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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의 생각노트 Dec 10. 2021

예상치 못한 글쓰기

김영진 작가의 첫 번째 에세이 '예상치 못한 성수동' 을 읽고 


신혼여행 뒤 나는 남편과의 첫 점심을 요리한 뒤 나는 다음 미팅 전에 식탁에 앉아 고구마와 커피를 마시면서 우리 결혼식의 사회자였던 김영진 작가의 단편 에세이집 '예상치 못한 성수동'을 펼쳤다.


지난 토요일에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 부부는 나의 집에서 부모님과 식사를 마친 뒤 결혼식에 많은 도움을 준 영진, 주희 부부가 참여하는 성수동 디뮤지엄의 북페어를 방문할 계획이었다. 계획과는 달리 저녁을 먹고 나니 일주일간 여행한 여독에 지친 우리의 얼굴을 본 부모님이 밤 라이드 할 겸 선뜻 라이드를 해주시겠다고 해서 겨우 나설 수 있었다.

 


성수동 디뮤지엄에서 있었던 북페어는 여태껏 내가 봐온 북페어 중에 가장 힙 혹은 신세대스럽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책이 이렇게 신세대스러울 수 있다니. 보통 책을 생각하면 조금 시대에는 뒤떨어진 옛것을 고집하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움이 느껴지는 패션과 헤어스타일, 겉표지만 봐도 재미없어 보이는 책들을 무작위로 올려놓고 의욕 없이 부스에 앉아있는 모습을 떠올리지만 이번 북페어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북페어장으로 입장하면 각 부스에 설치된 1자 조명들 외엔 따로 조명이 없어 마치 입장하는 내가 유명 가수 뮤직비디오나 패션쇼장을 입장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과장되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 시간이 없이 짧게 눈으로 스쳐 지나갔지만 각 부스마다 작가들의 독특한 개성에 맞춰 잘 꾸며졌을 뿐만이 아니라 책의 내용과 관련된 굿즈를 직접 제작해서 판매하는데 웬만한 콘서트 굿즈 퀄리티만큼 좋을 뿐만 아니라 보는 내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아직도 다른 부스를 충분히 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북페어 종료 15분 전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영진, 주희 부부의 슈퍼소닉 스튜디오(supersonic Studio) 부스를 찾기 위해 눈보다 발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성이 강한 작가들 사이에서도 이 부부를 찾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부스는 차분한 책과 독립출판이라는 얼굴 뒤에 격렬한 콘서트 행사 부스 같은 에너제틱함이 멀리서도 느껴졌다. 부스에는 그들의 여행 중에 찍은 사진으로 만든 엽서, 레이블 스티커, 라플(raffle) 티켓 등이 있었고, 두 사람은 슈퍼소닉 스튜디오 관계자용 티셔츠를 사이좋게 입고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들이 준비한 모든 것들을 눈으로 보고 나는 마음으로 응원했다. 지금까지 이렇게 멋있게 성장해왔는데 나중엔 얼마나 더 멋있어 질까. 더 잘되길.


그렇게 진열된 상품들 사이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영진 오빠의 '예상치 못한 성수동'이라는 작은 책이었는데 책이라기엔 굉장히 얇은 콘서트 프로그램 같아 부담 없이 집어 들었다. 종이 장을 넘겨보니 이 책의 폰트와 글 간격, 종이 재질, 그리고 레이아웃이 우선 마음에 들었고, 직감적으로 정성스럽게 준비된 이 책을 보면서 배울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 마침 '그게 마지막 남은 한 권이야'라는 주희 언니의 한마디가 마치 캐나다 블랙프라이데이 때 '라스트 찬스!'라며 외치는 직원의 목소리처럼 내 귀에서 메아리쳤다. 우유부단한 내가 여느 때 보다 빨리 '내가 살게!'라고 외치고 정말 예상치 못하게 마지막 '예상치 못한 성수동' 한 권과 엽서 하나, 라플 티켓에서 뽑은 유명 독일 젤리 (ㅋㅋ)와 자체 제작 엽서를 들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잘 산건가라는 고민 하나 없이 이 책을 통해 영진 오빠에게서 뭘 배울 수 있을까 하는 행복한 생각에 마음이 참 기뻤다.



뭐라고 썼을지 궁금한 나머지 나는 집으로 향하는 차안에 앉는 순간 책을 폈다. 읽는 내내 이 책을 산 것에 대해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면서 연거푸 '참 잘 썼네' 라며 남편이 들릴 듯 말 듯 혼자 중얼거렸다. 뭐 내가 쓴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뿌듯하고 기쁜 건지.


에세이 하나만 읽고 입으로 떠드는 나와 달리 남편은 그다음 날 빠르게 에세이집을 읽더니 무엇이 좋았는지 빠르게 브리핑을 하더니 후기를 남겨야겠다고 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내가 더 빨리 읽어서 먼저 후기를 남겨야겠다'라고는 했지만 신혼여행 뒤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오늘에서야 오빠의 책은 내 가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오늘에서야 부모님이 가족 여행을 떠나 비어있는 우리 집에 나와 남편이 첫 점심을 만들어 먹고 그는 미팅을 나는 식탁에서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성수동'을 가방에서 꺼내 읽어 내려갔다.


이 책의 많은 내용을 써 내려갈 수 있지만 간단한 요약은 이렇다:


김영진 작가의 첫 데뷔 작품이 참 김영진스러워서 좋았는데 이유는 저자와 책이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어 읽는 내내 이질감이 들지 않았던 점이 오랜만에 글자를 읽는 게 지루하지 않았다. 저자를 직접 알고 책을 접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김영진 작가의 이번 에세이는 글을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글을 '통해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가 더 적절한 것 같다.


김영진 작가의 실제 목소리는 성발라(성시경) 저리 가라 할 만큼 젠틀하고 부드럽지만, 목소리는 일부 일뿐 작가 본인도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에 강한 편이기에 (1) 대부분 그는 상대가 원하는 포인트를 잘 이해해서 그 사람의 마음을 위트 있게 표현하는 능력과 (2) 남들이 당연하다고 여겨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당연하지 안 게 '재해석' 해내는 능력이 있다. 이런 능력들이 글 속에서도 보이지만 가장 중요하게는 그의 디테일함이 지나치게 질척거리지 않고 잘 정리가 되어있기 때문에 글을 읽다 지루해서 하품을 하는 불상사는 겪지 않았다.  


김영진 작가는 참 생각이 많은 사람은 확실했다. 이 짧은 5편의 에세이에서도 그의 끊임없는 고민들이 - 상황, 글,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 느껴졌는데 특별히 그의 적절한 단어 선택이 목표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짧고 간결했지만 솔직했기에 위로가 되었다.



"확인해서 글로 남겨야지 생각했지만, 그 궁금증이 지속되지 않아 결국 안 쓰게 됐다. 억지로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24)
"모든 게 다행이었다. 계획대로 됐다면, 내가 예상할 수 있는 성수동이었다면, 분명 산책자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간주 점프를 하듯 목표물들을 찾아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썼을 것이다." (25)
"(...) 이 작업에 대한 강박이 심했다. 벽화는 죄가 없는데. 다행히 초반부터 예상을 완전히 비껴간 성수동이 나를 계획 없이 걷게 하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면서 기억에 남는 경험들을 하게 했다." (25)



따뜻한 고구마와 커피를 마시며 김영진 작가의 에세이 집을 읽었고, 그 다음 날 에세이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남편과 전날 사온 우유 크림 도넛을 나는 홍차, 그는 커피와 먹었다. 그가 미팅을 하는 사이 나는 인슐린의 노예가 되어 또 다른 빵 한 조각을 몰래 꺼내 먹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던 나를 쉬는 시간에 잠시 나온 남편이 짓궂은 얼굴로 다른 냄새가 난다며 내 주위를 킁킁대고 있다.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반응할 틈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예상치 못한 글쓰기를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김영진, 맹주희 작가 정보:

*에코백페커스: https://www.instagram.com/ecobagpackers/

*슈퍼소닉스튜디오: https://www.instagram.com/supersonicstudiokr/

*김영진작가의 인디밴드 아티스트 리뷰 (인디스모먼트): https://www.instagram.com/indiesmoment/


121021

きにょうび

Seou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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