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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화 Jun 27. 2021

난생 첫 히치하이킹

스웨덴 우메오



갑자기 걱정이 나를 엄습해왔다. 잠자리가 없다는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이제껏 직접 숙소를 구해야 했던 적이 한번도 없어서, 그저 원할때 아담한 호텔에 가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염병할 도시같으니. 염병할 룩셈부르크"
여드름쟁이는 어울리지 않게 상소리까지 하더니 다시 터덜거리며 걸어갔다. 
지저분한 중앙역 부근에 있는 여인숙을 몇 군데 들러봤지만 모두 만원이었다. 외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다른 숙소도 살펴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그렇게 조금 가다보니 어느덧 도시 외곽 고속도로였다.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확신은 없었지만 벨기에까지 자동차를 얻어타기로 했다. 벨기에는 좀더 큰 나라이니 숙소 문제가 여기만큼 심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는 쏜살같이 달아나는 자동차들과 수평선 너머로 사라져가는 해를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장장 1시간 40분동안 고속도로변에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서있었다. 고물 시트로엥 한 대가 멈춰섰을 때는 히치하이크를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1장 '북유럽을 가다'중 


낯선 곳에서 혼자가 되면 두가지 기분의 갈랫길에 선다. 첫째는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고 둘째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2009년 10월의 한 오후 핀란드 바사(Vaasa)에서 스웨덴 우메오(Umeo)로 가는 배를 탔다. 북유럽의 밤은 일찍 찾아왔다. 이미 깜깜해진 우메오에서 내렸을 때,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려움의 길로 들어섰다. 푸른 작업복을 입고 있던 페리 직원은 '여기 버스 안 다녀요, 3km는 걸어나가야 하는데. 30분 정도 걸릴거에요'라고 말했다. 냉랭하게 들렸다. 그럼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야 하냐고 묻자 '여기는 길이 하나뿐'이라며 손가락으로 어둠 속을 가리켰다.   


배낭을 둘러메고 MP3 음악을 켜고 씩씩하게 걷기를 30분, 내가 서있는 곳은 차가운 길바닥 위였다. 왼쪽은 검은 바다, 오른쪽은 검은 숲이었다. 겁이 났다. 자동차가 나타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세워보려 했지만, 쌩하니 지나갈 뿐이었다. 조금 더 걸어보았다. 더이상 음악이 귀에 들리지 않아 귀에서 이어폰을 뺐다. "무섭다"고 입밖으로 소리를 내어 말했다. 한번 감정을 인정하고 나면 더 빨리, 더 깊이 그 감정 속으로 휘말린다. 나는 점점 더 무서워졌다. 


목적지,타야할 버스 번호, 언니네 전화번호는 알고 있었지만, 내가 서있는 곳이 어디쯤인지,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핸드폰은 터지지 않고, 전화를 빌릴만한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더이상 앞으로 걷지 못하고 뱅뱅 돌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드디어 차가 한대 멈춰 섰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또 내 생애 최고 속도의 영어로 '우메오 시티에 가려는데 버스 타는 곳을 찾을 수가 없어요 항구부터 30분 넘게 걸어왔어요' 라고 말했다.


그 가족은 나를 선뜻 태워줬다. 사실 내가 서있던 곳은 버스정류장에서 차로 1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5분쯤 더 걸었다면 마을을 찾을 수 있었을 터였다. 시간은 겨우 오후 7시였다. 손목 시계가 핀란드 시간에 맞춰져 있어 저녁 8시가 넘은 줄 알았다. 나는 인터넷에서 확인한 7시 25분 우메오 시티행 124번 버스에 빠르지도 늦지도 않게 정확히 올랐다. 우메오 시티센터에는 언니가 마중나와 있었다. 


그 밤 그 외딴길이 가끔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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