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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화 Jul 03. 2021

아이슬란드 (2) 뜨거운 얼음의 땅

2017년 가을


핀란드랑 아이슬란드 사이에는 시차가 3시간 있다. 둘째날 아침 골든서클 투어 버스가 9시 출발이었는데, 새벽 4시부터 뒤척이다 핸드폰을 보니 '오늘 기사 있어요' 카톡이 떠있었다. 인상 쓰고 일어나 컴퓨터를 켰다. 꼭 이러더라. 길지 않은 기사라 후딱 써서 올리고, 교료나기를 기다리면서 서울과 대구로 전화를 두 통이나 했다. 서울에서 8000킬로미터 떨어진 이 곳에서도 나는 노비의 숙명을 떨치지 못한다. 통화하는 도중에도 기사를 고쳐달라는 카톡이 왔다. 아침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진이 다 빠졌다. 어떻게 픽업 장소까지 걸어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45인승 대형 버스였는데도 자리가 부족해서 동생과 떨어져 앉았다. 레이캬비크 시내를 빠져나가는데는,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쓰윽 지구 밖으로 끌려나온 것 같았다.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 지구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용암 위에 푸른이끼가 가득 끼었다. 나무는 높이 자라지 못한다. 핀란드나 우리나라 강원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자작나무도, 여기서는 키가 절반도 못자란다. 아이슬란드 자작나무(Icelandic birch)라고 이름도 따로 있다. 낮은 덤불이 울긋불긋 물들었다. 가이드는 '아이슬란드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는, 일어서면 된다'고 실없는 농담을 했다.

나무 없는 산비탈에 검은 바위가 공깃돌 뿌려놓은 듯이 널려 있었다. 지진이 날 때마다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진 돌들이라고 했다. 삼각형 바위 두개가 절묘하게 서로 맞대어 서있었다. 그곳을 엘프의 교회(the Elves' church)라고 이름지었단다. 좀더 달리자 커다란 바위가 벽처럼 서있고 주변에 나무 몇그루가 둘러서 있었다. 그곳은 엘프의 별장(the Elves' cottage)이라고 한단다. 금방 엘프가 튀어나온다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종일 비가 내리다 그치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새어나왔다. 빛을 받은 산천에서는 끊임없이 증기가 피어올랐다. 땅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일테지. 아이슬란드 음악이 어째서 그렇게 쓸쓸하고 찬란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증기와 덤불처럼 낮은 숲


수백년간 지진이 날 때마다 산 위에서 굴러 떨어진 검은 바위들

판과 판이 벌어진 자리에 거대한 계곡 굴포스


싱벨리르 계곡. 왼쪽은 아메리카판 오른쪽은 유라시아판에 놓여 있다. No man's land


간헐적으로 솟아오르는 게이시르 



같은 북유럽 아니냐며 핀란드와 별다르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던 것은 완전히 무식한 생각이었다. 핀란드는 지반이 아주 안정적이다. 깊고 울창한 숲에 들어가면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게 나무들이 빼곡하게 높게 자라기 까지 땅이 한번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했구나 하는 것을.

아이슬란드는 정반대다. 불안정한 땅이다. 아메리카 대륙판과 유라시아 대륙판이 만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화산은 지금도 활동중이다. 2010년 유럽 여행 도중에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해 유럽 전역의 비행기가 결항됐었던 기억이 났다. 내가 탈 비행기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관심했었더랬지. 우리가 탄 버스는 몇 번이고, 아메리카 대륙과 유라시아 대륙을 넘나들었다. 가이드가 그때마다 5 4 3 2 1 카운트다운을 했다.  

이날 골든 서클 투어로 1) 싱벨리르(Thingbellir) 계곡 2)굴포스(Gullfoss) 폭포 3) 게이시르(Geysir)간헐천을 다녀왔다. 두 대륙판이 서로 부딪히거나 멀어지면서 생겨난 장관을 보러다니는 것이다. 사전 조사 없이 출발한 탓에 기대가 적어서 감동이 두 배였을는지는 모르지만, 지구적이지 않은 경험이었다. 인터스텔라 같은 우주 영화에, 아이슬란드가 지구 아닌 척 하며 등장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돌아오는 길,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지열 발전소가 있었다. 증기가 엄청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력을 생산하고, 잔열로 도시 난방을 책임진다. 게스트하우스는 다른 건 몰라도 난방은 너무 빵빵해서 몸이 익어버릴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는 뜨거운 땅이었다.

투비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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