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거리 한복판에서 열리는 파머스 마켓에서 느낀 캐나다인의 기록
우리가 살고 있는 도쿄 집 근처에는 매주 주말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열린다.
한국으로 치면 재래시장이나 주말장터 같은 곳인데 도쿄에는 이런 장터가 흔치 않다. 어렸을 때를 떠올려보면 한국 아파트 단지 사이에 펼쳐진 파란 장막 아래의 주말장터 나의 놀이터인 마냥 엄마와 구경 갔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다양한 색깔의 농작물을 구경하면서 재래시장만의 끈끈한 정을 느끼는 즐거움이 청년이 되어서도 여전했기에 나이가 들어서도 엄마와 한국 전역의 민속5일장들을 신나게 탐방했다.
바쁜 도심 속 소음 은 싫지만 시장 아주머니들이 목에 핏대를 서가며 가격을 흥정하는 목소리는 친근하다. 발 빠르게 장을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앞, 뒤, 그리고 양옆으로 힘없이 밀쳐지는 나지만 그럼에도 꿋꿋하게 진열된 싱싱한 재료들을 구경하면서 평소에는 잘 보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재료들을 엄마에게 물어가면서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고, 길 중간에 앉아 계시는 할머니들과 인사하며 필요한 재료를 그분들의 넉넉함과 함께 사는 것도 좋아한다.
장을 보러 갈 땐 장을 보는 순간만이 아니라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추억을 떠올려보면 엄마와 나는 장보기를 마치면 근처 장터 식당에서 장터 음식을 사 먹거나 갓 나온 떡과 커피를 한입 가득 먹으면서 속도 가득 채웠지만 마음도 가득 채워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양손 가득 산 재료로 어떤 반찬을 만들지, 이전에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때는 어떤 음식을 많이 먹었는지, 엄마가 느끼기에 캐나다와 한국의 시장 분위기는 뭐가 다른지 등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엄마와의 추억을 쌓을 수 있었다.
시장을 떠올리면 따뜻한 추억이 많기 때문에 타지를 가면 가끔씩 오는 허기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그 동네의 가장 활발한 시장을 찾게 된다. 20대에 홀로 떠난 유럽여행 중에도 항상 그 지역의 가장 활발한 장터를 찾아 가족과 친구들에게 사다 줄 선물을 고르고, 장터 근처에서 로컬 주민들이 자주 가는 음식점을 찾아 육체의 허기를 채웠다.
시장은 육체적, 정신적 허기를 채워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외에 것들도 알려준다. 음식과 식재료에 반영된 그 지역 사람들의 특징도 읽게 되고, 사람들 얼굴에서 드러나는 전반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지역 주민들이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인터넷에 찾아보고, 읽어보고, 상상해보면서 근처 식당에서 그 음식을 맞이하면 단순히 눈으로 보고 입으로 그 음식을 음미하는 단계를 넘어 그 나라의 문화와 어제보다 오늘 더 가까워짐을 느낀다.
독특하게도 일본은 캐나다, 한국, 유럽과는 다르게 수산물 시장은 많지만 농산물을 판매하는 재래시장은 쉽게 보이질 않는다. 문화 특성상 소량의 음식을 먹는 문화여서 그런지 좋아하는 음식을 다량으로 구매해서 먹는 지난 나의 문화와는 달리 무언가를 다량으로 구매한다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마트만 가더라도 1/2, 1/4로 조각 나 있는 과일과 야채가 즐비하고, 가격도 만만치가 않다. 사이즈에 한번 한숨, 가격에 한번 한숨을 내쉬어보면서 언어만 되면 원하는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들에게 직접 주문을 넣고 싶었지만 아직까지 제한적인 정보와 언어로는 그렇게 하기가 쉽지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아예 서칭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오타 도매시장(Ota Market)이라는 곳이 있다. 꽃과 농수산물을 도매로 판매하는 곳이라 그나마 내가 찾는 시장과 가장 근접해 보이지만 거리 상 조금 멀다 보니 아직 가볼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시장에 대한 나의 극성스러운 부분을 남편 덕분에 알게 된 도시 속 파머스 마켓으로 해소하기 위해 매주 주말 우리는 산책 겸 이곳을 가고 있다. 물론 기본 마트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야채나 과일보다 약 1.5배는 비싸기 때문에 양손 가득 두둑 히 과일과 야채를 사 올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곳 나름의 차별된 제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에 포기가 어렵다.
집에서 15분 정도를 걸으면 저 멀리 하얀 천막 밑에 진열된 판매상들이 보인다. 진열된 상품중에는 유럽 바게트가 꽂혀져 있을 것 같은 바구니에 사람 다리만큼 길쭉한 가지를 매주 본다. 이 가지의 농부는 자기가 손수 키운 농작물에 대한 자부심이 유난히 남달라서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환한 얼굴로 이 가지는 그냥 씹어먹어도 과일처럼 달다며 언제 한번 꼭 먹어보라고 권유한다. 어떤 농부는 사람이 마치 누워있는 것 같이 보이는 (혹은 인삼 같은) 대형 마(소바에 갈아먹는 마)를 진열대 위에 올려두고 조용히 지나가는 고객들을 맞이한다. 엄청난 크기의 마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하면 작은 미소와 함께 마를 좋아하는지를 먼저 물은 뒤 마 판매에 들어간다. 또 어떤 사람은 농작물 대신 음식과 관련된 동화책과 소설책을 아기자기하게 진열해놓고 요리에 관심이 많은 어른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 본인의 책을 권한다.
이 많은 판매자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은 검은 머리 일본인이 아닌 옅은 갈색머리에 신장이 180cm가 훌쩍 넘어 보이는 한 외국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인사하며 자기 물건을 팔 때 이 사람은 묵묵히 구석에서 일본식 식칼을 다듬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정갈하게 그동안 그가 만든 칼들이 진열되어있었는데 남편 말로는 예전부터 이 마켓에 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일본 사람들 보다도 더 일본 사람 같은 이 외국인에게 일본은 어떤 나라인지 호기심이 생겼고, 언젠가 저 사람과 얘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과장된 표현일 수도 있지만 파머스 마켓을 걷다 보면 평소 도시 사람들에게서는 얻을 수 없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온몸으로 자연의 섭리를 배운 농부들은 자연과 소통할 줄 아는 소통의 달인들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이 사람과 소통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좋은 농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땅에 흘린 땀이 맺은 열매인 걸까, 단단하고 건강한 몸으로부터 비롯된 여유로운 미소와 굵은 목소리가 왠지 모르게 나와 같이 매일 전자 기기 앞에 앉아있는 사람보다 훨씬 생동감이 넘치게 느껴졌고 굳이 비교하자면 내가 무채색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마켓의 또 한 가지 묘미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리는 핸드크래프트(손으로 제작한 제품) 마켓이다. 아기자기한 손으로 직접 만든 그릇, 액세서리, 공예품들이 질서 정연하게 진열되어있었다. 그 많은 제품들 중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건 한 대학생이 손으로 직접 만든 유리 플레이트였다. 반 다이아몬드 모양의 이 플레이트는 불투명한 흰색 바닥에 오묘한 문향의 유리가 그 바닥을 둘러싸고 있어 빛을 받으면 빛을 받은 표면뿐만이 아니라 바닥에도 여러 색을 비추는 것이 매우 입체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의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액세서리를 올려놓기에 적합한 플레이트 같아 맘에 들었 고, 결혼 후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구매하는 물건으로도 좋은 소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소비라는 것이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고 때와 장소에 따라 그 의미가 쉽게 변하는 유기적인 가치이지만 이 플레이트를 구매함으로 인해 제작한 사람의 순수함과 열정을 매일 아침 플레이트 위아래로 비친 빛과 여러 색의 그림자를 통해 느끼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좋은 소비 같다.
어느 나라를 가던지 시장은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좋은 추억들도 만들어 준다. 플레이트 하나와 근처에 진열된 식사빵 한 봉지를 덜렁 들고 다시 집으로 향하는 우리였지만 시장에서 함께 보낸 시간으로 인해 타지에서 느꼈던 허기진 마음 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일본의 따뜻함으로 채워진 것 같아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는 주말이었다.
2022-03-05
東京、日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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