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과 극은 통한다.
제목을 보고 의아해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업실에서 그림 그리고 있을 작가와 회사에서 미팅하고 있을 대표님 사이에 공통점이, 그것도 10개나 존재한다니.
나는 미술을 현재 공부하고 있고, 브랜드와 스타트업들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보니 사업가와 아티스트라는 두 가지 직업(?)에 꽤나 친숙하다.
제품을 만드는 사업가와,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
어느 순간 이 둘은 꽤나 비슷하단 것을 느꼈고,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게 되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사업을 하거나, 혹은 아티스트라면, 서로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생각보다 배울 게 많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기에.
*이 글에서 아티스트는 미술작가로 쓰였지만, 예체능계로 봐도 무방할 듯 하다.
*이 글에서 사업가는 단순 자영업자가 아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문제 해결에 힘쓴 이들을 말한다.
매달 안정적인 월급이 보장되는 일반 직장인과는 다르게, 불안정한 수익과 함께하는 직업이다. 갑자기 많은 일이 들어올때도, 정말 아무일도 없을 때도 있다. 두 직업 모두 잠깐 잘된다고 그게 계속되는 게 아니며,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
사업가는 일정량의 일을 하고 그만큼의 월급을 받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자신의 역량에 따라 수십배의 이익을 볼수도, 큰 적자를 볼 수도 있다. 아티스트 또한 자신의 역량에 따라 수익 차이가 크다. 중소기업의 디자이너와 대기업 디자이너 초봉의 차이는 2배도 안나지만, 아티스트는 경력과 유명세에 따라 같은 나이일지라도 작품가격은 수십배 차이가 날 수 있다.
대박나면 밑도 끝도 없는 부 혹은 명예가 기다리지만, 적당히 하거나 실패할 시엔 일반 직장인만 못한 직업이며, 경쟁도 심한만큼, 특출나지 않다면 도전하기 어려운 직업이다. 미디어 속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사업 부도로 길바닥에 나앉은 사람과 밥을 굶는 예술가들도 있단 걸 알아야 한다. 적당히보다 모 아니면 도를 좋아하는 성격이라면 도전해보자.
사업가와 아티스트 모두 자신이 세상에 전하고 싶은 가치가 분명해야 한다. 진심을 담아 상품 혹은 작품을 만들어야 하며, 하나의 브랜드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야 한다. 같은 자동차브랜드 일지라도, 페라리는 섹시한 스포츠카 브랜드라면, 볼보는 안전한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의 차량 브랜드이다. 주디 시카고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면, 무라카미 다카시는 일본 팝아트를 대표한다.
신생 기업이나 아티스트들 모두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Mission(아티스트라면 Statement)을 확실히 해야하고, 이는 곧 브랜딩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회사는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어느 정돈 안정적이지만, 이 두가지 직업은 정말이지 모든 것이 자기 역량에 달려있다. 모든 일을 자기가 시작해야 하고, 결과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려면,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마켓 컬리의 김슬아 대표는 창업 전부터 음식 자체에 큰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부터 사과는 어떤 농부에게 사는 게 좋은지까지 외우고 있었고, 자신이 더 신선한 음식을 더 편리하게 배송받고 싶었기에 서비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예술을 하고 있는 나의 경우, 작품을 만들거나 아이디어 자체를 디벨롭시키는 것은 언제나 삶의 일부였다. 그림 그리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 언제든 할 수 있는 취미였고, 미술 전시를 보는 것이 좋아 약 5년간 300여개의 전시를 보고 기록했다. 지금도 나는 내 일을 사랑하며, 앞으로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
물론 모두가 이렇지만은 않다. 오직 돈을 벌고 싶어하는 사업가도 있고, 그림 그리는 자신의 모습이 멋질 것 같아서 예술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시작한다고 성공을 못할 이유는 없지만, 과연 진정으로 좋은 결과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사업가에게도 예술가에게도 히트작은 필요하다. 다음 단계로 성장하기 위해선 세간의 이목을 끌어야만 하고, 이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삼성전자에게 반도체가 있고, 나이키에겐 에어맥스가 있듯이, 대중들에게 회사를 각인시킬 확실한 히트작이 있어야만 한다. 히트작은 회사의 인지도를 올리면서도, 캐시 카우가 되어 기업이 더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실험할 자본이 되기도 한다.
아티스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상을 타거나, 유명 콜렉터의 작품 구입은 히트작을 탄생시키고, 히트작은 아티스트를 유명하게 만듦과 동시에 더 많은 작업과 전시를 할 기회를 준다. 골드스미스 졸업 쇼에서 콜렉터 찰스 사치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구매한 것이 그를 스타로 만들었듯이 말이다.
물론 히트작 하나에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 이상의 성장은 없다. 시대를 읽지 못해 스마트폰 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노키아가 결국 매각되었듯이 말이다. 아티스트 또한 하나의 히트작을 만든 이후 매너리즘에 빠져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업가와 아티스트 모두 혼자서는 클 수 없는 존재이다. 사업가는 투자를 받으며 비즈니스의 크기를 키워 나가야 하고, 아티스트는 자신을 지원해줄 스폰서를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비슷해 5가지로 나누어 정리해보았다.
(1) 사업가는 벤쳐캐피탈(VC)과 엔젤 투자자에게, 아티스트는 재단 혹은 콜렉터들에게 지원을 받는다. 유명 벤쳐캐피탈 혹은 대기업의 미술 재단에게 투자 받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2) 스타트업들에게 공간,설비, 업무 보조를 도와주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반면, 아티스트에겐 작업공간과 재료비, 전시를 제공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다. 잘만 선택되어 지원받는다면, 정말이지 든든할 것이다.
(3)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개개인들로부터 자금을 조달받기도 한다. 대중들에게 자신을 알릴 수 있음과 동시에, 반응을 볼 수도 있어 많이들 시도하는 방법이다.
(4) 사업가와 아티스트 모두 개인의 학력과 커리어가 투자에 영향을 미친다. 사업가라면 스탠포드대 자퇴, 아티스트라면 예일대 미술 석사가 최고의 학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나이가 어릴수록 투자 받기가 쉽지 않다.
특정 기술 혹은 자격증으로 계속 일할 수 있는 다른 직업과는 다르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마음 편할 일이 잘 없다. 아티스트들은 다음 작품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자신의 철학을 수없이 의심하며, 이 과정은 신경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업가 또한 새로운 마케팅 전략, 거래처와의 계약 등 복잡한 문제들을 항상 생각해야만 하고, 발 뻗고 잘 일이 없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케치와 습작이 필요하다. 절대로 한번에 만들어지는 것은 없으며 수없이 많은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완성작이 만들어진다. 그림 그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하나의 완성된 그림을 위해 버린 종이와 연필이 얼마나 되는지. 사업가 또한 한가지 상품 혹은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해야만 한다.
또한 원래 계획을 조금씩 수정하며 (피벗, Pivot - A change in strategy without a change in vision) 발전하는 것 또한 비슷한데, 그 예시는 다음과 같다.
유튜브는 첫 MVP(최소기능상품)를 비디오 데이트 사이트 형태로 출시했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미미하자 유튜브의 창업자들은 제품의 기능중 하나였던 영상 공유 모델을 제품의 핵심 모델로 채택하고 다시 개발을 시작해 지금의 대기업이 되었다.
팝 아티스트 KAWS는 뉴욕 곳곳에 그래피티를 남기며 예술활동을 시작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미미했다. 하지만 일본의 피규어 기업인 메디콤 토이와의 콜라보레이션은 그를 세상에서 가장 힙한 피규어를 만드는 아티스트로 만들어주었다.
많은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이 사회의 작은 부품이라고 생각하고, 나 하나쯤이 없어져도 대체할 사람이 넘친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도 한다.
사업가와 아티스트란 두가지 직업이 매력적인 이유는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회사(혹은 예술)를 남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스티브 잡스가 죽어도 애플은 존속하고, 피카소가 죽어도 그가 미술계에 끼친 영향은 여전한 것처럼.
각자 떠오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설명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