응어리가 잠시나마 풀어지기도 한다. 슈퍼 히어로 영화는 만들어진 꿈이다. 관객은 일상에서 맛볼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얻기 위해 영화 속으로 탈출한다. 슈퍼 히어로가 진짜 구원하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다.
영웅의 아침
이미 부서진 몸을 일으켜 온 힘을 다해 중력을 거스른다. 1분 1초가 아까운데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무너질 것 같은 몸과 마음의 고통 속에 오늘의 전투를 위한 슈트를 몸에 걸친다. 우리는 그렇게 매일 아침 출근한다. 슈퍼 히어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것 정도?
고작 영화 한 편 보려고 쳐도 돈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배트맨에게서 배웠다. 비록 땅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이지만 꿈만큼은 비범할 수 있지 않을까. 당신의 ‘슈퍼’한 꿈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