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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의 생각노트 Feb 10. 2022

디저트 나라 일본에서 홈베이킹을 도전하다

일본에 사는 신혼부부의 베이킹 도전기 

나는 원래 빵을 좋아한다. 


아토피와 소화기능이 유달리 약한 것 때문에 멀리하기도 했고, 한창 운동할 때는 많이 절제했다. 그래도 캐나다에서 나름 살았다고 유럽 여행을 하는 33일 동안은 밥 없이 갓 구운 빵으로 살아낸 적도 있었고, 캐나다 엣 부모님을 뵈러 갈 때면 아빠가 아침 일찍 갓 구워진 빵을 사다 주셔서 빵과 엄마가 해준 야채로 3끼를 때운 적도 있다 (캐나다에서 한국 올 때 아빠가 기념품처럼 캐나다산 잡곡빵을 챙겨준 적도 많다). 돌아보니 항상 밀가루와의 전쟁이었지만 대부분 많은 양의 설탕이 조미된 게 아니라면 식사용 빵들과는 시기만 적절하게 조율해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아 시댁에서 며칠 보냈을 때는 시어머니께서 손수 식빵을 구워주셨다. 시아버지께서 식빵을 좋아하시다 보니 호두와 크렌베리가 듬뿍 들어간 건강빵을 구워주셨다. 어머니가 구워주신 빵은 버터와 기름 없이 호밀과 강력분, 그리고 견과류로 발효시킨 담백한 빵이었다. 먹기 전에 살짝 오븐에 구워서 먹으면 견과류의 고소함과 크렌베리의 달달함 때문에 한 끼 대용으로도 좋은 빵이었다. 상큼한  샐러드와 에그 스크램블, 살짝 구워낸 어머니표 식빵으로 시댁에서는 항상 풍성한 아침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가 사는 일본의 도쿄 구에도 빵집이 많다. 

(왼) 베이커리에서 산 버터향 가득한 크루아상 (오) 편의점에서 산 에클레어

많고 많은 빵집 중에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빵집은 설탕을 하나도 쓰지 않는다는 아티잔(Artisan) 빵집이다. 일본에는 식빵을 포함해 대부분의 빵들이 설탕과 버터가 많이 첨가되고 종류도 다양하다. 크로와상도 달달한 크림빵도 나는 좋아하지만, 이 빵집의 단순한 빵들이 더 좋다. 사워도우, 치아바타, 바게트, 그레인 브레드, 루스틱 등 디저트라기보다 식사대용으로 먹을 수 있는 빵들이 전부이고, 그나마 이 몇 안 되는 종류에서 단맛을 조금 내기 위해 다른 종류의 견과류나 초코가 함유된 빵들이 있기는 하나 그래도 우리 부부는 (아니 나는) 심심한 맛 속 고소한 풍미를 가진 사워도우를 가장 좋아한다. 이렇게 빵을 한 두 번 사 먹으면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어른들이 하지 않았나, 우리도 직접 구워 먹어 보자며 우리 두 사람은 빵순이, 빵돌이들의 로망인 아침 일찍 구운 따뜻한 빵과 에그 스크램블을 먹는 상상을 우리 멋대로 했다.  


빵을 직접 썰어주는 사장님
빵집 내부

베이킹에 앞서 나는 '베이킹 일지'를 쓰기로 했다.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알아볼 수 있으면 된다.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 온도에 대해 구구절절 써 내려갈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데이터가 될 만한 요소들, 예를 들어, 언제, 어떤 빵을, 어떻게 반죽했는지, 밀가루는 어떤 종류를 썼으며 비율은 어땠는지 (아주 정확한 계량이 아니더라도), 발효된 모양은 어땠는지 등 짧게나마 베이킹에 대한 기록을 해놓으면 얼마나 자주 빵을 구웠는지도 볼 수 있지만 스스로 돌아보면서 어떻게 하면 전보다 나은 빵을 만들 수 있을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 


나처럼 빵을 구워보려는 사람들이나 구워보고 싶은데 집에서 굽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들에게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도쿄에서의 첫 사워도우 기록을 공유해보고 싶었다. 


2022년 2월 8일

나의 첫 사워도우는 1 주일 된 르방 (levain, 사워도우 스타터) '도쿄 1'로 만들 계획이다. 스타터는 일본집에 오자마자 집에 있는 다목적 밀가루 (중략분이라고 한다) 1  물 1 양으로 12시간마다 키우면 된다. 여기서 발효를 도와주는 주변 효소들이 르방에 잘 침투할 수 있게 르방을 보관하는 통의 뚜껑을 헐겁게 닫거나 헝겊으로 입구를 막아줘 공기가 통하게 해 주는 게 중요하다. 르방을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호밀가루를 사용해야 잘 자라기도 하고 풍미가 좋다고 했는데 당시 집에 있던 밀가루가 팬케이크를 만들 때 쓰는 중력분 밖에 없어 중력분을 사용했다.  


그렇게 르방을 키운 지 1주일이 조금 넘은 시기에 아마존에서 제빵용 밀가루가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빵을 구성하는 다양한 종류의 밀가루들의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잘 모른다). 예를 들어 사워도우를 만들 때 왜 호밀과 강력분이 어떤 비율로 섞야야 하는지, 각자가 빵에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고소한 향을 더해준다거나, 빵의 점성을 더 만들어준다거나) 이해하지 못했다. 아마존 재팬에서 밀가루를 구입했을 당시 열심히 호밀가루를 찾다가 정작 사기는 제빵용 '밀'가루를 구매했지만 다행히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여서 반죽할 때 크게 애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 단백질 함량이 높은 밀가루는 입문자들에게 많이 선호되는데 이유는 반죽 시에 모양을 잡기도 쉽고, 부풀기도 잘 부풀어 보통 우리가 사 먹는 쫄깃한 맛을 더해주기 때문에 그렇다.


반죽 재료:

* 1주일간 키운 르방/사워도우 스타터 '도쿄 1' 50그램

* 르방 녹일 때 쓰일 물 50그램 

* 100% 강력분 150 그램

* 모든 가루 재료를 섞는데 쓰일 물 150 그램

* 소금 조금

* 참깨와 해바라기씨 


반죽과 반죽귀 따뜻한 창가옆에 세워둔 반죽

호밀 없이 100% 강력분으로 구워야 했기 때문에 참깨와 해바라기씨를 넣어 빵의 식감과 영양을 살려보았다. 컴퓨터 앞에서 쉬지 않고 타이핑만 하는 하루가 지루해질 때쯤 재료들을 하나씩 섞어서 반죽했다. 총 4번 정도의 30분에 한 번씩 도우를 늘려주고 공기를 넣어준 뒤 따뜻한 햇볕이 드는 창가 옆에 무슨 전시물처럼 도우를 앉혀두었다. 그렇게 몇 번의 반죽을 마치고 난 뒤 저녁이 되어서 마지막 성형에 들어갔다. 나는 빵틀 대신 빵틀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 반찬통에 유산지를 깔고 그 위에 밀가루와 납장귀리를 깔아 두었다. 그리고 반죽의 마지막 발효를 실온 해 해 둔 뒤에 잠을 청했다. 


2022년 2월 9일 

다음날 도우가 나의 기대와는 달리 아기 엉덩이처럼 봉긋 솟아 올라와있는 게 아니라 우울한 슬라임처럼 축 처져 있었다. 쳐져있는 반죽을 보니 뭔가 불안했지만, 용사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는 게 아닌가. 오븐을 미리 데워놓고 구우면 괜찮기를 두 손 모아 바랬다. 


오븐도 다 일본어로 쓰여 있어서 도무지 이 많은 기능들을 다 알 수가 없다. "オーブン (오븐)"이라고 표기  버튼을 꾹 누르면 시간과 온도를 지정할 수 있으니 지금은 그걸로 충분하다.


15분에, 250도.


이렇게 높은 화력에 빵이 마르지 않을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지만 넓은 오븐의 가장자리에 물을 조금씩 부어서 오븐 내에서 수증기가 생길 수 있게 해 놓았다. 첫 15분이 지나고 노릇하게 구워진 빵이 아직은 다 완성되지 않아 보여 추가로 15분을 같은 온도에 구웠다. 


고소한 향과 겉만 봤을 땐 잘 나온 것 같은데, 이미 오븐에서 나왔을 때부터 뭔가가 잘못됨을 나는 직감했다.


윤기나지 않는 표면과 크게 부풀지 않은 빵의 단면

우선, 빵의 표면에 윤기가 없었다. 홈베이킹하는 사람들의 말로는 과발효되었을때 표면의 윤기가 떨어진다고 했다. 아직 판단은 이르기에 단면을 썰어 보았다. 기공은 살아있지만, 부피는 생각보다 크게 부풀지 않았고, 너무 높은 온도의 탓인지 속이 충분하게 다 익지 않았다. 칼로 빵을 반으로 갈라 보았을 때는 찐득한 점성이 칼의 단면에 묻어났다. 아무래도 과발효가 맞는 것 같다. 빵의 표면은 참깨와 해바라기씨 덕분에 고소했지만 하루 지난 바게트만큼이나 단단해서 먹는데 조심해야 했다. 아직 충분하게 문제점을 찾지 못해서, 빵을 사진으로 담아 인스타그램 커뮤니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의견들은 이러했다:


- 반죽이 늘어져있었다면 과발효의 가능성이 높다. 오버나이트 발효를 실온이 아닌 냉장고에서 해야 함.

- 르방은 최소 2주는 키워야 한다 (1주일간 키운 르방은 너무 약하다).


여러 번의 시도를 통해 언젠가는 빵을 선물로 줄 수 있을 만한 실력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빵에 대한 식견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2022-02-10

東京、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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