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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화 Jun 27. 2021

태풍과 함께 한 보라카이 여행 (3)

2014년 겨울

보라카이에는 한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게 있다. 그건 세계 어디를 가도, 특히나 우리 회사 앞에 엄청나게 많은 중국인이다. 중국 항공사들도 취항하고 있지만 중국 여행객들이 안보인다. 안보인다기 보단 안들린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큰 볼륨의 중국어가 한국에서보다 덜 들린다는 점은 좋은 것 같다. 일본인도 드물다. 그런데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 게 한국인 관광객들인 것 같다. 보라카이 여행객의 대다수가 한국인이다. 나머지는 서양인과 필리핀인들. 헤난 가든 리조트는 모르긴 몰라도 한국인 고객이 80%이상 되는 것 같다.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우리말을 했다. 로비에 나가보니 스마트폰 와이파이 잡으러 내려온 한국인들이 소파를 메우고 있다.


보라카이 사람들은 친절하고 한국말을 곧잘 한다. '우의 사세요' '머리 땋아요' '예뻐 사랑해' 등 물론 호객언어들이다. 한국인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모르겠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곳이고, 그 관광객의 절대 다수가 한국인이다 보니 친절을 베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선가 한국 백화점에서 중국인들에게 베푸는 친절이 떠올랐다. 


리조트 프런트에 체크인을 하는데 직원이 내게 영어로 물었다.

-몇시에 체크아웃 하실건가요?

=음.. 몇시까지 나가야 하는데요?

-체크 아웃! 체크 아웃!

=아직 모르겠어요. 몇시 전에 나가면 되나요?

-후... 몇시에 체크 아웃 하실거냐고요..... 12시 전에는 나가셔야 합니다. (미소)


내가 보기엔 영어를 못알아 듣는건 그 직원이었다.  제대로 들으려는 자세가 안되어 있었다. 한국인은 영어를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했다. 식당에서도 제대로 묻거나 듣지 않고 지레짐작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예쁜 직원의 미소가 불편했다.


공항 앞에서 심카드를 판 아줌마는 내게 보라카이에 들어가면 LTE가 잘될거라고 했다. 하지만 보라카이에선 3G도 됐다 안됐다 그랬다. 배터리도 없어 그냥 꺼두기로 했다. 이렇게 된 김에 여기 있는 며칠만이라도 스마트폰으로 연결된 세계와 단절하고 싶었다. 간혹 뭘 찾아보려고 하면 네이버가 절실한 순간도 있었지만.


유럽 여행했던 2010년이 떠올랐다. 핸드폰도 노트북도 없이 75일간 뽈뽈거리며 다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한 도시에 닿으면 투어리스트 센터에 찾아가 지도를 받았다. 호스텔 컴퓨터로 다음 여정지의 숙소를 찾아 이메일로 예약을 했고, 그게 안되면 도착해서 찾았다. 어딜 가든 어떤 날이든 내 한몸 뉘일 곳은 있었다. 발길 닿는 대로 식당에 찾아가 맛있으면 감사하고, 맛없으면 퉤! 여긴 핀란드 교환학교 학생식당 로찌만도 못한 맛이군! 하면 그만이었다.


화이트 비치를 걷다가 액티비티 장사하는 '알란 펀 투어' 가게를 마주쳤다. 여기저기 섬을 다니며 스노클링도 하고 바베큐도 먹는 '호핑hopping' 투어를 하고 싶었다. 한국 여행사에 비싸게 주고 하는건 싫고 현지인들에게 호객 당하는건 조금 겁이 났던 차에 간판 번듯이 건 이곳이 눈에 들어왔다. 가격도 괜찮았다. 점심을 포함한 호핑투어에 1인당 800페소. 다음날 아침으로 예약을 했다. 하지만 보라카이엔 3일째 비가 내리고 있었다.


뉴이어이브였던 이날 보라카이에서는 태풍 '장미'가 떠나지 않았다. 비가 와도 물놀이는 해야했다. 날이 흐리니 다행히 얼굴 까매질 걱정은 없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형광 주황색 튜브를 사서 물에 뛰어들었다. 모래를 쌓고 'JUNG 2015 보라카이'라고 조각했다. 원래는 '정시스터즈 2015 화이팅 보라카이'라고 쓰고 싶었는데 맨손으로는 영 무리였다. 옆에는 장난감 삽과 물통을 든 필리피노들이 멋드러지게 모래성을 쌓고 있었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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