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무너뜨릴 지식의 장벽
지난 7월, IT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메타가 오픈AI의 핵심 연구원들을 최대 2억 달러의 보상 패키지로 대거 영입했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은 인물이 바로 정형원 박사입니다. 그는 오픈AI의 추론형 AI 모델 'o1' 개발에 참여한 20명의 연구원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직 소식이 단순히 실리콘밸리의 인재 쟁탈전으로만 보인다면, 우리는 훨씬 더 중요한 변화의 신호를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정형원 박사가 코넬대에서 했던 한 강의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변화를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제4의 레버리지입니다."
https://youtu.be/CcP8db8TeKI?si=tfr4kQvA7oyG7y2N
정형원 박사는 AI 변화의 본질을 "서서히 피어나는 꽃"에 비유했습니다. 매일 조금씩 변화하는 꽃봉오리는 그 변화를 매일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어느 순간 활짝 핀 꽃을 보게 되면 그 엄청난 변화에 놀라게 됩니다. AI 역시 점진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변화의 속도와 최종적인 파급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강조한 핵심은 AI를 '레버리지', 즉 지렛대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AI를 단순히 편리한 도구나 생산성을 약간 높여주는 기술 정도로 생각할 수 있지만, 그 본질은 인류의 지성과 노동의 효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는 강력한 지렛대라는 것입니다.
레버리지의 근본 원리는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작은 힘으로도 무거운 물체를 들어 올릴 수 있게 해주는 물리적 지렛대처럼, 사회경제적 활동에서도 특정 '매개체'를 활용하면 자신의 노력을 수십, 수백 배로 증폭시킬 수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저명한 사상가 나발 라비칸트는 레버리지를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첫 번째는 노동력입니다. 한 명의 리더가 여러 사람의 노동력을 조직하여 피라미드나 대규모 공장 같은 거대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는 자본입니다. 타인의 돈을 활용하여 사업을 확장하거나 투자하여 더 큰 부를 창출하는 방식입니다. 세 번째는 코드와 미디어입니다. 소프트웨어나 디지털 콘텐츠는 한 번 만들어두면 복제하고 배포하는 데 거의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첫 번째와 두 번째 레버리지는 모두 '허락'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고용하려면 그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자본을 활용하려면 투자자나 은행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반면 코드와 미디어는 '무허가' 레버리지입니다. 누구의 허락도 받을 필요 없이 컴퓨터 한 대만 있으면 누구나 소프트웨어를 만들거나 콘텐츠를 전 세계에 배포할 수 있습니다.
정형원 박사는 바로 여기서 AI가 새로운 차원의 레버리지라고 선언합니다. AI는 '무허가'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이전 레버리지들이 할 수 없었던 지능적인 작업까지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 개인이 수천, 수만 명의 지능적인 에이전트를 지휘하여 엄청난 규모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게 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AI 레버리지의 진정한 위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현대 지식 사회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직시해야 합니다. 바로 지식의 극도한 전문화가 만들어낸 '사일로화' 현상입니다.
현대 학문과 기술 분야는 각각 고도로 발달했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의학에서는 'biomarker'라고 부르는 개념을 통계학에서는 'predictor', 공학에서는 'feature'라고 부릅니다. 본질적으로는 같은 개념이지만 완전히 다른 용어와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언어 장벽 때문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다른 분야의 논문을 이해하기까지 몇 달씩 소요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맥락 장벽입니다. 각 분야는 고유한 암묵적 전제와 관례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계 문화부터 연구 방법론까지, 논문 한 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방대한 배경 지식이 필요합니다. 이는 마치 빙산과 같아서, 겉으로 보이는 것은 일부에 불과하고 수면 아래에는 훨씬 거대한 맥락이 숨어있습니다.
실제로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할 때 발생하는 소통 오버헤드는 상상 이상입니다. 같은 회의에 참석해도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같은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진짜 협업이 시작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가장 잔혹한 것은 시간 장벽입니다. AI 연구자가 생물학 기초를 익히는 데는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경제학자가 기후과학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까지의 학습 곡선은 가파르기 그지없습니다. 융합 연구팀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입니다.
이런 상황의 아이러니는 명확합니다. 최근 노벨상급 발견들이 대부분 융합 연구에서 나오고 있는데도, 정작 융합 자체가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미 존재하는 지식 조각들이 서로 연결되지 못해 놓치고 있는 혁신의 기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정형원 박사의 표현을 빌리면, "낮게 매달린 과일"들이 수십 년간 방치되고 있는 셈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의 혁명적 가능성이 드러납니다. ChatGPT 같은 대화형 AI는 복잡한 논문이나 개념을 사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해줍니다. 전문 용어를 다른 분야 언어로 실시간 번역하고, 개념 간 연결고리를 시각화하며 비유로 설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24시간 개인 튜터가 옆에서 도와주는 것과 같습니다.
정형원 박사는 이를 "학습 마찰을 제로로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과거에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기 위해 두꺼운 전공 서적과 씨름하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했지만, 이제는 AI가 그 장벽을 극적으로 낮춰주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AI가 단순히 기존 지식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의학과 AI의 융합에서는 단백질 구조 예측에 게임 이론을 접목한 혁신적 접근이 나타났습니다. 경제학과 물리학의 만남에서는 복잡계 이론으로 금융 시장을 분석하는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했습니다.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의 융합에서는 인지 편향 연구가 알고리즘 개선으로 이어지는 성과를 보였습니다.
AI는 서로 다른 분야의 방대한 논문과 데이터에서 공통 패턴을 찾아내고, 연구자가 놓친 기존 연구 간의 연결점을 발견하며, 가설 생성부터 실험 설계까지 융합적 사고를 지원하는 메타인지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형원 박사는 이를 "지식의 봉투"라고 불렀습니다. AI가 각기 다른 분야의 지식을 하나의 봉투 안에 담아 연결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변화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AlphaFold는 50년간 미해결 문제였던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는 생물학, 화학, 물리학, 컴퓨터과학의 융합이 만들어낸 결과였습니다. GPT는 수학 정리 증명에서 인간 수학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 접근을 보여주었습니다. "AI 보조 융합 연구"라는 새로운 연구 패러다임이 등장하고 있으며, 그 성과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단순히 기술적 진보가 아닙니다. 지식 생산과 융합의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몇 년씩 걸렸던 융합 연구가 몇 달, 혹은 몇 주 만에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AI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지식을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형원 박사는 강의에서 중요한 경고를 했습니다. "AI를 사용하지 않는 것의 기회비용을 생각해보세요. 나를 제외한 모든 경쟁자들이 AI라는 강력한 레버리지를 사용하여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면, AI를 사용하지 않는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뒤처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의 시각 능력을 예로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뛰어난 시력이 생존에 필수적이었지만, 현대에는 안경이나 렌즈 덕분에 시력의 희소 가치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특정 지식을 암기하고 계산하는 능력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AI가 훨씬 더 잘 수행합니다.
미래에는 'AI를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질문하고, 문제를 정의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능력'이 새로운 희소 가치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개인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메타가 왜 정형원 박사와 같은 AI 연구자들에게 2억 달러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인재 영입이 아니라 미래의 지배적 레버리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입니다. 지식 통합 비용을 제로로 만들 수 있는 AI 기술을 먼저 확보하는 기업이 다음 시대의 패권을 쥐게 될 것이라는 확신에서 나온 결정입니다.
정형원 박사의 "AI는 제4의 레버리지"라는 통찰은 단순한 기술 예측이 아니었습니다. 인류 문명의 새로운 전환점에 대한 예언이었던 것입니다. 서서히 피어나는 꽃처럼, 우리가 아직 완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AI는 이미 지식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이 변화를 먼저 포착하고 활용하는 개인과 조직이 새로운 시대의 승자가 될 것입니다.