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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화 Jul 03. 2021

아이슬란드 (1) 여행인데 갑자기 경제 공부

2017년


동생과 떠난 두번째 여행이자, 핀란드에서의 마지막 여행. 동생은 점심쯤 비행기 태워 보내고 운동 다녀와서 한숨 잔 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처음에 생각했던 아이슬란드 여행 일정은 4박6일. 핀에어보다 저렴한 아이슬란드에어를 타는데, 레이캬비크에서 헬싱키로 돌아오는 비행기가 새벽 1시라, 4박5일이 아닌 6일이었다. 그런데 나의 손꾸락이 마법을 부렸는지 결제하고 나서 도착한 메일을 보니, 5박7일 일정.... 띠로리. 일정을 바꾸려면 1인당 100유로. 비행기표가 한장에 150유로인데 100유로를 내고 바꿀수는 없었다. 딴데 정신 판 나의 잘못이라 어디 불평할데도 없었다. 그렇다면 마음을 크게 먹고, 여유롭게 통으로 일주일을 놀자! 어차피 한국은 추석 연휴라 날 찾지 않을거야....(는 아직도 덜 당한 외거노비의 착각이었다)

레이캬비크행 비행기를 타자마자 잠이 들었다. 이상하게 비행기를 탈 때마다 이륙도 하기 전에 잠이 들고, 이륙한뒤 30분~한시간쯤 지나서 깬다. 마이클 부스라는 사람이 쓴 'The almost nearly perfect people'이라는 책을 펴들었다. 덴마크 여자랑 결혼해 코펜하겐에 사는 이 영국 남자가,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으로 불리는 다섯개 나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쓴 책인데 '핀란드'부분만 읽고 내버려 뒀었다. '아이슬란드' 장을 펼쳤다.

2008년 금융위기 때 바스라진 아이슬란드 경제에서 이야기가 시작됐다. 마이클 무어가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 에서 아이슬란드로 날아갔던 장면이 생각났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때, 공격적이고 무책임한 대출과 투자로 아이슬란드 경제를 폭삭 망하게 한 은행장들이 모두 실형을 받았다. 미국에서도 경제인들은 하나도 처벌을 안받았다. 아이슬란드가 유일했다. 당시 아이슬란드 3대 은행장이 모두 남자였고, 국무총리도 남자였다. 국무총리도 '은행에 대한 관리감독을 엉망으로 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불려나갔다(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총리, 3대 은행장에 모두 여성이 선출됐다. 이후로 아이슬란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냈고, 이후 경제가 제법 되살아나고 있다고 했다. 여성 리더와 부패 척결의 인과관계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북유럽의 조그만 섬나라인줄로만 알았던 아이슬란드가 미국발 세계금융위기에 그토록 크게 휘청거린 사실이 의아했었다.

책을 읽다보니 궁금증이 어느정도 풀렸다. 2003~2008년 사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은 최대 140억달러까지 빚을 졌었다. GDP의 10배에 달하는 액수다. 호황일 때 아이슬란드 사람들이 욕심을 부렸던 것이다. 어업도 잘 되고, 관광도 잘 되고 그러면서 경제가 성장하자 금융도 같이 컸다. 인구가 30만명 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금융이 잘되려니, 돈을 서로 빌리고 빌려줘야 했다. 외국 부동산에도 겁나게 투자를 해댔다. 일본과 스위스에서도 대출을 받아 그 동네 빌딩을 샀다. 한 축구 클럽은 모든 용품을 덴마크의 고급 백화점에서 사다 날랐고, 택시를 부르는 것처럼 제트기를 예약했다. 아이슬란드 은행 런던지점은 런던 내셔널 히스토리 뮤지엄을 대관해 파티를 열었단다. 은행은 주주들에게 돈을 더 빌려줘서 자기네 은행 주식을 더 사도록 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 시점에는 아이슬란드의 부채 규모가 전체 GDP의 8.5배 였다. 자료마다 숫자가 좀 다르지만, 최대치는 63억파운드. 아이슬란드인 1인당 21만 파운드(3억원)를 갚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정부는 당연히 여력이 안됐고, 시장에 풀린 크로나를 있는 힘껏 끌어모으고도 4억파운드를 IMF와 다른 나라에서 빌려야 했다. 이자율이 18% 로 뛰었고, 주가는 77% 떨어졌다. 물가가 한해 20% 넘게 올랐고, 크로나의 가치는 절반으로 떨어졌다가, 나중에는 80%로 바닥을 쳤다. 경제가 무너진 것이 커뮤니티 붕괴로 이어질까봐 조마조마한 날들이 이어졌다. 시위대가 국회에 불을 질렀고, 범죄가 급증했다. 새 정부는 사회민주주의 연합정당으로 구성됐다. 세금을 올리고, 정부 지출은 30% 줄였다. 심지어 해외에 나가있는 아이슬란드 공관도 축소했다. (다만 크로나 가격이 급락한 덕에 관광객이 급증했던 것이 한줄기 희망이 됐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레이캬비크에 도착했다. 헬싱키에서 3시간반이 걸렸다. 같은 북유럽이라기엔 참 멀다. 저렇게 용감하게 투자하고, 사치를 부리는 것도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는 아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로 유명한 곳이 북유럽 아니던가. 지도를 다시 보니, 어쩐지 레이캬비크는 유럽보다 아메리카 대륙에 훨씬 가까운 곳으로 느껴졌다.


케플라비크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는 버스 왕복 표를 샀다. 1인당 4500크로나(약 45000원, 참고로 핀에어 버스 왕복은 12.2유로, 15000원이다) 북유럽의 높은 물가에도 적응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아이슬란드 넌 또 Another level 이로구나.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섰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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